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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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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마태복음 14:22-33

사람은 대부분이 살아가면서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란 삶의 위기에서 겸손히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 일이 없는 평상시에"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정체성을 생각하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바쁘게 사는 가운데"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인생본질을 생각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그러다가 삶에 위기가 오거나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보입니다. 자신이 누군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뒤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삶에는 때때로 위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수시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지혜롭게 잘 이겨내기도 하지만 잘못되어서 위기 앞에 낭패를 겪는 때도 많습니다. 이제 여름철이 되면 가장 무서운 것이 장마로 인한 피해입니다. 해마다 홍수로 인해서 많은 인명과 물적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한 해도 편안 해가 없습니다. 그 뿐입니까?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걱정입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걱정입니다. 이 모든<환경적 위기>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수 십 년을 아무런 질병 없이 평소 건강에는 자신 있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덜컥 병이 나더니 그만 그 자리에 누워서 세상을 떠나버리고 마는 경우를 봅니다. 이처럼 생각지 못했던<건강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는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던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에 큰 어려움이 닥쳐오고 한 순간에 모든 행복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거리에 나 앉게 되고 마는<경제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이런 경우를 만납니다.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는데 무슨 문제인지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렇게 좋았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가슴 아픈 겁니다. 혹은 피를 나눈 형제지간에도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돌아서는 경우도 봅니다. 이처럼 때로는<인간관계의 위기>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도 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위기들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위기들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언제든지 닥쳐 올 수 있는 위기들입니다. 문제는 이 위기들을 신앙 안에서 잘 다스리지 못해 그 결국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신앙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환경의 위기가, 건강의 위기가, 경제적인 위기가, 인간관계의 위기가 잘 해결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서 마침내는 신앙의 위기로까지 몰고 간다면 이게 큰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그 위기 속에서 신앙적 승리를 이루지 못하고 신앙의 실패자로 끝나 버린다면 이 사람의 인생은 한없이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총체적 위기를 이길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 앞에서 당황해 하는 제자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했고 예수님은 이것을 피하여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디베랴바다를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의 대부분이 밤이고 낮이고 물에서 살던 어부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리 넓지도 않은 이 디베랴 바다는 마치 손금을 보듯이 훤히 알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도 충분히 건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걱정도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에 고난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왜 하필 지금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이 위기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반드시 필요한 위기였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숙된 신앙을 보이기 위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자, 상황을 살펴봅니다. 방금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면서"드디어 메시야가 왔다. 이 분이 왕이 되면 우리는 이제 무엇인가 한 자리들을 할 것이다."는 생각에 아마도 들떠 있었고 흥분되어 있었을 겁니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생각을 잔뜩 품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이 생각을 뜯어고치는 사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자들에게는 이 풍랑의 위기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풍랑이 일어났을 때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장관노릇 한번 하는가했더니 장관은커녕 여기서 지레 죽는가보다'생각했을 겁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제자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구원문제입니다. 살아야 되겠다는 문제 오직 그 뿐입니다. 그 상황에서 나라의 정치문제며, 명예의 문제가 대수이겠습니까? 중요한 문제는 나의 실존,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위기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은 인간이 실존의 문제를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 제자들이 이 문제 때문에 허둥대면서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보지만 아무리해도 거슬리는 파도를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위기 속에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인가하면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게 참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몇 년을 같이 다녔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또한 극한 위기 앞에 서 있을 때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그 주님을 알아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캄캄한 위기 앞에 우리의 이성도 어두워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정말 문제는 신앙입니다. 위기 앞에서 어떤 믿음이 있느냐가 문제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부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극한의 위기 앞에서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폭풍 속에 있을 때, 실망과 좌절 속에 있을 때, 의심의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할 때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을 보면 인간의 믿음이란 때로 이렇게 초라하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셔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고, 언제나 주님과 동행해야 안심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오늘도 제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더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랑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는 인간의 모습니다. 베드로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정말 주님인가 확인해보려고 하고 이에 예수님은 그 베드로에게 믿음 보여줄 기회를 줍니다.

28절입니다. "정말 주님이라면 나를 한 번 물위에 걷게 해보십시오"."오라"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저벅저벅 몇 걸음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물속에 빠져들고 맙니다. 여러분, 참 궁금하지 않습니까?'왜 베드로로 하여금 몇 걸음이라도 걷게 하셨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슨 기회입니까?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기회입니다.

베드로가 오늘 믿음이 없어"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는 주님의 책망을 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다를 걸을 수 있다는데 의심하고 믿지 못한 것 때문에 책망 받습니까? 아니면 풍랑이 잔잔해 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지금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의심이요, 불신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정말 당신이 주님이라면 나를 물위로 걷게 해보십시오"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 "오라"하셨고 바로 몇 걸음 걸을 수 있었으면 그 때 베드로는 주님을 인정하고 믿었어야 했습니다. 그 몇 걸음이라고 하는 순간이 베드로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주님임을 인정하고 끝까지 갔어야했습니다. 그랬으면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거짓말투성이입니다. 미성숙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끊일 날이 없이 믿음도 없이 살아갈 때도 있지만 그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오라"오라는 그 때가 바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때임을 알고 오면 됩니다. 그리고 단 몇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해서 나아가면 물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환경을 무시하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성을 무시하고 살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이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변화에 대한 기대입니다. 즉 예수님을 바라보면 환경도, 생각도, 사고도 변화 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위기 앞에 섰을 때 발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차피 인생에는 위기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는 위기로 끝나버려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로 볼 수 있어야합니다. 무슨 기회입니까?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보십니다. 우리의 위기를 보십니다. 인내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기억하시며 "오라"하실 때 내 딛는 몇 걸음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임을 생각하며 언제나 최상의 믿음의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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