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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맥추절을 지키는 성도의 삶의 모습 (신 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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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민족이 지키는 절기가 세 가지 있습니다.
신명기 16장을 보게 되면 1절 이하부터 나오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 오늘 본문에 기록된 칠칠절, 즉 우리가 지키고 있는 맥추절입니다. 그리고 13절 이후에 등장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입니다.
출애굽기 23장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져 세 가지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 동안 나라가 없는 유리방황하는 시대에 있어서도 그 민족의 맥을 유지하고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교육의 3대 요소는 가정교육, 회당교육, 절기교육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가르치고,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력을 다해서 또한 가르치며,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의 일들을 회상하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공동체성과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교육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절기를 통해서 어려웠을 적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해 어려운 때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와 같은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 속에서 그들이 영적을 흥왕했을 때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이었었고, 절기를 지키는 일이었었고,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흐려졌을 때, 그들은 율법이 땅에 떨어지고, 절기를 잃어버렸으며, 또 십일조생활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나 영적으로 충만할 때 바로 율법과 절기와 십일조가 회복되는 일들이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후에 예루살렘 수문 앞에 모여서 학사 에스라를 청빙하여 대 영적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느헤미야 8장 14절>을 보면 학사 에스라의 지도를 받아서 이들은 초막절 절기를 회복하고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전 교회적으로 맥추절로 지내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이 지난 칠 주, 즉 49일이 지나 다음날인 50번째 날에 하나님 앞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수확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수확의 첫 번째 열매, 첫 번째 수확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기쁨으로 모여 형제, 자매, 이웃 모두가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의 축제를 드렸습니다.
맥추절은 히브리어로 수확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칠칠절, 혹은 오순절로 후에 불립니다. 첫 번째 수확을 끝낸 후에 기쁨 속에서 수확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축제의 절기입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함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모든 일을 중단하고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영적 재무장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날은 예수님께서 모든 백성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승화,발전하게 됩니다.

첫 열매를 드린다고 말씀하니 요즘 우리 청년들 가운데서 우리 청년들이 믿음 안에서 귀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목사로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학교에 다니고 졸업을 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우리 청년들 중에서 많은 청년들이 직장에서 첫 번째 봉급을 받지 않습니까? 첫 번째 봉급을 받으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첫 번째 열매다 생각해서 그 봉급을 자기가 쓰지 않고 전부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는 청년들이 참 많이 있어요.

청년들이 학교 다니며 제대로 용돈 받아서 풍족하게 쓰지 못했을 텐데 첫 번째 월급을 받아서 하나님께 전부 드리며 ‘하나님 이것은 내가 첫 번째 받은 월급이니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겠습니다.’ 하는 청년들이 참 많아요. 그것을 보고 참 마음에 기특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 더 수입이 있으나 없으나 한 달 뒤부터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마음 가지고 첫 번째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겠지요. 액수가 많고 적음은 아무 문제 아니고 정말 하나님 앞에 그 귀한 마음을 드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 삶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또 애틋한 마음으로 우리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목사의 심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 가운데 첫 번째 열매를 소출하여서 하나님 앞에 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맥추절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농경문화 속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가 어떻게 맥추절을 지키게 되겠는가?
모든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적용을 통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제정하여 그들에게 주신 원래 의도가 무엇인가 파악하여서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맥추절을 지키시라고 하신 그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함으로 2007년 맥추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맥추절이 주시는 은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맥추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합니다. 그 인정과 감사를 내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10절>에 말씀하시기를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주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겁니다.
내게 어떤 힘이 있나, 내게 어떤 능력이 있나, 그것을 한 가지 한 가지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고, 나는 그 축복의 수혜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65편 9절, 10절>을 보면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박토인 이스라엘 그 사막지대에 하나님께서 물이 흥건하게 하시고, 강에 물이 흘러넘치고, 단비를 주셔서 촉촉하게 하셔서 싹이 나게 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수고한 모든 것 내가 땀 흘리고 애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지혜도 하나님이 주셨고, 내 힘도 하나님이 주셨고, 내 능력과 은사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축복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내게 어떤 힘이 있는지 헤아려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선물을 줄때, 아이가 선물을 끼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선물을 찾아서 또 마음에 기뻐하고, 어머니 아버지께 “참 감사합니다.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다면 그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첫 번째 거둔 소출을 맥추절에 드리게 하신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시대에 맥추절을 지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축복을 다 헤아려보아 감사함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바로 이 축복된 맥추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세미하게 헤아려 보면 우리는 받은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우리는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왔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을 보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선물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5절>을 보니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것을 보니 범사에 감사할 일을 많이 주셨습니다. 믿음 주셔서 구원 주시고, 생명의 호흡과 은혜와 능력과 만물을 주시고,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우리 삶에 즐비하게 주셨으니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겁니다.

여러분, 감사가 넘치면 사단이 우리에게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불평하는 순간 사단은 쏜살같이 우리에게 달려와 우리가슴에 탁 박힙니다.
자, 우리 한 번 따라서 합시다.
“감사는 은혜의 초청이고 불평은 사단의 초청입니다.”
감사하고 기쁘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주의 천사가 우리 마음에 임하는데, 불평하고 비난하고 험담하면 쏜살같이 사단이 달려와서 우리 마음에 확 박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는 사단의 화살을 맞아서 마침내 사단에 좌우됨을 받게 되는 겁니다.
불평하면 사단이 여지없이 ‘내 집이다’하고 쫓아와서 우리 마음에 탁 자리를 잡는단 말입니다. 감사하게 되면 주의 천사가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삶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할 때, 낙심하고 의기소침할 때, 여러분 종이를 한 장 꺼내보세요. 거기다 1번에서 100번까지 번호를 매겨 놓으세요. 그리고 1번부터 차례대로 ‘하나님께 감사한 일’ 하고 제목을 정하고 하나하나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없는데요.
감사한 일이 없을까요?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아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손으로 글씨 쓸 수 있는 것, 내 다리로 어디 갈 수 있는 것, 또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우리 손가락 한 개씩 있는 것도 한 가지씩 다 감사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씩 있는 것도 다 감사한다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감사한 것 생각하면, 우리가 정말 쓰기 시작하면 한이 없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인생에는 감사한 것이 너무나 많아요.
세상에는 우리가 느끼고 누리고 있는 정상적인 기쁨, 또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상적인 일들을 누리지 못해서 그것이 그들의 소원인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마음의 감사와 자원함과 기쁨으로 드리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헤아려보니 내게 이런 힘이 있고, 내게 이런 능력이 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헤아려 마음에 기쁨과 자원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없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도 아니며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주 앞에 드리는 겁니다.
오늘도 이렇게 맥추절에 아침부터 비가 왔는데 오후에는 비가 갰지만 아침에도 사람들이 다 녹아서 없어지지 않고 다 주 앞에 나와서 맥추절을 지내는 것 보니까 참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를 먹여주셨어요. 아침마다 들판에 나가니 만나가 하얗게 깔려있죠. 그런데 만나는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씨 뿌려서 거두어 먹을 수가 없어요.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일은 여기서 벗어나서 다른 데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씨 뿌려 거둘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들판에 만나를 뿌려주신 겁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떠나 가나안에 입성했더니 만나가 갑자기 그쳐졌어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40년을 만나를 먹고 지냈는데 그 만나가 끊겨졌어요. 백성들은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굶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있는 소산물로 먹이시겠다는 겁니다.
첫해에는 가나안에 뿌려진 소산물을 먹었고, 두 번째부터는 그들이 씨 뿌려 거두고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들에게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시지 마세요. “하나님 날마다 만나로 내게 먹여주십시오.” 그 말은 뭐냐면 오늘은 윗집이 주고, 내일은 아랫집이 주고...... 그래서 여러분 먹고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해요. 오늘도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것을 먹고 살기......
까마귀가 어떤 것 물어다 줍니까?
우리는 정상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내가 내 손으로 씨 뿌려 거두고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시편128편>을 보면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이게 축복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정상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고,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그것으로 내가 먹고 지내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나를 구한다는 것은 일하지 않고 들판에 깔린 것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축복의 만나를 먹는 것처럼 일해서 수고하고 먹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귀한 축복과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지혜가 있을 때마다 이제는 마음의 도를 넓혀야 됩니다.
어려운 일 있으면 극복하려는 마음의 기쁨이 있고, 또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는 겁니다.
우리가 초신자때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게 이런 은혜를 주시면 내가 이렇게 헌신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숙한 성도가 되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게 주신 은혜만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내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헌신하겠습니다.”
초신자때는 마치 축복이 헌신의 조건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성도가 되면 축복은 우리의 헌신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축복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요즘 우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한 사람이 천명을 쫓는 성도들 되게 하소서”

<여호수아 23장 10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 사람이 천명을 쫓는 사람, 즉 우리는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천명을 쫓는 능력이 있으니 천명을 돕는 능력이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에 어떻게 천명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나 한 사람 내 가정 하나도 살리기 어려운데 어떻게 천명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지난 주일에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옵니다.

“예수님 내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응, 십계명을 지켜라.”
“예, 잘 지켰습니다.”
“그럼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때 이 청년의 마음에 수심이 쌓였어요. 왜냐하면 이 청년은 재물이 많았습니다. 재물이 많은 것보다 더 고민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 더 강했단 말입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재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을 수 없어. 그러므로 그는 슬픈 기색을 하고 수심에 빠져서 돌아갔던 겁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이 놀라면서 “그럼 도대체 누가 천국에 간다는 말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느니라.”
즉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도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천명을 도울 수도 없고, 우리는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그와 같은 능력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전에 제가 주일학교 중등부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토요일 오후쯤 되면 아이들을 한 바퀴 돌아옵니다. 요주의 인물. 매일 안 나올 것 같다하는 그런 학생이 있으면 동네니까 한 바퀴 쭉 돌아서옵니다. 그런 아이들 리스트로 따지면 몇 십 명쯤 되니까 늘 관리 대상자들입니다.
그래서 쭉 한 바퀴 돌아서 오는데 가서 “너 내일 나와라.” 하고 없으면 그 부모님께 “나오라고 꼭 전해주십시오.” 하고 돌아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주일날 아침 되면 애들이 안 나옵니다. 그럼 그걸 또 가만 두겠습니까? 절대 가만 둘 수 없죠.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가서 또 데려오는데 어느 집에 가는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너희 집에 스무 번 온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이런 말투를 써서 아이니까요. ‘내가 너희 집에 스무 번 온다.’ 그러면서 무슨 마음이 드는가 하면 ‘하나님, 내가 이 아이 집에 스무 번 오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 아이가 꼭 믿음생활 잘하고 교회에 잘 오게 해 주십시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불쌍히 여겨 주셔서-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천명을 돕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가 애타게 기도하고, 소원하고, 수고하고, 애쓰고, 추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가 바로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 세상 호흡이 멎을 때까지 기도하고 추진하고 애를 쓰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호흡이 멈출 때까지 하나님께 소원하며 그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속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헤아려보며,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소원하며, 내 심정과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내 자신을 헤아려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드릴 때 그것이 바로 맥추절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맥추절을 지낸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헤아려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함으로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헤아려보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성으로 내 마음을 드리자.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 기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을 보니 너희 자녀, 노비, 성중에 있는 레위사람, 객과 과부가 함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나온 사람들은 식구들뿐이 아닙니다. 당시에 물건처럼 여겨졌던 노비, 시대에 가장 어려웠던 고아, 과부, 객, 레위사람 등 모든 사람을 잊지 말고 배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배려 받을 사람을 배려하는 겁니다. 은혜를 나눌 귀한 맥추절의 절기에 어려운 이웃들, 배려 받아야 될 사람들, 잊지 말아야 될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은혜를 참 많이 받아요.
저희 교회가 1기-교회개척기, 2기-체제 정비기, 3기-대사회 봉사 및 기여의 연습기라고 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 사회와 역사 속에 기여하고 공헌하는가, 어떻게 봉사하는가, 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연습하는 제3기 사역의 2년차 사역이 올해 사역입니다.
이제 저희가 7년 동안 이와 같은 연습을 하고, 3기 사역이 끝나고 20년쯤 지나게 되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해서 그 일을 찾아서 우리는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봉사하고, 30년이면 한 세대가 마쳐지게 되고 또 다른 세대 속에 우리의 일을 전승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요즘 그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남전도회 회원들 토요일마다 모여서 봉사가시고, 여전도회 회원들은 주중에 내내 어디든지 주를 위해 봉사하시고 헌신하시고 또 어떤 기관에든지 가서 봉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 청년들도 마찬가지고 중,고등학생들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이와 같은 사회에 대한 봉사 및 기여의 연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에도 거금도에 가서 성도들이 70명 정도 가서 의료선교, 이용이나 미용, 음식, 또 영정사진도 찍어드리고 하루 종일 온 분들은 하루 종일 기쁨 속에서 그와 같은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때 너무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여기서 거기가 얼마나 먼가요? 밤새도록 가서 버스 안에서 자고, 봉사하고, 또 밤새도록 또 달려오고, 이와 같은 일들을 통해서 마음이 더 기쁜 겁니다.
거기 갔던 분들은 대부분은 ‘난 다음에 다시는 안 가’ 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다음에 기회만 있으면 또 가야지’ 이렇게 마음을 먹는 겁니다.

여러분 정작 봉사하고, 수고하고, 애쓰고, 나누는 기쁨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정말 체험해 본 사람은 그 기쁨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고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눌 수 있는 기쁨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배의 기쁨도 나누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저희 교회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이 7천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전교인 가운데 세례 안 받은 사람이 50%이상 되는 교회는, 그것도 아주 조그만 교회도 아닌데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께 너무 감사하고, 마음이 흡족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우리 성도들이 주의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기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전에 어떤 분이 몸이 불편하셨는데 늘 계단 난간을 잡고 의지해서 오셨어요. 그런데 좀 못나오셨어요. 그때만 해도 교인들이 지금보다 많지 않은 때니까 제가 심방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그 말씀이 아직까지도 안 잊혀져요.
뭐라고 얘기하시냐면 “목사님 제가 예배에 참 굶주려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려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배에 갈증이 나고 예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움직일 수만 있으면 갈수 있는데 내가 움직이질 못하고 이제는 이렇게 자리를 보존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데 목사님 오셔서 예배를 드려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예배에 초청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까?

요즘 저는 장마철이 돼서 비가 오면 너무너무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갖고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해요. 우산이 있으니까 비를 안 맞아도 되고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요. 우산이 없으면 비가와도 우산 별것 아니지만 그런데도 비를 다 맞고 있어야 합니다. 어디 오래 갈수도 없단 말입니다. 우산이 있으니까 어디든지 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우산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 있는 것이 참 감사해요. 제 자동차에도 두어 개 넣어놓고 어떤 사람 우산이 없으면 제가 줍니다. 그러면 쓰고서 가지라고 해요. 주지 말고. 그럼 굉장히 좋아합니다.
우산 하나 주고 인심 씁니다. 그거 우산 비싸지도 않잖습니까?
그럼 그 사람 우산 쓸 때마다 우리 목사님이 주신 것이라고 기뻐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것인지 모릅니다. 또 비가 젖었는데 집에 들어오면 갈아입을 옷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합니다. 만약에 갈아입을 옷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입은 채로 젖은 것 다 말려야 하는데 감기 들릴 수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다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참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에 빠짐’이라고 <야고보서 1장 14절>에 말씀합니다.
내 욕심에 끌리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제가 천명을 돕는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우리가 그렇게 살게 하시고, 마침내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 주셔서 그렇게 될 겁니다.
‘하나님, 나하고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아요.’ 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내가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너의 어려운 적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겁니다.
이게 맥추절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은혜를 잘 헤아려봐서 감사를 드려라. 그리고 너는 너의 모든 좋은 것이 있을 때, 네 이웃과 더불어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어야 돼. 그리고 세 번째는 너의 어려운 때를 기억하라.
우리 한 번 따라서 합시다.
“너의 어려운 때를 잊지 말아라.”
“나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맙시다.”
“내가 어려웠을 때 조금이라도 나를 도와줬던 분들을 잊지 맙시다.”
그래요. 어려운 시절을 잊지 말고, 어려웠던 때를 잊지 말고, 나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줬던 분들 잊으면 안 됩니다.
나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줬는데 그것이 내게 있어서 결정적인 큰 기쁨이 됐을 겁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우리는 은혜를 입으면서 살았습니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시절이 없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다 어려운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또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러 가지 풍족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내적으로 갈등했던 어려운 순간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우리 혼자 어려운 문제를 풀어왔습니까? 그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나 혼자는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오지 않았습니까?
누군가가 나의 잘못을 덮어주었고, 누군가가 대신 나를 변호해 주었고, 누군가가 내게 용기를 주었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대신 힘이 되어주었던 적이 없습니까? 누구든지 그런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려운 때를 잊으면 안 됩니다. 고마웠던 사람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너의 어려웠던 적을 잊지 말아라’ 이 말은 ‘네가 지금 아무리 잘 되도 네가 높아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더 어려운 때를 생각해서 더욱더 겸손해라. 그때 네가 더 높아지리라.’ 하는 뜻입니다.
우리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싫은 소리 할 때 뭐라고 말씀드렸죠?
우리는 다른 것 변명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아닌데...... 나는 이런데......”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더 바보가 됩니다.
제가 세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따라서 합시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제 다 외우시고 다 하실 수 있으시죠?

누가 나보고 비난하고 뭐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아니고...... 하면서 맞서서 싸우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감사해야 됩니다. 내 부족한 점이 있는데 그것을 지적해 주셔서 내가 나의 부족을 알게 하시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내 자신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려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큰 사람이 못되고 제가 잘못해서 흡족하게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이제까지는 잘 못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제가 꼭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이 인격자예요. 그 사람이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사람이 신뢰받을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애들이 엄마 아빠가 야단을 치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엄마, 아빠, 나는 어차피 야단치나 안치나 똑같아. 달라질 것도 없어.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기대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마음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습니까?
그런데 막 야단치는데 애가 이렇게 말해요.
“엄마, 아빠,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그럼 제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잘해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말 믿어요?
안 믿죠. 당연히 안 믿죠. 이제까지 해온 것을 보면 그 말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에 그 말이 기쁜 겁니다. 또 믿어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니까 믿어주는 겁니다.

‘네가 이제까지 그렇게 수없이 말하고, 또 네가 거짓말하고, 아니면 또 네 스스로 그 일을 지키지 못하는 의지박약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렇게 각오를 해주니 고맙다. 나는 네가 한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기회를 줄 거야. 아니면 네 평생이라도 기회를 주고 싶어. 네가 늘 그런 마음으로 또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나야 돼.’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우리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하는 것은 정말 겸손한 마음이고, 우리의 삶에 대한 의지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의 심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격자일 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어차피 납니다. 내가 어디 달라지겠습니까? 나를 인정할 수 있으면 마음대로 받으시고 나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냥 나 같은 사람하고 상대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는 것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교만한 일입니다. 정말 제가 마음에 들도록 열심히 내 자신을 잘 고치고, 또 더 노력하고, 반드시 애써서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이 진심으로 든다면 그것은 진실이고, 겸손이고, 그것은 인격의 향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냥 관용구가 아니라, 정말 진심이 배어져 있는 우리 마음의 실제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훌륭한 믿음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려울 적을 잊지 맙시다.
<잠언 22장 3절>을 보면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 미련한 사람들은 절구에 넣고 공이로 빵빵 찧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고통스러워하면서 자기가 버려야 될 것을 버리지 않아요. 마치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전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내가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지, 또 내가 잘됐을 때 내가 이렇게 잘 됐지만 내게 그런 어려울 때가 있었지. 하나님이 도와주셨지. 그러니 나는 더욱더 겸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지. 이런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즘도 유월절만 되면 왜 굳은 발효되지 않은 딱딱한 빵과 쓴 나물을 먹습니까?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던 때를 다시 회상합니다. 출애굽시켜 주셨던 때, 광야의 때, 고통의 때를 생각하며 그들은 늘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전의를 다시 한 번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왜 우리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왜 우리는 이 시대에 맥추절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감사함을 헤아려보아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내 삶을 드림과, 그리고 내 모든 기쁨을 내 주변 어려운 이웃들 배려해야 될 사람과 나눔과, 그리고 어려운 때를 잊지 않고 기억해서 내 삶의 겸비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더욱더 귀한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위하여 오늘 맥추절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아름다운 주의 성도로서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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