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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슬픔의 예루살렘 성 (애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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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를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몇 주 전부터 6.25를 기억하는 일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 때 대단하게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우리나라 소설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이범선의 오발탄이라는 소설입니다.

엘리트 회사원 송철호는 팬대로 인해 손가락에 못이 박힐 정도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점심도 못 먹을 정도의 빈곤입니다. 그는 허기진 배로 일을 합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보리차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특히 오후 두세 시가 되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송철호가 해방촌에 있는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늘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정신이 나간 어머니의 ‘가자’라는 소리입니다. 늘 이 소리 한마디 밖에 없습니다. 옛날로 되돌아가자, 고향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정신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입버릇처럼 어머니가 되풀이하던 말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해방으로 나라를 되찾았는데 왜 고향집을 잃어버려야 하며 왜 고향집에 돌아가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남한으로 내려온 후 단 하루라도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발밑에 내려다보이는 용산 일대가 폭격으로 지옥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이후 완전히 정신이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자’ 라는 말만 외치게 된 것입니다.

딸이 하나 있습니다. 다섯 살 난 딸인데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떴습니다. 이 아이의 치마를 사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가 입어야 하는 셔츠, 입다가 입다가 다 낡아서 도저히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되면 그 셔츠를 잘라서 아이 치마를 만들어 입혔습니다. 양말을 신긴 신습니다만 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양말을 신겨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맞지 않는 짝짜기에 온 군데를 다 기워서 누더기가 된 양말을 신겼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서도 이런 양말을 신어본 적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입대를 했는데 제대할 때는 상이군인으로 제대했습니다. 나라가 힘이 약하면 상이군인을 챙길 수 없습니다. 직업을 얻지 못해서 매일 여기저기서 동냥으로 얻은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 강도질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고 맙니다. 누이동생 명숙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오빠가 제대로 벌지 못하니 이 동생이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 여동생이 무엇으로 가족의 생계를 도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여자들이 할 일이 있습니까? 참으로 입에 담기도 싫고 기억하기도 싫지만 잊어서는 안 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양공주입니다. 그 때문에 동생 명숙이가 몇 번이나 경찰에 끌려가고 오빠는 또 다시 보증을 서기 위하여 경찰에 불려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명숙은 경찰에서 풀려나오면 다시 미군과 어울려 떠들며 웃고 즐깁니다. 그 명숙이가 밤만 되면 송장같은 어머니를 안고 처절하게 웁니다.

아내가 있습니다. 대학 음악도였던 재기발랄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꿈이 많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삭으로 배가 바가지처럼 부른, 이제는 꿈도 외모도 없는 몽유병자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습니다. 철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데 아기가 팔부터 나와서 위독해서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 철호는 찾아갈 돈이 없습니다. 여동생 명숙이가 백 환짜리 지폐 한 다발을 줍니다. 명숙이가 준 백 환짜리 돈을 들고 철호는 병원을 찾아갑니다만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철호는 시체가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고 뭔가 이제는 큰일을 끝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앓던 이를 뽑았습니다. 그동안 뽑을 여유가 없었지만 갑자기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치과에 가서 이를 뽑습니다. 다 뽑아 달라고 하는데 치과의사는 위험하다고 다 뽑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만 뽑았습니다. 철호는 기어이 다른 치과에 가서 그렇게 안 된다고 거부하는 치과의사에게 달려들어 그 앓던 이를 마저 뽑고 맙니다. 오한이 나고 입안에는 자꾸 피가 고이고 머리가 아찔합니다. 관자놀이가 쑤셔오고 집에 가서 누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철호는 택시를 잡아타고 해방촌으로 가자고 합니다. 택시 운전수가 속도를 줄여 해방촌으로 차를 돌리려고 할 때에 죽은 아내가 생각나서 병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운전수가 다시 핸들을 돌렸습니다. 철호는 눈을 감고 차가 로터리를 돌고 있을 때에 이번에는 강도짓을 하다 잡혀간 동생이 생각나서 경찰서로 가자고 합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내리지 않고 그냥 가자고만 외칩니다. 점점 잠에 빠져들고 머리에 감각이 없어져 갑니다. 운전수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자동차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택시는 목적지를 모르는 채 움직입니다. 택시 손님인 철호 입에선 아무도 모르는 선지피가 흘러서 와이셔츠를 적십니다. 6․25 전쟁이 낳은 참상입니다. 전쟁은 이겨서 나라를 지켜도 무서운 참상을 남기고 져서 나라를 빼앗기면 더 비참해 집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이고 그 역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우리처럼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북이스라엘이 망합니다. 그리고 백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나머지 반인 남쪽 이스라엘도 멸망당하고 맙니다. 한 나라의 멸망은 어마어마한 비참함을 남깁니다.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비참한지 멸망 직후에 보여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전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를 잃을 일은 있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는 본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순례객들로 늘 시가지가 북적댔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고 나라를 잃게 되니 그 시가지가 참으로 처참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가 평안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잘난 사람도 찾아오고 못난 사람도 찾아옵니다. 돈 있는 사람, 돈 없는 사람, 화려한 사람, 누추한 사람이 시내에 가득한 것이 평화의 시대입니다.

요즘 낮에는 서울 시내나 분당의 거의 모든 음식점에 여자분들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남자분들은 시내에서 삼사천원짜리 식사로 때우는데 여자들은 칠팔천 원, 만 원짜리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물론 단순히 지나쳐서는 안 되지만 먹을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럴 수 있다는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느 날 모든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여기저기 소리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지금의 이것이 너무나 그리울 것입니다. 핸드폰 소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시끄럽기도 하고 산책길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길을 건너가면서 핸드폰 전화를 합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핸드폰을 많이 쓰는 나라가 없습니다. 시끄럽지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렇게 비싼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자칫 잘못하면 이제는 그 떠들던 소리, 여기저기서 음식 먹는 소리, 핸드폰 소리, 이런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 시절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절이 그리울 수 있습니다. 전쟁이 나고 나라를 잃게 되면 당당하던 국민이 초라하게 됩니다.

좋을 때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옵니까?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찾아오는 외국인을 가정부로 부리면서 이렇게 저렇게 질책하곤 했는데 그러나 한순간 그렇게 남을 부리던 사람들이 끌려 다니면서 강제 노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그렇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잘못하게 되면 큰소리칩니다. 월급을 받고 저런 일을 하느냐고 별별 말을 다합니다. 누가 악한 짓을 하면 고발도 합니다. 차를 세워 놓으면 왜 이렇게 차를 세워놓았느냐고 큰소리치고 딱지를 붙이고 온갖 짓을 다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자체도 감사한 일입니다. 누가 나를 해코지해도 말할 데가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다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어디 가서 한 번 하소연 할 데가 없었습니다. 나는 도무지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법원에 고소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법원에 찾아가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온갖 소리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재판관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만 세상의 정의를 다스리는 재판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내 형제 내 자매 내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살려고 자기만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결백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법원은 도리어 나를 잡아 감옥에 가두고 이 일을 확실히 아는 나의 친구조차도 나의 증인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증인이 되어 줍니다. 나라를 빼앗기지 않아도 이런 경험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그러한 일들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겪었던 IMF사태를 여러분 거의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서러움의 눈물을 흘렀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노숙자로 전락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아내와 딸들이 남편을 찾아서 아버지를 찾아서 돌아오라고 하소연했습니까? 저는 IMF가 오기 전에 어쩐 일인지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이나 강남의 모습들을 보고 너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슨 계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그랬습니다. 당시 아무도 없을 때에는 사무실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 연준 선생의 비가였습니다. 신 동춘 선생이 쓴 시인데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찿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우는 벌레소리 뿐이러라 별같이 빛나는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얼마 전에 나온 음반에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사마이스키가 이것을 연주했는데 첼로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하필이면 그 음반을 우리가 잘 아는 체크린의 눈물과 같이 실어놓았는데 가사를 알아서인지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리고 난 뒤에 IMF가 있었습니다.

에레미야 선지자는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 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라고 슬프게 노래했고 이어서 2절에는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좋은 것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있어 함께 기뻐할 때 참으로 좋은데 좋은 일이 있어도 아무도 찾아와서 축하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죽을 지경인데 누구를 축하하겠습니까?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해 줄 사람이 있으면 그 슬픔이 좀 덜한데 아무도 함께 슬퍼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더 힘든데 남의 슬픔을 함께 해 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참으로 거룩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함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여기 까지만, 이스라엘 여인들은 여기까지만, 이스라엘 남자라도 여기까지만 갈 수 있고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고 구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고 귀하던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사정없이 짓밟히게 됩니다. 예배당에 들어가서 돼지고기를 구워먹고 화투를 치고 저기서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에 난다는 것입니다. 주일 마다 그렇게 많은 예배자들로 넘치던 교회들이 텅텅 비고, 그렇게 만나기 힘들던 유명 목사들이 주일마다 예배당 앞문에 나와서 오늘은 혹시라도 누가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이 없는지 기다리는 일이 생겼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외국에 나갈 때는 국빈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에서 시달리다가 외국에 나가면 참 좋습니다. 대접을 잘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없으면 대접해 줄 것 같습니까? 아예 찾아가지도 못합니다. 얼마 전에 달라이 라마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다가 거절당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힘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IMF때 우리나라 대통령이 체면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걸해도 빌려주지 않은 나라가 많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늘 이웃 이웃 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얼굴을 감춘 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요즘 환율이 떨어져서 수출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만 외국에서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부모들은 얼마나 좋습니까? 옛날에는 돈을 산더미처럼 싸가지고 가면 쥐꼬리만큼 바꿔 주었는데 요즘은 거꾸로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쓰기도 참 편하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에 그 엄청난 화폐를 들고 가도 쥐꼬리만큼도 바꿔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외국에 가면 우리나라 원화로 그냥 받아주는 나라도 제법 있습니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잃게 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1절부터 12절까지와 예레미아 애가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유다는 환란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시온의 도로들이 슬프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예루살렘이 환란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절은 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 도다.. 10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화폐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요즈음엔 아파트를 한 채 팔게 되면 몇 년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정말로 언제까지나 그럴 것 같습니까? 11절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을 바꾸었더니.. 많은 돈을 가지고 양식을 샀는데, 옛날 같으면 10년은 먹을 것 같은데 한 달도 가지 않습니다.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이런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고 소설 같은 이야기나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 같거나 어떤 사람에게 겁을 주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십시오. 옛날 이스라엘은 지금 우리가 확신하는 이 자신감보다 천 배는 더 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절대로 이런 일은 없다, 죽어도 꿈에도 그런 일은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번영이 폐허로 바뀌었고 영광이 수치로 바뀌었고 존귀가 비천으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오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2절에 말씀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그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왜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가 있으며, 아직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런 비참함을 당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그 이유를 단 한마디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절에서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도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조소거리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12절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하더라고 여러분들은 그 까닭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다른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른 것 하나도 없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사람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몸만 있었지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돌아와야 됩니다. 진실로 진실로 마음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가정을 챙기시고 여러분 인생을 챙기시고 나라를 챙기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났고 혹시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에게는 길이 있고 평화가 있고 부요와 풍요가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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