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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룻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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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룻 1 : 1 - 5
제 목 :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오늘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믿음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베들레헴을 떠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땅, 우상 숭배하는 모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모압 땅에는 먹을 것은 있었으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드릴 곳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엘리멜렉은 그 우상 숭배하는 모압 땅에서, 배부름에 도취되어 그만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을, 기도하는 일을 잊고 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 숭배의 땅에서 하나님을 잊고 지낼 때에, 하나님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계시겠습니까?  제단 쌓는 일을 잊고 사는 그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잊고 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채찍이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엘리멜렉이 죽게 되었고, 또 얼마 안 있어 그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이러한 일을 당한 나오미는, 그 비참함 속에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결심입니까?  “그래!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며느리 중의 한 사람인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간 나오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실한 보아스를 만나 은총을 입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비로서 안식과 행복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오늘 이 룻기서의 전체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이 룻기서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세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베들레헴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농사가 잘 안되어서, 다시 말해 육신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 무엇이 잘 못된 것이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가 떠나간 곳이 어디었느냐는 것이지요.  그들이 흉년을 피해 먹을 것을 찾아 간 모압 땅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거하지 않는, 우상 숭배의 이방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이, 결국에는 그들의 가정에 화근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육신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앙까지 저버리고 떠났던 엘리멜렉의 가정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그야말로 망하게 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엘리멜렉, 이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왕이시라” 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는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므로 말미암아, 육신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린 채, 우상 숭배의 땅 모압으로 떠나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은 흉년이 들었을 때에, 베들레헴을 떠나기보다는, 오히려  그곳에 남아 하나님께 기도했어야 옳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실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육신적인 배고픔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예요.  여러분 6절 말씀을 보세요.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함을 들었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간 뒤 얼마 안 있어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그냥 굶기시겠습니까?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고, 땅에 핀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여 신앙을 저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책망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결코 신앙을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 6장에서 주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베들레헴 땅에는 이처럼 기근이 들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틀린 것입니까?  당신의 백성이 거하는 땅에 기근이 들게 하셨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사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대로, 자기의 뜻대로 행했던 것이 사사 시대의 특징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하며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를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심판이  기근으로 이어졌고, 엘리멜렉이 거한 베들레헴에도, 흉년이 들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그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깨달았다면, 결코 고향 땅 베들  레헴을 떠나지 아니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름만 신앙인이었지, 그의  마음과 생각은 불신앙에 젖어 있었기에, 결국에는 자기의 소견대로 육신적인 만족을 위해, 이방 땅 모압으로 향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베들레헴은 어디이겠습니까?  우리가 결코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영적 고향인 베들레헴은, 우리가 섬기는 벧엘 교회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온전히 잘 자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몸 된 제단인 벧엘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좋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슬플 때에라도, 은혜가 상실되어지고, 온갖 시험으로 내 영혼이 피폐되어지고, 곤고해져 있다할지라도, 결코 이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는 오히려 교회를 중심 으로 한 신앙생활에, 더욱 더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가운데, 더욱 더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를 힘써야 하며, 더욱 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당한 이 어려운 형편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끝나게 해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고향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베들레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떡의 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떡은 곧 양식입니다.  양식은 곧 생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양식이 있는 곳이며, 생명이 보존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양식이 있는 곳을 떠나, 결국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보존되는 곳을 떠나, 결국에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도 모든 일을  육신적으로 해석을 하고, 영적으로 해석을 하지 못하는, 영안이 닫힌 사람들에게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교회가 베들레헴입니까? 
이곳에 떡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양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요 6 : 57 - 58절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할렐루야!!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 바로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이 교회에서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의 삶에 양식이 풍족하게 되고, 우리의 생명이 보장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일진데, 어찌 우리가 교회를 떠나서 살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교회를 떠나 죄악된 세상, 다시 말해 모압과 같은 세속에 파묻히게 되면, 나오미가 남편과 자식을 잃은 것같이,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잃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잃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이 교회에 계신데, 어찌 교회를 떠나 세상 속에서 축복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잘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끼던 모든 것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당하는 그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 모압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 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1 : 20절 말씀을 보세요.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누가 나오미를 괴롭혔다고 했습니까?  전능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전능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 산 나오미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오미 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이지요.  그러면 “마라”는 무슨 뜻입니까? 
“괴로움” 이란 뜻입니다.  “쓰다” 라는 뜻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이르렀더니, 기쁨이 변하여 괴로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쓰디 쓴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형편이 좀 힘이 들더라도, 또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좀  어렵더라도, 엘리멜렉처럼, 나오미처럼, 베들레헴을 떠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주님의 말씀이 계신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이 다시금 회복되어지고, 그 회복 속에서 늘 기쁨이 넘치는, 그리고 영육간의 축복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2. 오늘 이 룻기서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베들레헴을 떠났어도,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고통 중에서, 비로서 자기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육의 떡을 찾아, 생명의 떡, 영의 떡을 버린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베들레헴에서는 배는 고팠지만, 얼마나 즐겁고 좋았었나 추억하며,  모압 땅에서 얻은 것들을, 이미 남은 것도 별로 없었겠지만, 다 포기하고,  올 때와 같이 빈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돌이킴이 있었기에, 베들레헴으로 다시금 돌아오는 모습이 있었기에, 나오미는 엘리멜렉과 같이 망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장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습니까?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찬송에도 있지요?  혹시 이런 상태로  신앙생활 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없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구도, 앞으로 내가 이렇게 되지 않으라고 자신할 수는  없는 줄로 압니다.  “만사 불여튼튼” 이라고, 이러한 일이 인생에 미치지 아니하도록, 미리미리 자신의 신앙을 살피는 지혜가 있어야 할 줄로 압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런 곤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의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돌이켰듯이,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용납하시고, 돌아온 탕자를 품어 안아 주시고, 모든 것 회복시켜 주셨듯이, 새로운 은혜로 새로운 신앙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귀한 은혜 가운데 간증한, 대구 서문교회의 이종근 집사님이라고 계시는데요, 이 집사님은 돈을 버는 것이 일생의 꿈이라고 생각하며, 건축업을 했습니다. 한참 경기가 좋아서 제법 돈을 벌었습니다.  돈이 잘 벌리니까 이제는 신앙생활을 등한시 여기며 사업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를 보고 가만히 계셨겠습니까?  한 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불어  닥친 경기의 침체로 부도가 나고, 결국에는 알거지에 빛만 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병까지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까, 그제서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더라는 겁니다. 자신이 이제껏 신앙을 떠나 사업이 미쳐 있었던 것이, 후회가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 집사님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결심입니까? 
“이왕 죽을 것, 남은 여생이라도 주를 위해 일하다 죽자.  내가 이 몸 가지고 교회에서 무슨 봉사를 하겠나.  내 힘닿는 대로, 거리에 나가 전도나 하고 죽겠다.” 고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리에 나가 정말 죽을힘을 다해 외치며 전도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역사가 일어났겠습니까? 그렇게 전도했더니 1년만에 천명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다시금 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친히 축복해 주시는데,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잃었던 물질까지도  축복을 받아, 다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이킬 때에, 이런 회복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형편에, 신앙을 떠남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이 있습니까?  건강이나 물질의 징계가 있습니까? 
아니면, 자녀들에 대한 징계가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원치 않는 고통스런 일들이 발생되고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싸인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안목을 회복하셔서, 그러한 뜻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오늘 말씀 가운데 깨달음이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영적인 회복에 힘쓰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잃어버린 신앙의 열심들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돌이키는 그 길에,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믿음의 열매가 하나 있었지요?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모압 땅에서 전도한 며느리 룻이었습니다. 
참으로 기특하게도, 룻은 시어머니를 잘 공양했고, 훗날 보아스와 결혼한 후에도 나오미에게 극진한 효성을 다했습니다.

나오미는 다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다 잃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은 다 잃었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았던 믿음의 열매는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남은 부분을 통해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시고, 역사해 주셔서, 다시금 일어서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고, 그 남은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이제 돌이키기로 작정한 가운데, 우리의 남은 것들을, 그것이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중에 남은 것을  주님께 드린다면,  우리의 남아 있는 건강, 남아 있는 지식, 남아 있는 열심, 우리가 현재 가진 이 모든 것들을 주님께 드린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도 나오미에게 회복시켜 주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나이 많아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네 가진 것이 무엇이냐?” 는 물음에, 가지고 있던 작은 지팡이를 보였더니, 하나님은 그 마른 막대기로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게 만드셨습니다.
벳세다 광야의 어린 소년은, 자기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불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렸더니, 그것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을 먹이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자 결심하는 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네 남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내게 보이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남아 있는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많은 부분 잃어버렸을지라도, 다시금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몸부림 치는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분명 여러분에게도 룻과 같은, 신앙의 남은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남은 부분을, 이제는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분들에게, 친히 위로해 주시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셔서, 앞으로 누구보다도 주의 일을 많이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나, 우리 벧엘 교회가 어려운 이 시점에, 이 룻기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시고, 올 한해를 비롯하여 우리의 남은 시간들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면서, 새로운 은혜와 축복 속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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