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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길을 선택하시렵니까? (창 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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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창13:1-18
제목/어떤길을 선택하시렵니까?

1935년 계용묵 선생이 쓴 “백치 아다다”란 소설이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백치에 가깝고, 벙어리인 아다다는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지참금을 가지고 겨우 시집을 가게 된다. 처음 5년 동안은 시집갈 때 가지고 간 논이 시집 사람들의 생계를 유지시켜 준 덕에 아다다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 그런데 남편이 투기를 하여 돈을 만지게 되고, 거기에다 첩을 얻어 생활하게 되자, 아다다는 결국 친정으로 쫓겨오게 됨.
친정에서 아다다는 구박만 받다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수롱이라는 청년을 찾음. 수롱이는 아다다를 데리고 둘만의 행복한 삶을 위해 신미도라는 섬으로 감.
신미도에서 수롱이는 아다다에게 삶의 용기를 주려고 그 동안 모은 150원을 꺼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밭을 사서 살자고 하는데 아다다는 그 돈을 보고 절망감이 듭니다.
아다다는 자기의 이전에 누리던 행복을 빼앗은 것이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아다다는 수롱이가 잠든 틈에 몰래 돈을 가지고 나가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뒤쫓아 온 수롱이는 이성을 잃었고, 그 화난 모습에 아다다는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극도로 화난 수롱이는 아다다를 발로 걷어차 결국 아다다도 바다에 빠져죽게 됩니다.

돈으로 인한 비극을 그린 작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곧 그것이 불행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주는 소설입니다.

아브람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뼈저린 실패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손길을 체험한 채,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보겠다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롯도 함께 있었습니다.

1.아브람과 롯이 처한 환경입니다.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 아브람과 롯은 서로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2절과 5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고,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런데 문제는 소유가 많아짐으로 인해 서로 다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7절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그들의 재산과 짐승이 작을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점점 가족이 많아지고 가축이 많아지니까, 자연히 그 짐승을 먹일 물이 필요했고 목초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브람과 롯 사이에 지금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남이 아니라 조카와 삼촌이었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지금까지는 서로 돕고 살았지만 이제는 서로 반목하고 대립되는 상황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가나안 그리고 애굽 그리고 다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이동 생활속에서도 아브람과 롯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나 다툼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달랐습니다. 한곳에 정착하며 살게 되고,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한 댓가로 재산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돈이 그리고 물질이 개입되니까, 인간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돈의 힘이고 물질의 힘입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부자지간의 정을 떼어놓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미래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부유해 지려는 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두 사람의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것을 보는 이웃에게도 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이야기 합니다.
#8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먼저 우선권을 롯에게 줍니다.
영어성경에 “네 앞에 온 땅이 있다, 네가 원하는 어떤 땅이라도 마음대로 택하라, 나는 네가 택하고 남는 그 땅을 가지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칙대로 하면 가나안땅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사람은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우선권을 롯에게 주고 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지금 롯과 재산 때문에 싸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는 모습이거든요. 그 재산을 누가 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형제지간 같은 조카와 서로 더 많이 가지겠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운 모습이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습을 이방사람들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보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면서 다툼을 멈추게 하지고 제안한 것.

여러분,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모릅니다. 점점 자라면서 알게 되고 이해해 가는 것이죠.
여러분 누가 포기하고 누가 양보합니까? 부모님입니다. 언니고 손위 사람들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무엇입니까?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하여, 교회와 구역을 위하여 내가 당연하게 할 말이 있고, 마땅히 가져야 할 것도 약한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하여 양보하고 포기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브람은 자신이 먼저 땅을 차지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럴 권리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그는 평범하고 보통사람은 되었겠지만, 놀라운 믿음의 사람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병들고 죽어야만 될 그리고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포기 하셨습니다. 둘도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말입니다. 보내지 않아도 됐습니다. 죽이지 않아도 됐어요.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니네들 목숨 포기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그 아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이 그렇게 양보하고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지금까지 자기에게 베풀어 주셨던 그 감격스러운 은총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바로 그 생각을 한 것이죠.
재산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겠지요,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것 보다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은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한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그는 순순하게 그 권리와 권한을 포기하고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풀과 물보다 더 귀하고 놀라운 영원한 언약과 생명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포기한 자들에게는,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큰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믿음의 성숙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롯이 선택한 길입니다.
롯은 참 철없고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습니다. / 롯에게 있어서 아브람의 존재는 족보상으로는 삼촌이었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는 차원에서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신이 지금 데리고 있는 모든 짐승과 종들이 누구 때문에 얻었는데요.
그런데 아브람이 먼저 땅을 차지하라고 하면 “삼촌 참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삼촌 덕분입니다. 제 종들이 잘못해서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삼촌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시면, 제가 그 남은 땅을 택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말했어야죠.
그런데 그는 아브람의 말에 한마디 대꾸도 없이 자신이 선택할 땅을 둘러봅니다. 혹 무슨 말을 했나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책을 조사해 봐도 감사하단 말이 없었습니다.
#10-11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한마디로 좋은 땅을 골랐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온 들을 바라보았을 때,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했다고 했습.
'여호와의 동산같다'는 표현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최고로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 그는 엄청나게 좋은 축복의 땅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그날 롯은 일생일대에 최대의 기쁨에 잠겼을 것입니다.
롯은 이제 아브라함을 버리고 요단 온 들, 즉 애굽 땅과 같은 곳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을 떠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서 당장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나갑니다.
롯은 교회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예수님 대신 돈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 믿을 필요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좋아 보일 때가 있습. // 예수 안 믿어도 더 잘사는 사람이 있고, 교회 안다녀도 가정이 편안하고, 애들 잘되고 월급 많이 받는 것을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 // 내가 바쁠 때 교회 나가는 것이 번거러울 때도 있고, 헌금하는 것이 아까울 때도 있고, 봉사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어 보일 때도 있습. 세상이 하나님보다 좋게 보일 때가 있습.
그러나 그렇게 좋아 보이는 모든 것은 잠시 동안입니다.
# “여호와께서 소돔과고모라를 멸망하기 전이었는 고로”
롯이 선택한 땅은 눈으로 보기에는 물이 많고 풀이 무성해서 좋아보였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뿐이었습니다.
#13절: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큰 죄인이었더라.”
영어성경 “한번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아주 큰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고 있다”고 표현.
롯이 선택한 소돔 땅은 악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악하였고 그 땅이 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 롯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풀만 보고, 물이 많은 것만 보았지 소돔사람이 악한지는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땅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로만 알고 그곳을 선택한, 안타까운 사람 롯, 바로 그 사람입.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축복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롯은, 자신이 선택한 그 물이 많고 땅이 비옥한 그 곳에서 빈 털털이가 되고, 겨우 두 딸과 함께 목숨만 건졌습니다. 그 많던 재물과 짐승들은 자신이 구원받는데 아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들리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귀에 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동행하심.

우리성경 /요단들을 바라보았다, 영어 성경 “롯이 요단 온 들을 자세히 보았다”
어디에 물이 많은지, 어디에 풀이 더 많은지, 어디로 가면 내 짐승들이 더 많은 새끼를 낳을지 자세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자신의 눈으로요.
아무리 자신의 눈으로 잘 보아도 그 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자세히 본 땅이, 지금까지 모아 두었던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브라함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나안땅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영적인 생각보다 육적인 생각이 앞섰기에, 신앙도, 은혜도, 하나님도 다 버린 채 조금 후에 멸망당할 땅인지도 모르고 그 땅을 선택한 것이죠.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을 하나님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아브라함의 선택입니다.
롯이 선택하고 남은 그 땅은, 물도 부족하고 토양도 좋지 않고, 풀도 없는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을 더 깊이 보고 믿었기에 그곳에 남아있기로 작정했습니다.
#12절 “아브람은 가나안땅에 거하였고” 즉 영적인 것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택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택했고, 영원한 언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렇게 영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오늘 4절과 18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그 은혜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전에 애굽에 내려갔었는데, 그곳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선택할줄 압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영적인 삶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더 이상 재물과 육축과 그 많던 종들이,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고 신앙고백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롯은 보이는 복을 추구하다 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영원히 쇠하지 않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이었습니다.

#14-17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영적인 것을 선택했을 때 입니다.
*언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영원한 축복과 후손의 언약을 주십니까?
말씀을 택하고, 주님을 택하고 언약을 택했을 때 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우리와 우리가정과 교회에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말씀대로 살기를 다짐할 때, 믿음으로 신앙으로 살기를 다짐할 때 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영적인 것을 선택한 것.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지만, 롯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가나안땅과 같이 땅은 박하고, 물이 없고 풀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버리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손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름진 땅보다도, 많은 풀과 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그 능력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 인생이 무엇으로 사는 겁니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생을 사랑하며 온전한 복을 주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처지가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아브라함이 되든지 롯이 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영의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생명을 얻든지, 아니면 육의 사람 롯을 택하여 죽음의 길을 가든지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구를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여 영적인 것을 선택하므로, 영원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영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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