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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것(2) (삼하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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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2 삼하1:1-16

그러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다윗의 입장이라면, 사울 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력과 절대권력을 가지고 그렇게도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런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지금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합니다. 다윗이 알아요.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죠. 그리고 아말렉을 쫓아가서 잃어 버렸던 처자식을 도로 다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글락 성에서 몇 일을 유했다고 되어 있습니까? 이틀을 유했다고 되어 있죠? 지금 상황을 보십시오. 처자식을 아말렉에게 빼앗긴 상황에서는,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이 아무리 급한 문제라 하더라도, 처자식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하니까, 아말렉을 추격해서 아말렉을 죽이고 처자식을 도로 찾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지금 다윗의 입장에서는 모든 신경이 어디로 가 있겠어요? 전쟁터로 가 있겠지요.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기를 원하겠습니까? 죄송한 말입니다만, 이 아말렉 군사의 판단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내릴 수 있는 정상적인 판단입니다. 제가 다윗이라 할지라도 이번 전쟁에서 사울 왕이 좀 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왜죠? 사울왕은 전쟁만 끝나면 또 자기 잡으러 올 사람이니까요. 기회만 있으면 자기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사람 아닙니까? 이런 기회에, 내 손으로는 직접 죽일 수는 없으니, 사울 왕이 좀 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내심으로 기대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중에 "아이고, 목사님, 그런 생각을 하면 됩니까? 나도 그런 생각 안 하는데요."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천만에요.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죽 보아온 바에 따르면, 우리 성도님들이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집사님이 은혜를 좀 받았다, 어떤 집사님이 하나님의 복을 좀 받았다 하면 제일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들이 더 배 아파하고 더 시기하고 험담하더군요.

사람의 본성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 겁니다. 사람의 본성은 누가 잘되면 배아파요. 그런데 이건 배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모략하고 나를 시기하고 험담하고 기회만 있으면 없는 말을 지어 가지고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합니까?

다윗이 처한 상황은 극한 상황입니다. 오죽했으면 블레셋까지 도망했겠습니까? 자기 원수의 나라로 말입니다. 사울왕이 얼마나 그를 핍박했으면 말입니다. 제가 다윗이라면 아마 부하 몇명을 전쟁터로 보내어서 상황을 정탐하게 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울왕이 죽고나면 그 다음 왕은 바로 다윗 자신이 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가질 수 있는 본성적인 마음은 아마 사울 왕이 죽기를 기다리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표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대한 일면이요, 오늘 은혜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다윗은 소년 때에 철없을 때에 사무엘이 와서 자기 머리에 기름 부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울이 자기를 사랑하고 후계자로 지목해줘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사울이 그를 죽이려 하고 그는 쫓겨다니는 신세인데 이게 될 일입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 약속을 부여잡고 있단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서두르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 것이다." 오늘 분문에 보면 다윗의 모습은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의 기회는 절호의 기회이며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기회인데도 거기다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면서도 너무나 조급할 때가 많아요.

성경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봅시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그는 손자인 요셉보다 믿음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아브라함하고 요셉하고 누구의 신앙이 더 좋습니까? 자, 보세요.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니 갔어요. 왔다가 기근이 든 것을 보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했던 사람입니다. 아들을 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믿고 나가다가 1년 2년 그냥 지나가다가 의심이 생겨서 첩을 취해서 아들을 낳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실패를 했습니다.

그 이스마엘 때문에 지금까지도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순종함과 동시에 실패가 있어요. 그런데 요셉의 기록을 보면 실패한 부분이 없어요. 요셉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노예로 잡혀가도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어요. 강간미수죄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인생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니,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우십니다. 아브라함과 요셉의 신앙을 보면 누가 신앙이 더 성숙합니까? 요셉의 신앙이 더 성숙하죠? 그러면 아브라함은 왜 실패했습니까?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만큼 대단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급함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기다릴 줄 몰랐던 이 조급함 때문에 아브라함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다윗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가정에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하고 그 환경이 우리의 약속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는 인내가 들어가 있습니다. 동시에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급해서 그 약속을 빨리 앞당기려고 나서다가 실패해 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포기해버려요. "하나님 약속이 잘못된 약속인가 보다. 이 약속이 우리 가정과 상관이 없는 약속인가 보다. 내가 응답을 잘못 받은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서두러지 않음과 동시에 포기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약속들과 여러분 가정에 주신 약속들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함과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마십시오. 믿음이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적극적으로 그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교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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