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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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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8년 11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인도네시아 선교사였습니다. 체류비자가 연장되지 않아 결국에 인도네시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 줄곧 저에게는 선교 현장에 대한 빚진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 단기선교팀과 함께 우리 교회가 파송한 김창기 목사님의 사역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10여 년 동안 쓰지 못한 현지어를 사용하여 강의하도록 요청받은 것입니다. 많이 부담되었지만 부족한 가운데서 쓰임 받게 되어 기뻤습니다. 무척 기뻤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주관하는 목회자 연장교육 세미나에는 18개 군소교단의 약 140여 목회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인근에서 상당히 유명한 전도자의 부흥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감안한다면 현지 목회자들이 대단한 참석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그만큼 이 세미나에 거는 목회자들의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년 전 파송되어 결국 이 사역을 선택하고 집중하고 계신 김창기 선교사님께서는 참 귀하게 쓰임 받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단기선교팀은 목회자 영성에 관한 강의를 4차례 감당하였고, 사모님들에게는 몇 가지 게임인도법과 수공예 작품 만드는 법을 전수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마다 맛있는 요리로 사역에 지친 목회자들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군소교단에 속한 그리 크지 않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번 사역으로 위로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역지로 돌아가서 귀히 쓰임 받게 될 현지 목사님들의 사역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이분들이 섬기고 있는 게 교회 성도님들도 함께 열정적으로 주님께 헌신하고, 전도 받아 참 진리를 발견하고 주님 품에 안기게 될 새 영혼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동역함으로써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특권을 우리 교회가 누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김창기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단기선교팀과 헤어진 저는 귀국하는 길에 우리 교회가 협력하고 있는 이우림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워낙 큰 나라입니다. 선교 상황과 사역 여건이 지역과 종족에 따라 다양합니다. 따라서 선교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김창기 선교사님께서 선교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현지 목회자 연장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이우림 선교사님은 선교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개인 전도를 통한 개척선교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우림 선교사님은 지난 12년 동안 미전도종족 중의 하나인 서부자바의 S족 산골마을 사람들을 접촉해왔습니다. 선교사님의 안전을 위해 종족 이름을 말씀드릴 수 없음을 이해바랍니다. 이우림이라는 이름도 가명입니다. 선교사님은 산지 회교도들을 접촉하기 위해서 사업가 신분을 사용해왔습니다. 1998년도 IMF 경제위기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신변 위협을 느껴 다들 철수하는 상황에서 도리어 현지에 머물며 회사 설립을 이루어낸 분입니다.

가내수공업 일감을 주거나 현지인들의 경조사에 깊이 동참하면서 기회가 생기면 아주 조심스레 복음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혹시라도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선교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 모든 사역이 무너지기 때문에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번이고 실패와 좌절을 겪어내어야 했던 눈물겨운 사역으로 마침내 지하 가정교회가 4군데 세워지는 열매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단계가 못됩니다. 

선교사님께서 직접 운전하시는 차로 비포장 산비탈을 몇 번씩이나 타고 넘어가니 사역지들이 나타났습니다. 폐쇄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산골 무슬림들까지도 선교사님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이우림 선교사님께서 형성해온 그들과의 신뢰관계가 어떤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각 가정교회 성도님들의 이름과 개인 사정, 그리고 지금 접촉 중에 있는 회교도들의 상세한 사정을 저에게 들려주셨습니다. 12년 동안 섬긴 영혼들을 거의 다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독거노인의 이름을 나열하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성도의 이야기, 어느 분은 무슨 병에 시달리고 있는 지 세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요람이 나온 뒤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도님 이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 선교사님의 소개로 나니 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쪽 가슴을 앓고 계셨습니다. 생후 1년이 안돼 보이는 아들이 다른 한쪽 가슴으로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젖을 먹고 있는 아이의 귀에도 고름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고, 조그만 생채기들이 온 얼굴에 생겨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하여 방치한 나머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 부인의 한 쪽 가슴에는 고름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용기내서 보건소를 방문했을 때 직원이 하는 말 “제대로 검사받고 수술 받으려면 경비가 너무 많이 드니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그리 큰 경비가 아닐 수 있었지만 서부자바 산골 사람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비용이었기에 온 식구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선교사님 가정이 항생제를 드리고 소염진통제 연고를 정성껏 발라 드리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빨간 부위가 보였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이 호전되었는지 모른다고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이 의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재정이라도 충분하여 이 아주머니를 포함하여 고통에 허덕이는 수없이 많은 산골마을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모든 바램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니 더욱 간절하게 주님께 기도할 따름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 나니 부인은 아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적같이 완치되어 이 마을에 복음이 더 전파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살피기 위해 산골마을을 심방하면서 주님 사랑과 복음을 증거하고 계시는 이우림 선교사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이번 여름 우리 교회는 인도네시아 외에도, 러시아, 베트남, 몽골, 중국, 스리랑카, 일본, 인도 등지에서 현지의 선교사님들의 안내를 받아가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선교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이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 간혹 빗나간 선교사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그 대가로 기꺼이 지불해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리는 주님의 선교명령입니다. 각 복음서 마지막은 약간의 표현 차이는 있지만 이 선교명령으로 마감되고 있습니다. 선교명령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면서 주신 최종명령이니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문의 이 명령은 여러 각도에서 설교되곤 했습니다. 저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는 오늘 설교 제목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떠나 모든 족속에게 갈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확보하고 획득해놓은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 선교사와 선교적 삶을 사는 이들은 떠납니다. 그곳이 국내든 해외든, 사회선교사든 장애인선교사든, 선교는 떠남이 전제됩니다. 문화와 관습이 달라도,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달라도, 언어와 인종이 달라도, 경제여건과 생활수준이 달라도 주께서 명하시는 곳이라면 선교 사역자는 갑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해 낮아져 갑니다. 먼저 경험한 하나님 사랑 나누라고 명하시는 주님 얼굴 바라보며 그 사랑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자비의 손길 베풉니다. 

선교적 삶으로 부름받은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수도 없이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려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유리한 여건을 확보하려는 세상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한 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지 예측하지도 못한 채,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떠납니다. 떠나기 전 생각했던 사역 형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이리떼처럼 도사릴 수 있습니다. 섬기는 사람들의 기막힌 고통과 질고를 내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어야 합니다. 그러고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로 인해 좌절하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쓰라린 배신과 배반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끼고 관심 가졌던 불신자들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믿었던 동역자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기막힌 다툼이 마음을 쓰리게 할 수 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주목받을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해 우울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마저 들어 다른 사역을 시도해볼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머저리 훠일은 이런 선교사들의 상처를 “영광스러운 상처”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선교사라는 호칭은 듣기에 영광스럽고 낭만적입니다. 하지만 사역을 수행해내는 과정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이 요구됩니다.

뿐만 아니라, 근본주의 이슬람 지역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섬에서 불타 죽은 선교사님과 같이 종교적인 이유로 순교당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교통사고로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선교사님처럼 갑작스런 사고로 순직할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천국으로 먼저가신 고 배형규 목사님처럼  정치적이고 인종적인 분쟁 지역에서 휘말려 피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족들에게 주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잘못 대처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 반둥에는 IMLAC이라고 하는 선교사 언어훈련학교가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우선 이곳에 와서 언어를 배우고 사역지로 떠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싱글여선교사께서도 언어훈련을 잘 받고 내일이면 사역지로 출발하려고 반둥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그만 강도가 들이닥쳤습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여선교사님은 비명을 질렀고, 강도는 소지하고 있던 칼로 그 선교사님을 찔러버렸습니다. 참혹하게도 선교사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모든 선교사님들은 충격 속에서 하나님께 심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께선 복음 전할 주의 종에게 왜 이리 무의미해 보이는 죽음을 허락하셨단 말입니까?”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 때 어디 계셨습니까?” 결국 그 여선교사님을 기리는 자그만 도서관이 선교사님들의 모금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언어훈련을 받는 선교사님들이 머리 숙여 선교를 묵상하는 자리요, 사역지로 흩어져갈 때 각자의 선교 의지를 다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천국 가서나 알게 되겠지만, 그 여선교사의 죽음은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서 이렇게 쓰임받나 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 얻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쏟아 부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들의 희생 없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 사역자의 희생 없이 다른 영혼이 구원 얻지 못합니다. 우리의 수고와 희생 없이 구원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선교적 본질이 있으며,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희생을 각오하는 선교사를 보내고, 그 선교사를 희생적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단기선교팀을 바라보면서 보다 더 지혜롭고 신중한 선교 정책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선교 열정이 결코 식어서는 안 됩니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방법으로만 사역해야 한다면 고난 받으며 선교하다 순교하신 사도바울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선교사였으며, 순교의 피를 흘리며 로마제국을 선교했던 초대교회야말로 잘못된 선교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교에 헌신된 분당샘물교회는 오래전부터 주님 사랑을 만방에 전하기 위해 7명의 장기 사역자를 아프가니스탄에 보냈습니다. 분당샘물교회는 결코 영웅심리나 무용담을 위해 선교하지 않습니다. 최근까지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아프카니스탄의 영혼을 섬기기 위해 무려 수 십 차례 단기 의료봉사팀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귀한 교회입니까? 그러다가 이번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탈레반 반군의 인질로 피랍되는 기막히고 절통한 일을 겪게 된 것입니다.

어제 아침 한국 교회를 향해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님께서 요청하신 기도제목을 놓고 우리 모두 기도하기 원합니다. 1.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를 위하여, 2. 피랍된 22명이 가족의 품에 속히 안길 수 있도록 3. 지구촌의 분쟁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속되도록  아울러 오늘 설교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더 기도합시다. 4. 우리 교회와 관련된 선교사님들께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선교사역을 넉넉하게 감당해가도록 5. 우리 모두 대가를 지불하는 선교적 삶을 살도록  그리고  계 7:9처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기대합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잠시도 주님의 선교명령 수행을 중단하지 맙시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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