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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미에게서도 배웁시다 (잠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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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미에게서도 배웁시다.
성경; 잠언 6:6-11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꿈입니다. 꿈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꿈에는 반드시 어떤 암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지는 것이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깨어보니 꿈에 놀라고 오줌을 싸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 인간이 지금은 비행기를 만들어 마음대로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바다 속을 물고기와 경주하며 숨이 가쁘도록 헤엄쳐 다니던 꿈을 꾸던 인간이 배와 잠수함을 만들어 넓은 바다를 운항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며 하늘을 날고 싶었고,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면서 바다를 마음대로 다니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간은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이 되어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비로소 이루게 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하면서도 결코 전문적이지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모방하여 배우고 익혀서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넓게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문명을 접하며 견문을 넓히기도 하지만, 작게는 우리들의 주변에서 미물을 통하여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기간입니다. 교회 생활의 또 다른 면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선생님들이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소품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입니다. 일상적인 장을 떠나서는 큰일이 일어나는 줄 압니다. 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워야 하고, 태권도를 배워야 만 되는 줄 압니다. 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본문 말씀은 개미에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아 은혜 받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첫째, 모방을 통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6)”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창조적이기 보다는 모방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9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물들의 사는 모습을 통하여 배우기도 하고, 영웅이나 위인들의 삶을 통하여 보람된 삶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본받고 싶은 위인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의 성숙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받아드려 본받아 생활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 스스로 행하는 것입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7)”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도 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행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미물인 개미조차도 스스로 행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차질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습은 너무 부끄럽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는 이것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닐까요?

  셋째,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경험론자인 프랜시스 베이콘은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일제 암흑기에도 많은 선각자들이 이것을 알고 사방으로 흩어져 국민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고 있었습니다. 먼저 배운 사람은 그만큼 앞서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패쇄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은 뒤처져서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역사적인 수모를 겪게 된 이유도 선진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비록 미물이라도 그것에게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넷째,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9)”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개미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은 부지런함입니다. 일중독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는 행위입니다. 닥아 올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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