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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삼상 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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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에 나타난 다양한 기념비들은 객관성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객관성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주관의 영향을 받지 않은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 역사에 있어서 객관성이라는 말은 정사(政史)와 야사(野史)에 대한 논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사와 야사의 기준은 정사는 관찬(官撰)이고 야사는 사찬(私撰)이 됩니다. 이와 같이 관이 아닌 민간에서 쓴 역사는 모두 야사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기준의 역사는 강자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역사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기록 자체에는 객관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에 대한 역사적 진정성은 객관성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역사는 사람마다 시대마다 사관(史觀)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살인적인 논쟁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객관성 있는 역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자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사관(史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역사의 중심이 곧 기독교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본문에 기록된 성경은 미스바 대성회와 함께 사무엘의 영적 지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지도력 아래서 미스바로 모여 회개하는 성회를 한 사실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재정립시켰다는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은 사사(士師)로서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할 때도 그의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사무엘의 지도 아래 블레셋과의 한판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하늘로부터 터져 나온 큰 우뢰 소리에 놀라 블레셋 군대가 혼비백산할 지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감행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다고 했습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얻은 승리였습니다. 숫자로 보나 장비로 보나 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도 이스라엘은 승리하고야 말았습니다.
영지가 밝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이 일을 간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는 이 일을 기념하고자 했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표적입니다.
어떤 진노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계시)이 희귀함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상』은 여호와의 말씀의 신적 계시(divine revelation)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을 때 그의 나이가 팔십 육세였습니다(창 16:16).
그로부터 십 삼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창세기 12장 2절에 말씀하신 언약을 재확인시켰습니다. 13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말씀하시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마엘이 13세가 되던 해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민의 표식으로 후손들에게 할례를 명했습니다(창 17: 9-14).
그리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시키고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언약의 자손 이삭의 출생을 예고하였습니다.

창세기 17장 15-16절에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흔하지 아니했다는 말은 그 시대의 영적 타락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는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이었습니다. 저들은 성전의 불량자들이었습니다(삼하 2:12-16).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인들을 농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무엘상 2장 22절에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교육은 적어도 두 아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두 아들의 타락상에 대하여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의 영적인 무능으로 말미암아 부권마저 상실당하고 말았습니다(삼상 2:25-29). 하나님께서 이러한 엘리 제사장의 가정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 13절에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진노입니까?

2) 블레셋으로부터 패전입니다.
사무엘상 4장 10-11절에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의 침략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상입니다.
어떤 진노입니까?

3) 죄로 인한 엘리 가정의 몰락입니다.
사무엘상 4장 21-22절에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가봇은 엘리 제사장의 손자요 비느하스의 아들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사무엘상 4장 11절에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접한 엘리 제사장은 놀란 나머지 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사무엘상 4장 18절에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들을 출산한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이자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음을 애통해 하며 죽었습니다.
이렇게 엘리 제사장의 가정은 일시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영적 타락으로 인한 도덕적인 부패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간과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 백성을 징벌하시고 다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선지자 사무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에벤에셀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는 표적 입니다.

1)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임함입니다.
사무엘상 3장 19-21절에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자신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2)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본문 7장 11절에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고 했습니다.
결코 20년 전의 허약한 이스라엘은 아니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우승자 김연아는 자기는 우리나라가 작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연아의 말은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자기나라가 작다고 생각해서는 정상에 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우리교회를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열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폄하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오늘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무엘 선지자의 거국적인 기도운동에 믿음으로 신종하는 백성들의 겸손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우상타파를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성결운동을 명령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인도로 미스바에 모인 백성들로부터 시작하여 거국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름하여 미스바 회개운동이었습니다.
블레셋은 미스바 기도 운동에 놀란 나머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옛날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말씀)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삼상 7:9).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올리는 구원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블레셋 진영에 큰 우뢰소리를 발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블레셋은 달아나기에 바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나가서 달아나는 블레셋을 벧갈 아래까지 따라가서 쳐부수었습니다(삼상 7:11).
이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얻은 전쟁승리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블레셋을 쳐부수어 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했기 때문에 에벤에셀(도움의 돌)의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20년 전에 블레셋에게 3만 4천 명이 죽고 법궤를 빼앗긴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배성들은 바로 이곳에다 승리의 전적비를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Ⅲ.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표적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제물이 되신 에벤에셀입니다.
본문 7장 9절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드린 번제물이 타오를 때 블레셋이 접근해 왔습니다. 사무엘의 기도는 제물과 함께 드려지는 기도였습니다. 이 제물은 기도응답을 위한 중재의 제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를 대신하여 하늘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이 드린 이 제물은 성령을 통하여 애통하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시는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물입니다.
제물과 함께 올리는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려지는 성결한 제물로 인하여 승리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온전한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 기도의 응답이 되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이 되신 에벤에셀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예수님은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1) 예수는 산 돌(the Living Stone)이신 에벤에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2) 예수는 머릿돌(the Head Stone)이신 에벤에셀입니다.
시편 118편 22절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3) 예수는 모퉁이 돌(the Corner Stone)이신 에벤에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에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4) 예수는 뜨인 돌(a Stone was cut out)이신 에벤에셀입니다.
심판의 돌입니다. 다니엘 2장 24절에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라고 했습니다.
(5) 예수는 흰 돌(a White Stone)이신 에벤에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승리의 흰 돌이십니다. 그에게는 승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 블레셋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으로부터 수탈당했던 땅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백성들 앞에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에벤에셀입니다.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도움의 돌, 에벤에셀의 기념비는
①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념비입니다.
②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는 기념비입니다.
③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는 기념비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곳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한 곳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구원이 임한 곳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축복이 임한 곳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교회는 우리 모두의 에벤에셀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에벤에셀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공급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굽이굽이마다 사건 사건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표적을 세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의 에벤에셀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표징의 돌들입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저 자손이 누구인가?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감사하며 구원받은 자로서 보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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