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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전당 시리즈(4) : 믿음으로 노아는 (히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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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전당 시리즈(4) : 믿음으로 노아는 (히 11:7)

홍수와 방주는 있었는가?

지난 주간 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극장에 갔습니다. 이번 주에 노아에 관한 설교를 할 예정이었는데 마침 극장에서 노아의 방주를 다룬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라는 영화를 하기에 온 가족이 함께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된 에반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시는 데서 시작되는데 영화 내내 에반이 방주를 짓는 과정이 아주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를 미리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으니까 영화는 극장가서 보시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이 이 노아의 홍수와 방주 이야기에 대해 여전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려지고 있지만 미국에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물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경건한 미국인들도 많지만, 교회라고는 결혼식 할 때와 자기 장례식 때만 가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아예 하나님을 떠나버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된 나라가 이렇게 되니 안타깝습니다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교회 잘 안 나가거나, 아예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많아도 노아의 홍수와 방주 이야기만은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렸을 때 잠깐 교회 다니다가 만 사람들도 노아의 홍수와 방주 이야기는 믿든지 안 믿든지 꼭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는 다 안다는 전제 하에 이런 영화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노아의 홍수와 방주의 사실성에 대한 관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노아의 홍수가 정말 있었다, 노아의 방주도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애를 씁니다. 실제로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롯해 세계 200여 개가 넘는 각 민족의 설화에 아주 오랜 옛날 대홍수가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과학적으로도 지층을 연구해보면 세계를 뒤덮은 대홍수가 있었던 사실이 입증된다고 해서 흥미를 끕니다. 게다가 터키의 아라랏 산에 가면 빙하 속에 아직도 방주가 남아있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또는 그 산 아래쪽에 방주가 멈춘 터가 남아있다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홍수와 방주의 사실성보다 그의 믿음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홍수와 방주가 실제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홍수나 방주가 역사적으로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증거를 찾기보다 노아가 남긴 믿음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노아가 가졌던 위대한 믿음을 찾고 본받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노아의 믿음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 때문에 노아는 믿음의 대표선수로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전당>에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인 7절 맨 첫 구절을 읽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 아직 보이지 않는 일, 즉 홍수가 일어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고'라는 낱말은 헬라어에서 '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경고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미리 알려주신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노아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홍수를 어떻게 알고 방주를 지었는가? 바로 하나님이 "내가 홍수로 세상을 멸하리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오직 말씀(=경고하심) 위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명사는 '믿는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법적으로 반드시 앞에 목적어가 붙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는 것인지 목적어가 앞에 와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보통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다." 등등 많은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이루어진다는 어떤 보증도 증거도 없지만 그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나는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홍수는커녕 하늘에 검은 먹구름 한 뼘도 안 나타나고 비 한 방울도 안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홍수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햇볕 쨍쨍한 날에 그것도 물가가 아니라 물과는 멀리 떨어진 맨 땅 위에 상자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배를 지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고 조롱했겠습니까? 가까운 이웃, 친척이나 친구들조차도 노아가 미쳤다고 했겠지요. 어쩌면 노아에게는 큰 방주를 짓는 일보다 이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아직 안 보이는 일을 믿고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보면 수많은 조롱과 공격을 받게 됩니다. 요즈음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이나 이랜드 노사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조롱하고 공격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인터넷에 보면 "정부 말 안 듣고 지 맘대로 가서 죽었는데 왜 정부가 도와주느냐?"는 댓글부터 "이랜드 기업 회장은 십일조를 얼마 한다는데 그 십일조가 비정규직 직원들의 피와 땀을 짜낸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얼마나 악의에 찬 원색적인 비난들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공격과 조롱을 받게 되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7:1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를 구원하신 이유가 이렇게 나옵니다. "이 세대에서(6:10~13에 자세히 묘사된 것처럼 너무도 악하고 부패한 세대를 뜻합니다.) 네가 내(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그런데 노아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노아가 남들은 다 거짓말하고 속이며 사는데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을까요? 남들은 다 자기 먹고 사느라 급급한데 노아만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어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을까요? 다 아닙니다. 답은 창세기 15:6에 나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즉 노아도 아브라함처럼 여호와를 믿어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순종해서 의롭다 여김을 받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하나님은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고 그에게 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현실은 암담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큰(!) 믿음입니다.

둘째,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대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7절에 계속해서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경외함'이란 존경한다, 두려워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홍수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방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실 때 두려워 떨기만 한 것도 아니라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으로 옮겨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노아의 믿음을 실천하는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 사도는 믿음의 실천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 야고보 사도가 이렇게 행함과 실천을 강조했는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교리와 안 맞는다고 해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같은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신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 아무리 천하의 루터라 해도 야고보서를 업신여기고 지푸라기 같은 책이라고 부른 것은 야고보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믿기만 하면 되지 믿음대로 살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팽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아무리 믿는다고 할지라고 그 믿음대로 행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좋다고 하는데 실상 그 믿음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믿음은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지 세상으로 나가서는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성도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업을 하면서 마음대로 탈세하고 직원들을 종 부리듯 부려먹고, 직장에서는 아무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거짓 서류를 꾸미고, 더러운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그리스도인들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는 정직하게 살라고, 죄 짓지 말라고 설교 할 때 '아멘' 하는데 그 유효기간이 주일날로 끝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서 살 때는 그 말씀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향해 야고보 사도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믿음, 실천이 없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노아는 말씀을 듣고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만 '아멘'하고 곧바로 말씀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이런 점에서 노아는 믿음대로 산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제대로 된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면 반드시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얻게 되지만, 반대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믿음과 삶이 따로 놀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대로만 살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신명기 28장 15절에서는 반대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지요?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은 복만 주시는 분으로 아는데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할 때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또 신명기 말씀처럼 저주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복 준다면 그저 좋아하다가도 저주를 말하면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 말을 잘 안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저주도 말씀하고 빼앗아 가시는 것도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주하기도 하시고 빼앗아 가시기도 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심리와도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나쁜 짓을 할 때 두려움을 갖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면 어떻게 하지, 어머니가 아시면 혼나는데..."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무서워서라도 나쁜 짓 안 하고 죄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더 이상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겁이 없어져서 제 멋대로 죄도 짓고 나쁜 길로도 갑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죄 안 짓습니다. 죄를 지으려다가도 "하나님이 아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죄 지으려다가도 문득 "사람들은 다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는데..."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죄를 피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안다는 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아주 좋은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복을 주시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씀대로 안 살면 저주와 심판을 하시는 분인 줄 알았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엄연히 크리스천이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면서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몰라서 버젓이 죄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는 '간 큰'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노아는 자기 가정을 구원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7절을 읽어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했다고 했는데 이런 믿음을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큰 특권을 주시는데, 그의 증조할아버지 에녹은 이 믿음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지는 특권을 받았고, 노아는 홍수로 온 세상이 다 멸망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는 엄청난 특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노아 한 사람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 즉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까지 도합 여덟 명의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모든 동물이 한 쌍씩 들어가 구원을 받지요? 그런데 유독 노아 집안만 네 쌍이나 구원을 받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사람이 더 귀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노아는 방주를 만드느라 수고했으니까 보너스로 세 쌍이 더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가족구원'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방주를 짓는 귀한 믿음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그의 가족까지 구원해 주십니다. 물론 이 구절을 보고 나는 안 믿어도 우리 집안에 한 사람만 잘 믿으면 나머지 가족 모두 덤으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노아의 가족들도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한 사람으로 인해 그의 가정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처럼 한 사람의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큰 영적 영향력을 가지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방주에 타면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아마 노아 말고 다른 사람 중에도 홍수를 믿어서 방주에 탔다면 구원을 받았을 텐데 그들은 끝까지 노아를 비웃다가 다 죽고 맙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상에는 구원의 방주에 타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참 생명이 있고 거기에만 구원이 있는 줄 모르고 끝까지 거부하고 방주에 탄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사람의 좋은 신앙인을 가정에 두심으로 온 집안이 구원의 방주에 타게 하십니다.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 한 명이 직장에 있어서 그 직장 사람들을 모두 방주에 타게 할 수도 있으며, 한 사람이 아파트 통로에 살아서 그 통로를 몽땅 방주에 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영향력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노아였고 아브라함이었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도 내 가정 속에서, 직장과 이웃들 속에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방주로 그들을 인도하는 사람 말입니다.

믿음의 결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까지 노아의 믿음이 왜 대단한 믿음이었는지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이제 7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여기서 세상을 정죄했다는 말은 유죄 선고를 했다는 뜻입니다. 즉 노아가 옳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홍수는 무슨 홍수, 노아가 미친 게 틀림없어."라며 노아를 비웃었지만 맨 마지막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미쳤다는 노아는 옳았고 그를 비웃은 사람들은 다 틀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죄 선고를 받고 멸망당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이긴 것입니까? 결국 노아가 이겼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고 조롱하더라도, 아무리 네가 틀렸다고 몰아붙이더라도 노아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하든지 반드시 하나님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가 옳았음이 증명되었고 노아는 믿음의 대표선수, 의인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믿음대로 살고 하나님 뜻대로 살다보면 사람들이 다 나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미쳤냐고, 세상 물정 모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모두에게 왕따 당하거나 세상에서 매장될 지도 모른다고 겁을 줍니다. 심지어 노아처럼 이웃이고 친구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보고 틀렸다고 집중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그래 나중에 어떻게 되나 봐라." 하고 말하며 그 외로운 길을 꿋꿋이 걸어가십시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반드시 마지막에는 믿음이 이깁니다. 우리가 옳았음이 증명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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