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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붙잡아주시는 예수님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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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아 주시는 주님 (마14:22-33)

오늘 본문에 말씀은 “갈릴리 바다”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져 살다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이 벳세대 라는 곳에서 말씀을 전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거기에 모든 사람이 약2만명 쯤 된다고 했습니다. 굉장하지요
아침부터 말씀을 전하시는데 저녁이 가까웠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의말씀을 진지하게 들었던지 밥먹는것 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저들을 돌려 보낼려고 하는데 배가 고플것 같아서 예수님이 먹을것을 주시는데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곳을 떠날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라.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저 사람들을 다 보낸 다음에 가겠다고 하시면서 먼저 보내시고 사람들을 다 보내신 다음에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게 됨니다.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을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붙들어
주셨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말씀입니다.

이 일은 2000여년전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있었던 사건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진리,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 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찾아 오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오늘본문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의제자들은 예수님의말씀을 따라,
예수님의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이 지시 하시는 곳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것이 주님에 말씀에 불순종하고 잘못된 길을
가다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딴길로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라하셔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생각을 할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갔는데 이런 풍랑을 만나 고생을 하게 하시는가?
원망하고 불평 할수도 있습니다.
낙심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에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따라가도 이런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시하신곳으로 가다가도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풍랑을 만나게 하실까요?
주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주님이 제자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풍랑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이런 풍랑을 통해서 저들을 더욱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경건의 훈련을 시키시고 계심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게 살아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어떤 세상입니까?
연약 해서는 절대로 살아 남을수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풍랑을 통해서.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온전하게, 부족함이
없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력있는 사람. 믿음의힘이 있는 사람이 되게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바람을 통해서. 때로는 풍랑을 통해서, 때로는 칠흙같은 어두움 밤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영력이 자라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체력도 마찬 가지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체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육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게 됨니까?
어떤 사람은 정말 가혹할 정도로 자기 육체를 힘들게 함으로 체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 그래야 체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지식. 지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남 잘 때 안자고, 놀때 안놀고 책과 씨름을 해야 지력을 향상 사킬수 있는 것입니다. 남놀때 다 놀고, 남 잘 때 다 자면서 어떻게 지력을 키을수 있겠어요>
믿음의능력, 영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하게 아무 문제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영력. 믿음의능력이 자랄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훈련들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이 쓰셨던것을 봅니다.

믿음의조상, 축복의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부름받자 마자 믿음의 사람, 축복의사람이 된것이 아닙니다.
장장 40년 이상 많은 실패와 연단 훈련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상에서 하나님께 올림으로 믿음이 보여질때 하나님이 그를 인정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집안에서 사랑만 받고 살았다면 그는 꿈을 이룰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에게 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애굽에 노예를 팔리게 하시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치게도 하시는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믿음의사람으로
만드시고 마침내 애굽나라에 국무총리에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뜻을 이루게 하심을 봅니다.

하나님의사람 모세도 그랬습니다.
애굽의왕실에서 40년동안 황실 교육을 받았습니다.
40년 동안 나름대로 모든 것을 다 배웠지만 하나님이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로 쫏겨나가 40년동안을 외롭고, 고독하게 하나님만 바라 보면서 생활 하다가
그 훈련을 다 통과한후 이스라엘 나라에 지도자로 하나님이 쓰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풍랑을 만나게 하시는것도
고생하고 죽으라고 풍랑을 만나게 하신것이 아닙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모든 고난을 이길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풍랑을 허용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고난을 주시고,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 하셔서 주시는 고통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란때 일수록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고 하나님의사람으로 만드시는 과정인것을
아시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고 했다

나를 하나님이 쓰시기에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 주님은 찾아 오셔서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 오셧다”고 했습니다.
밤사경은 우리시간으로 새벽 3시에서 6시입니다.
가장 어두운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니꺼 초저녁부터 풍랑에 시달렸으니
아마 지칠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죽을것만 같은 위기에 처했을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십니까?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치고 지쳐서 절망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용기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
주님에 위로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세상에 여러 가지일로 씨름하고 있는 우리 곁에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실 때 베드로가 보니까 주님이신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28절에 ”주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하소서“
여기에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주시어든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이 물이 지금 어떤 물입니까?
파도입니다. 자기를 삼킬려고 하는 파도입니다.
내가 지금 이 물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 파도인데 
나를 그 위로 걸어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때마다 말씀으로 행하셨거든요
병든 사람을 고칠때도,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을 뜨게하고
귀신을 쫓아 낼때도 말씀으로 하셨거든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말씀속에 능력이 있다고 하는, 기적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는것 만큼 하나님의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못믿겟다는 것은 하나님을 못믿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따라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의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어떻게 승리했다고 햇습니까
하나님의말씀을 좇아 갔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습니다.

믿음 이라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때만이 유효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안에 있는 믿음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 변할지 모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옛날에 갖었던 믿음을 자랑합니다.
옛날에는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믿음을 가졌다...
믿음은 지금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바다위를 걸어 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바다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있다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고 그만 믿음이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때에는 파도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주님만 눈에 보이는데, 믿음이 식어지니까 주님을 보이지 않고 넘실거리는 파도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말씀만 붙잡고 나아가면 두려움도 사라지고 기적도 체험하지만 주님께 시선을 떼고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면 믿음이 떠나가고 두려움이 생기고 파도에 빠져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때 가장 중요한것은 주님만 바라 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본다거나. 환경을 보면. 믿음없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믿음이
떠나가고 두려움이 생기고 파도에 빠져 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자꾸만 환경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믿음을 뺏어 갑니다.
환경이 자꾸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소망을 뺏어 갑니다.
환경이 자꾸만 주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빠져 침몰되고 맘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갈멜산에서 대영적 싸움에 승리한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누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인가를 결전을 하게
됨니다. 제사를 드려고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으로 여기고 참신이 아닌것을 섬기는 자는 죽인다는 엄청난 결전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은 85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합왕도 함께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신하. 백성들이 함께했다
그런데 반대로 엘리야는 혼자입니다.
만약에 엘리야가 이 싸움에서 진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제사장들이 자기 신을 부르면서 제사를
드림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엘리야가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다리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셔서 제단에 있는 모든 제물들을 다 태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850명 제사장들을 기손 시냇가로 데라고 가서 다 죽였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엘리야가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겁이나서 멀리 아라비야 광야로 도망가고 로뎀나무 아래와 앉아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투정하는 것을 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어쩔때는 대단한것 같은데, 자기의목숨까지도 내어 놓는 믿음이 있는것 같은데
어떻때는 어린아이같이 연약한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 볼때는 담대함과 용기속에 대 승리를 거둘수 있었지만
하나님에게서 시선이 멀어지고 환경을 바라 볼때는 이렇게 두려움과 공포속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의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만을 바라 보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실패했다고, 넘어졌다고, 물이 빠져간다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찾아 오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믿음이 없어서 죽여달라고 투정할 때 내버려 두었으면 그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까마귀를 보내서 먹을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바다에 빠져 들어갈 때 주님이 내버려 두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하셨다고 했습니까?
30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아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할며 살때도 있지만 때론 환경 때문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빠져들어갈 때 그러할때도 주님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데 언제 붙들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져 드는 순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우너해 달라고,
나를 도와 달라고.. 나를 붙잡아 달라고...”
간청할 때 즉시로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들도 어려울때 소리질러 기도하기만 하면 주님이 즉시 붙잡아 주십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120: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렘33:3절 말씀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일을 네게 보이신다고 했는데 
이 말은 무언가 하면 “니가 상상도 못하는 ”
니가 이성적으로 감히 꿈도 못꾸는 비밀한 방법으로 역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의이성으로 , 인간의 상식으로는 계산할수 없는 아주 비밀 스러운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만날때에 하나님께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낙망하지 말고 기도해야만 됨니다.
쉬지말고 기도해야만 됩니다.

예수님은 이 풍랑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원햇습니다.
얼마나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얼마나 믿음으로 사람인가?
제자들에 믿음이 아직 연약함을 보시면서
“믿음이 적은자들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을 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 주심을 믿고
오늘도 믿음안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순복음지구촌교회 천상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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