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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시 3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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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사람들 가운데 인생을 아름답게 창조해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①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네 살에 겨우 말을 시작했고 일곱 살에 겨우 글을 배웠습니다.
  ② 아이작 뉴턴은 초등학교 시절의 성적이 맨 꼴찌였습니다.
  ③ 토머스 에디슨은 담임선생에게 “12년 동안의 교편생활 중 이렇게 둔한 학생은 처음”이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④ 월트 디즈니는 신문사에 기자로 취직했지만 편집국장으로부터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신문 기자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⑤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해서 학교를 일 년 더 다녔습니다.
  ⑥ 베토벤은 32세에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그 후에 주옥같은 제9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⑦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최고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터에서 왼팔을 잃은 상이군인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 때문에 원망하고 좌절하여 불행한 삶을 산 사람도 많지만 부족한 것을 알고 노력하고 기도하여 행복한 생애를 누린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입니까? 누구나 복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저주스러운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 땅 위에서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소원입니다. 성경은 장수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고 축복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복 가운데 하나에 속합니다. 오늘도 무더운 날씨를 극복하고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혀를 조심합시다

  본문 13절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먼저 복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혀를 악에서 금하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생각하고 절제하고 통제를 해야 합니다. 입술에 보초를 세워 언어를 선별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헛된 말을 삼가야 합니다. 아무리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진리가 아니면 혀를 금해야 합니다. ‘입술에 궤사한 말을 금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말의 억제와 경계를 해야 합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고 하나님께서 귀는 두 개를 만드셨지만 입은 하나만 만드셨습니다. 입이 하나인데도 얼마나 시끄럽고 혼란합니까? 쏟아 낸 말 때문에 서로에게 큰 상처와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식과 능력과 권력과 좋은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혀를 조심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사용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망신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때로는 10년, 20년, 혹은 평생을 공들여 쌓아온 인격과 지위와 물질을 말 한 마디로 무너뜨리고 깨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고통 중에 살았던 여인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여인입니다. 누군가 헬렌 켈러에게 물었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때 헬렌 켈러가 짧게 대답했습니다.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은 소경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비전이 능력입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꿈입니다. 목적지향적인 삶입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비전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교육이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비전과 교육은 함께 갑니다. 고난과 교육은 함께 갑니다. 고통스런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의 미래를 빛나게 해 주는 것은 교육입니다.

  맹인으로서 탁월한 삶을 살고 있는 산증인이 있습니다. 강영우 박사님입니다. 실명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지금은 명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장애인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강 박사님은「교육을 통한 성공의 비결」이라는 책에서 고난이 축복이 되었음을 간증합니다.

  “비록 나는 실명은 했지만 이 세상에서 축복을 아주 많이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주시어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게 하시고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생의 가장 낮은 바닥에서 내적으로는 신앙의 힘과 외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오늘의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신앙과 교육이 동시에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을 포기하거나 저주하지 맙시다. 남을 욕하거나 해롭게 하지 맙시다. 저주와 원망의 순간에 혀를 금해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처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혀의 방향을 조절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격려와 칭찬과 기도와 찬송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독약과 쓰레기와 같은 파괴의 도구가 아닌 생산과 건설의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화와 복, 경멸과 존경, 실패와 성공, 싸움과 평화, 저주와 구원, 지옥과 천국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혀를 조심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선을 행합시다

  본문 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선을 행위로 나타내는 데는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의미의 선은 ‘악을 버리는’ 것이고 적극적인 의미의 선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해야 합니다. 도적질을 하지 않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남을 돕고 구제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우리는 강도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강도 만난 자를 치료하고 살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되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용감히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것은 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오른편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나그네를 영접, 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병든 자를 돌아봄을, 옥에 갇힌 자를 찾아가 보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선을 행한 의인들은 영생에 이르는 최고의 복을 받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지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귀히 보셨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것과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과 고기를 보셨던 것입니다. 헌신은 고귀한 것입니다. 작지만 이것은 이 어린아이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헌신을 축복하십니다. 이런 헌신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헌신의 씨앗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남자 오천 명을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먹이고도 음식을 열두 광주리나 남긴 놀라운 기적은 작은 소년의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작은 것이지만 자신의 전부를 드렸습니다. 헌신은 기회입니다. 기적의 기회입니다. 축복의 기회입니다. 헌신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헌신은 주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말 놀랍습니다. 그 축복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풍성한 어떻게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있는 기름을 엘리야를 위해 먼저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마지막 것을 드릴 때 하나님은 몇 십 배, 몇 백 배, 몇 천 배로 갚아 주십니다. 심지 않는 것은 거둘 수 없습니다. 심은 것만을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둡니다. 미움을 심으면 미움을 거둡니다. 축복을 심으면 축복을 거둡니다. 용서를 심으면 용서를 거둡니다. 물질을 심으면 물질을 거둡니다. 헌신을 심으면 헌신을 거둡니다. 하나님은 항상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감자 한 쪽을 심으면 60개를 거두게 하십니다. 벼 하나를 심으면 140~170알을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먼저 심어야 합니다.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때 풍성한 축복을 경험합니다.

  선을 행하지만 때로는 비판과 실망이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가 선을 행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갚아 주십니다. 선을 행하면 필요한 시간에 자신과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후히 갚아 주십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이미 복을 받은 것이고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화평하게 삽시다

  본문 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선을 행하게 되면 이웃과 화평하게 됩니다. 화평하게 되면 선을 행하게 됩니다. 선과 화평은 필수이며 정비례합니다. 선을 행한 만큼 화평하게 됩니다. 반면 악을 행하면 모든 화평은 깨어지게 됩니다. 이는 불행이고 지옥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화평하게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화평을 싫어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깨뜨립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화평이 없으면 불행이고 지옥입니다. 세상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화평하면 행복이고 천국입니다. 마음과 가정과 교회와 삶의 자리에 화평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최고의 복입니다.

  존 고든이 쓴 「에너지 버스」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시간을 냅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연스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관계란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영양분을 먹고 자라는 생명체입니다.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질 높은’ 관계를 맺는 왕도입니다. 
  둘째, 귀를 기울입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말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들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경청은 존경이고 선물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합니다. ‘공감하며 듣기’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화의 90%가 아무런 감동 없이 그냥 오고간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셋째, 인정해 줍시다.
  트로피나 상을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한 일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한 ‘인격체’로서 인정해야 합니다. 잘한 일을 칭찬할수록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성과를 냅니다.
  넷째, 섬깁시다.
  진정으로 높은 사람은 자신을 대접하는 아랫사람을 위해 군림하기 보다는 숱한 사람들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타인에게 많은 도움을 줄수록 여러분은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섬기는 만큼 섬김을 받게 됩니다. 섬김의 지도력이 가장 건강한 지도력입니다.
  다섯째, 장점을 이끌어 냅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장점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애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소송이 많습니다. 일본의 155배나 많습니다. 국가와 국민 전체가 소송에 휘말려 있습니다. 고소와 고발과 싸움이 너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화평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싸우면 다 잃어버립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비결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는 것입니다. 화평하면 다 얻게 됩니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싸움의 사람이 아닌 화평의 사람이 됩시다. 그것이 복 받은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혀를 조심하고 선을 행하고 화평한 삶을 살아서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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