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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영혼아 (시 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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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플랜트(Michael Plant)는 세계적인 요트 조종사였습니다. 홀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수 차례 항해하였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기술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992년 다시 항해를 준비하였습니다. 최고의 항해 장치를 부착한 최신식 요트를 구입한 후에 '코요테'(The Coyote)라 명명합니다. 최첨단 요트에는 자동무선레이더와 위치 인식시스템(GPS)이 설치되어 좌표 상에 그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될 수 있었습니다. 요트는 그의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플랜트가 항해를 떠난 지 11일만에 무전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수색이 시작이 되었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포르투칼 근처에서 전복된 요트를 발견하였습니다. 코요테호가 전복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요트는 거의 전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뒤집힌 이유를 조사해보니 요트 밑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ballast)가 선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밸러스트는 3.6톤이나 되는 보트를 안전하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떨어져 나가 배가 전복된 것입니다. 조사단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플랜트가 자기 기술과 힘만 믿고 요트를 만들 때부터 보이는 부분에는 신경을 썼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밸러스트에 대해서 신경을 덜 쓴 것 같습니다." 풍랑이 없는 바다를 항해할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불어 배가 요동치자 밸러스트 부분에 문제가 생겨 손도 쓰지 못하고 요트는 뒤집히고 그는 실종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보여지는 육신의 건강, 젊음, 일의 형통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성을 쏟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영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육신의 건강보다 더 무거워야 합니다. 영혼이 일의 형통보다도 더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풍랑을 만나 뒤집어져도 다시 설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풍랑을 만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의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기의 '생령' 을 영어성경에서는 'living soul' 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흙이 육체를 가리킨다면 생령은 영혼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질 때 우리의 영혼은 건강하게 됩니다.

본문 5절에서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라고 외치며 자신을 향해 격려합니다. 건강한 영혼이 되려면 영혼과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화의 내용에 의해 삶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러기에 영혼을 향하여 믿음의 대화를 하여야 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부정적인 것들을 주입시켜 영혼을 침체하게 만듭니다. 시편의 저자는 낙망하고 있는 자신을 타이르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영혼에게 거듭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향하여 어떤 대화를 해야 합니까? 내 영혼아!


첫째로 하나님을 찾으라

잠수부 조지 헨더슨(George Henderson)의 고백입니다. "저는 몇 년 전 이상한 주문을 받았습니다. 진주를 새장에 담아 수심 8미터 이상의 깊은 바다 속 바위에 견고하게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진주는 레이너 공작부인의 소유인데 영롱한 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진주가 다시 영롱한 광채를 얻으려면 깊은 바다 속에 두어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한 것입니다. 최근 제가 진주를 꺼내 주인에게 돌려주었는데 희한하게 진주는 전보다 더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죄와 탐욕으로 광채를 잃고 병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은혜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광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은혜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인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마치 사슴이 목이 말라 소리 지르며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았습니다. 여기의 '갈급하다' 는 말은 '크게 소리지르며 찾아 헤매는 것' 을 의미합니다. 사슴은 목이 마르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이리 저리 물을 찾아 헤맵니다. 그런데 울부짖으며 물을 찾는 그 순간이 사냥꾼에게 잡히기 쉬운 때라고 합니다. 즉 목숨을 걸고 물을 찾는 사슴처럼, 본문의 시인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애타게 찾으십니까? 목마른 사슴처럼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은 적이 있습니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함께 찬양합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시인은 고난 가운데서 사람을 보거나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아 힘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힘을 얻는 영혼은 하나님을 찾는 데 그 비결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바라라

'상한 감정의 치유 (Healing for Damaged Emotions)' 의 저자인 데이비드 시맨즈(David A. Seamands)의 글입니다. 내 친구가 심장절개 수술을 받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술 받기 전날 간호사가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친구의 손을 잡으며 체온을 느껴보라고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수술하는 동안 당신은 심장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해서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심장 수술이 끝나면 당신의 심장은 다시 정상으로 움직이고 회복실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섯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움직일 수 없고 말도 못하고 심지어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일지라도, 당신의 의식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듣고 알게 됩니다. 나는 당신이 회복할 때까지 곁에 있겠습니다. 비록 무기력한 느낌이 든다 할지라도 당신은 내 손길을 느끼며 내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정대로 수술을 한 후 마취에서 깨어났지만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제대로 눈을 뜰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몇 시간이나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앉아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친구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큰 소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여기서 '하나님을 바라라' 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쳐다 보라' 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영어로 'Put your hope in God!' 라는 말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는 것입니다. 시인의 현실이 불안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위축되어 있는 영혼에게 하나님만 바라라고 명령합니다. 움추린 영혼을 향해 명령합니다. "내 영혼아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랄 때 다른 방향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찬송하라

중국 모택동 시절 지하교회에서 복음전도자로 사역했던 왕명도(王明道, 왕밍따우)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는 지하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다 공안당국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부인하고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석방되어 나오자 주님께 대한 송구한 마음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두통이 떠나지 않고 신앙의 양심에 견딜 수 없습니다. 그는 이런 일들이 성령의 통곡임을 깨닫고 북경 거리로 나와 목에 간판을 걸고 다니며 울면서 외쳤습니다. "저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신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안당국에 다시 체포되었고 그 후 19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수감소식은 지하교회 지도자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고,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지도자에 의해 중국 지하교회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19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감옥에서 나오자 재커라이스 목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19년 동안 감옥의 무서운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손마디는 고문으로 뒤틀려 있는 상황이었지만 왕명도 목사는 빛나는 눈동자로 찬송을 부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찬송가 434장을 부른 후 그는 말합니다. "감옥에서 이 찬송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의 가사처럼 하늘의 위로가 지난 19년 동안 제게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때마다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원망하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불평하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짜증내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고라 자손들은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낙심의 상황에서 찬송했습니다. 뼈를 찌르는 아픔 중에도 찬송했습니다. 환난이 머리를 내리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영혼이 지쳐 있습니까? 마음의 상처로 눈물을 흘리십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미래가 불안합니까? 그러면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찬송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찬송입니다. 오히려 찬송은 기적을 가능케 하는 찬송입니다.

강해 설교가인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목사는 본문을 강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영혼에게 말해야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네가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느냐? 하나님만 바라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부디 소망이신 하나님을 찾으며 오히려 찬송함으로 힘을 얻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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