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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복된 만남 (요 1: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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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가장 복된 만남 
본문말씀 : 요한복음 1장 46-51절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니 빌립은 그에게 "와서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 나다나엘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a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요 1:46 - 51)

정채봉님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여러분은 어떤 만남을 만들고 있습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만나셨습니까?  저는 이시간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만남을 갖도록 주선하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자주 만나고 싶고, 함께 차도 마시고 싶고,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 오래 오래 만남을 유지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지독하게 편협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젊은이였습니다. 예수 믿는 이들을 특별한 이유없이 미워하고 잡아 가두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도가 지나쳐 살인까지 서슴치 않았던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날도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려고 여행을 떠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던 사울은 한순간에 변화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젊은 날에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특별한 목표도 없고 비전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열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전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예수님이 만나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예수님과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함께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 네 사람이 만나 서로의 약점을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친구는 나는 사실 거짓말을 고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친구는 도벽의 습관을 고백합니다. 셋째는 성적인 약점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넷째 친구만이 가만히 있어서 듣고만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너만 가만히 있으면 되냐? 우리의 비밀을 들었으니 너도 고백을 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약점은 다른 이들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라네."  먼저 고백한 사람들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약점에서 자유로운 인생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나다나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약점은 한마디로 말하면 편견입니다.  46절을 보면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그는 소위 오늘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방색의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너무 쉽게 평가합니다. 사소한 것을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고 편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처음 가졌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인식으로 느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 대한 조급한 판단으로 소중한 인연이 될 사람을 잃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편견은 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색안경과 같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이 절대 메시야일 수 없다는 편견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고 확신에 차서 소개를 하여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시도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편견은 설명만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편견의 가장 효율적인 해소는 사실을 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편견이 지독할 정도로 심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그런 편견에 입각해 심하게 욕을 해댑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편견때문에 아예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편견도 단순한 설명만으로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편견에 사로잡힌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직접 예수를 만나보고 평가하라는 말입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떠드는 소문만 듣고 평가하지 말고, 그저 출신지역이 어느곳이니까 그렇고 그럴 것이다 하고 미리 단정하지 말고 일단 예수를 만나보고, 말씀도 들어보고, 행하시는 능력도 목격하고 그분이 누구신지 평가하라는 말입니다.
 

  2. 예수님은 사람의 강점을 찾아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접촉할 때 단지 그들의 약점으로 평가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여는 것은 상대의 강점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비판받고 있다고 느낄 때 더욱 방어적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방어의 가면을 벗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처음 만나시면서 그가 예수님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함부로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47절입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마디의 칭찬이 나다나엘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였습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방어를 위한 싸움을 시도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진정성을 칭찬해 보십시오. "선생님의 생각과 판단은 참 진지하시군요. 실제로 우리 기독교가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생님의 비판은 선생님의 관심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런 기회에 한번 복음을 직접 들어 보시도록 초청하고 싶군요"라고 말해 보십시오.

  실제로 예수님은 나다나엘안에서 그런 칭찬받을 만한 강점을 보신 것입니다. 실로 나다나엘의 강점은 정직함이었습니다. 그의 안에 내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숨기는 이중 플레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정직성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이무석씨가 지은 책 "30년만의 휴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쯤 되어 보이는 한 여학생이 시내버스에서 껌을 팔고 있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버스내 승객들에게 이런 말로 호소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병든 어머니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비를 벌기 위해 껌을 팔고 있습니다. 한 통에 300원입니다. 한 통씩만 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늘 볼 수 있는 동정심을 이용하여 이익을 남기는 껌팔이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 신사가 이 소녀에게 1,000원 짜리 지폐를 내밀자 소녀는 700원을 거슬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사는 "돈을 거슬러 주는 것을 보니 넌 정직하구나. 나머지는 네가 가지라"고 했답니다. 이 때 소녀는 그 돈을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학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순간 버스안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여기저기서 껌을 사겠다고 소녀를 불렀습니다. 껌은 순식간에 다 팔렸다고 합니다.  정직이 승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다나엘의 정직함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아마 나다나엘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과 부딪치며 살다가 처음으로 예수님께 자신도 장점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장점을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은 여러분만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인정하시고 드러내 주십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의 약점을 통해 그를 바라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의 단점과 죄 그리고 실수를 가지고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그처럼 부정적인 평가는 당사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이나 약점 그리고 과거의 실수때문에 위축되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기회가 주어져도 두려워하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의 장점을 통해 그 사람을 바라보려고 하십니다. 강점을 키워주고 칭찬해주어서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이 됩니다. 비난으로 움추러 든 사람이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겁을 먹고 두려워 하던 사람이 용기가 솟아나고 담대해집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노래하며 춤을 추고 신나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시고 자신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고 더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을 되찾아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해야 진정한 만남이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참으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심을 고백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찾아 온 나다나엘에게 당신이 참으로 누구이신가를 계시하십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무슨 말입니까? "너를 이끌어 온  빌립을 만나기 전 나는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서 네가 무슨  기도하고 있었는지,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네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나는 다 알고 있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49절의 나다나엘의 반응을 주목하십시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마침내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라는 사실앞에서 우리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 구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끝나시지 않고 좀더 명확하게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나다나엘에게 알게 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의 확실한 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어지는 50절에서 나다나엘에게 무화과 나무아래 있던 너를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보다 네가 더 놀라울 일, 더 중요한 일, 더 위대한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51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로 오실 메시아이심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딤전2:5절에는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본래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진지한 구도자들이 인생을 사색하기 위해 찾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서 오실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구도의 마음을 아시고 주께서는 빌립을 그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인생의 해답이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희망이요, 구원이 되십니다. 오늘 예수님을 참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심을 믿고 그 믿음을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19세기 말에 토마스 헉슬리라는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 무리의 명사들과 시골을 여행하다가 주일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 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헉슬리는 한 사람에게 예수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여행길에도 그를 예배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헉슬리 곁에 머물러 그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이 교회에 다녀오기 까지 들어준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 같은 학자에게 논쟁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당신을 떠나도 당신 곁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친구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가 오늘 당신 곁에 친구로서 이제까지 머물기를 원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말에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오른 손을 내밀며 "그리스도가 당신 같은 친구라면 나도 그를 믿고 싶소"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진실한 친구이며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과의 복된 만남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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