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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강둑이 터져야 한다 (요 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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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강둑이 터져야 한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은 성령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 하나면 다른 복은 없어도 좋다고 생각되는 그런 복이 있을까요? 성령님이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복입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제 안에 오실 수 있느냐 말입니다. 3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성령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두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샘물과 같은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4장13-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하여 마귀의 종노릇하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사람이 속죄의 은총을 받아 성령님을 받게 됨으로 새 생명을 얻고, 거듭나게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샘물과 같은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샘물 정도가 아니라 강과 같이 흘러 넘치는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외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7-39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성령님은 단지 그를 영접한 사람이 영생을 얻게 하시는 정도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가정을 변화시키고 직장을 변화시키고 도시가 소생되게 하고, 민족을 부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일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47장에서 에스겔이 보니, 성전에서 물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에는 무릎, 그 다음에는 허리에 차더니, 그리고는 건너지 못하는 강이 되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소생하여 살아나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 9-12절에 보면 이 강으로 인하여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의 역사가 강같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신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통해서 이런 역사를 이루어내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엄청나고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하신 때가 예수님께서 매우 어려운 형편에 계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다 예수님을 떠나가고,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환경과 여건이 어렵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지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부흥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약속은 분명한데 현실은 강과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지요? 예수님의 약속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성령님께서 마가 다락방 120문도에게 임하셨을 때, 120문도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다시 오실 주님 나라를 증거하기 원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7절)

그러나 그들이 성령님이 주신 복에 취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도 한 동안 예루살렘에만 갇혀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지만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역사는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엄청난 핍박이 일어남으로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을 때, 성령님의 역사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성령의 강같은 역사를 가로막는 둑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 둑은 어떻게 터지는 것입니까? 우리 고집과 불순종이 꺽어지면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고집, 불순종, 자기 중심의 생각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잘 모르시면 가족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싶으셔도 우리 자신의 고집 때문에 성령님이 원하시는 일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완고한 성품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는 착하다, 성격이 유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영적으로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격 착한 것하고 순종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여러분에게 오신 성령님의 엄청나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셔야 되는데,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이 성령님 안에 무너져야 합니다. 강둑이 무너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은혜가 우선 가족들에게 흘러나가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거짓말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매우 엄격한 분이라 거짓말하는 아들에게 매를 대었는데, 매가 10대가 되고 점점 늘어나 100대까지 때렸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매 100대를 때리게 되었고 아이도 울고, 때린 아버지도 울었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물으시더랍니다. ‘너는 항상 잘했니?’ ‘아닙니다.’ ‘네가 잘못했을 때마다 네게 매를 댔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겠니?’ 그제서야 십자가 사랑과 용서의 복음이 마음 깊이 깨달아지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울면서 자기가 아들에게 매로 다스린 것을 회개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또 거짓말한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때, 탕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신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온 집안에 풍선을 달고 장식을 하고 “웰컴”이라고 써 붙이고 음식을 준비하고 파티를 했습니다. 아들은 오늘은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잔치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비로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알겠더랍니다. 아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반신반의하더랍니다. 아버지가 저러지만 언제 폭발할지 몰라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사랑을 표현하고 고백하고 때린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농담을 하던 날, 목사님은 비로서 이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로 여김을 깨달았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모든 교인들에게 적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모든 문제가 다 풀리더랍니다. 모든 목회 전략, 목회 계획이 그 속에 있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이 약속대로 우리에게 오셨는데 그 분으로 인해서 우리 가정은 천국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 안에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 교회 안에 이루어져야 하고, 여러분의 일터에서 체험해야 하고 또 그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 민족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환경 탓하지 마십시오. 나쁜 사람 만났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은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주목하십시오. 성도들의 각 가정에서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자기 고집과 자기 생각을 꺽고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한다면, 강둑이 터진 것 같은 은혜가 넘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직장 안에서, 학교 안에서도 은혜의 강 둑이 터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성령의 역사는 성령께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면 은혜의 강이 흘러 날 것입니다. 

  9년 째 일본에서 사역하시는 CCC 김성철선교사님을 일본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일본에서 한 번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독도 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커졌을 때, 그렇게 일본 사람들이 밉고 용서가 안되더랍니다. 일본에 있다 보니 더욱 힘들어 일본 선교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지더랍니다. 그 때 필리핀에서 CCC 세계 선교사 대회가 열렸는데, 저녁 기도회 시간에 눈물로 기도했답니다. 한국말로 울면서 “하나님! 도무지 용서가 안됩니다! 그들이 사랑해지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나는 일본을 이미 용서하였는데 너는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는 음성이 들렸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용서와 사랑이 일어나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일본인 목사님 한 분이 무릎을 꿇고 계시더랍니다. 그리고 일본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김선교사님, 우리 일본을 용서해 주세요!” 하더랍니다.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며 일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뜨겁게 일어나더랍니다. 그 일본인 목사님을 붙잡고 울었답니다. 주위에 있던 세계 선교사님들이 다 둥글게 모여서 같이 기도하더랍니다. 그 날 이후로 일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완전 해결받았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여건이 어렵고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완고함이 꺽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1999년 부산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흐르는 교회] 라고 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표어를 정하고 너무 멋있어서 처음에는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큰일났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부산, 그것도 300여 명의 작은 규모인 우리 교회가 어떻게 강같은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 교인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비웃지나 않을까?‘ 신년 설교를 앞두고 답답해 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갑자기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가 다락방의 120문도였습니다. 그들은 온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고, 로마가 변화시켜 전 세계로 복음이 전해지는 발판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120명보다 적은가? 예배당 건물이 마가 다락방보다 작은가? ’왜 네가 작다고 하느냐?‘ 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부흥시키시려는 계획이 있으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을 우리를 통하여도 이루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감리교 목회자 기도 모임에 갔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교회 개척 10년이 되셨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생각하는 것은 돈이었고, 가장 큰 두려움은 목회 실패하는 것이었답니다. 청약저축 통장을 만들었는데 얼마 후 교회 근처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발표가 있었답니다. 부동산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 때부터 목사님 머리에는 부동산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얼마나 남을까?’ 기도 시간에도 예배 시간에도 부동산 생각만 나더랍니다. 그러니 너무나 괴롭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무엇을 믿느냐? 나냐 돈이냐?’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청약저축 통장을 해지하려고 여러 번 은행 앞까지 갔었지만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것이 있으면 당장 몇 억이 생기니. 그래서 결심하고 설교 시간에 교인들에게 고백하였답니다. 청약통장을 해약하러 갔더니 통장을 만들려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는데, 마음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결국 해지하겠다고 하니 왜 그러냐고 말리는 말에  “내겐 더 큰 집이 생겼습니다.” 하고 은행 문을 열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돈을 비교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내게는 비교가 된 것이 너무나 애통하고 죄송했다.“ 는 그 목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세우고 계시구나!

하나님께서 지금 이 민족 가운데 거룩한 세력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때에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루느냐? 이 민족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주님 재림을 위해 드려진 민족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느냐? 아니면 이 고비 앞에서 다시한번 무너지느냐 하는 기로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감당하려면 거룩한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 민족의 장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서부터 나와야 하는데 이 문제가 우리에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재정을 다루실 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교회 재정이 너무 힘듭니다. 이자로 관리비 부담이 너무 큽니다.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언제쯤 여유롭게 살게 하시렵니까? 좀 넉넉하게 교회 살림을 할 수 없습니까?” 그 때 ‘너는 왜 네 혈관이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장은 왜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수도관은 왜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서 왜 교회 통장에는 돈이 쌓이기를 원하느냐? 교회 재정도 깨끗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자가 해결된 후에 이자 대신에 선교비로 구제비로 재정을 깨끗하게 흘려보낼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여 보내시기 전에 만나로 훈련하신 교훈을 모르느냐?’ 하나님은 쌓아 모으지 않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은 느끼지 못합니까? 요즘들어 옛 생활을 청산하게 하고 은밀한 죄도 짓지 못하게 하고 손해도 감수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살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십니까? 성령의 역사가 강같이 흐르려면 우리가 준비할 것은 깨끗한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민족 가운데서 거룩한 자들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누가 이 민족을 책임질 세력입니까? 통일을 이룰 중심 세력이 누구입니까? 지금 이 땅에 사명을 감당할 거룩한 세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 하면 손해보고 뒤처지고 속고 무시당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세력을 키우려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이 나라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보라는 소리를 뻔히 듣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민족을 맡길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다시 오지 않을만큼 중요한 복받을 기회를 우리가 얻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울면서 간청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몰아서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은 답답하셨던 것 같습니다,

민수기 11장 19절 이하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드디어 메추라기 떼가 몰려왔습니다. 하늘이 온통 시커멓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민수기 11장 32절에 보니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을 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0호멜은 쉽게 말씀드리면 대략 열 가마 정도를 말합니다. 그것도 하루에 그렇습니다. 그리고는 탐욕스럽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1장 33절 이하를 보면 성경에서 가장 허무하고 슬픈 장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고기가 입 속에서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큰 재앙이 내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넘쳐도 욕심있는 사람을 통하여는 흘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둑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을 감당하고 전세계 복음 전도를 감당하려면 부자가 아니라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몰라서 손해보고 속고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보라서 용서하고 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강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우리 교회가 죽고,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면, 감리교회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살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 교회만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위하고,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때 은혜의 둑은 터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이제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통로를 찾으십니다. 쌓아두는 것은 오히려 복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은혜의 강둑이 터지고 우리가 깨끗한 통로가 되어 성령님의 강같은 은혜가 가정에 교회에 직장에 세상에 흘러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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