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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속의 믿음 (히 11: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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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23-40

4년 전, 일본인 세 명이 이라크 저항세력들에게 억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온 일본 열도가 들끓었습니다. 여론은 “누가 사지(死地)에 가라고 시켰느냐!” “저런 사람들은 죽여 버려야 해!”라는 등, 동정보다는 비난이 앞섰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비난에 가까운 편지와 이메일과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우익 언론들은 가족들에게 정부와 국민들에게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하라고 했고, 일본 정부는 그들을 구출한 비용을 가족들이 지불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구출되어 도쿄 공항에 내렸을 때는 살아 온 것이 기뻐서 가족들과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그런 일본의 반응에 놀랐습니다. ‘자기 국민이 잡혀 있다가 살아 돌아왔는데 어쩌면 저럴까?’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두 달 후, 우리나라의 김선일씨도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일본과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진심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정부도 김 씨의 석방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참수를 당하고 차가운 시체로 돌아왔을 때, 온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4년이 흐른 지난 7월 19일, 한국청년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 의료 봉사를 하러갔다가 탈레반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사회의 반응이 전과 같지가 않습니다. 좀 싸늘하다고 할까요?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봐도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반응이 많습니다. “위험 경고를 무시하고 간 사람들을 왜 혈세로 데려와야 되냐?” “인질의 목숨과 상관없이 군사적으로 작전을 시행하라.” “너희 하나님에게 구원해 달라고 해봐!” 마치 십자가 밑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도들을 사지로 몰고 간 목사는 자폭하라!” “극성맞은 예수쟁이들! 막무가내식의 선교!” 4년 전과 달리 거부감이 큽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느 사람이 사마리아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고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그를 돌봐주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나타나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말합니다. “사마리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왜 정신없이 그리로 다니느냐? 그쪽으로 다니지 말라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냐?” 그리고 그 사람을 발로 차고 욕을 하고 침을 뱉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교계에서도 “영웅주의가 아니냐?” “과시용이다” “준비 부족이다”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 “선교의 전략을 바꿔야 된다”는 등의 비난과 질책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은 선교 정책을 탓할 시간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할 시간입니다. 슬퍼할 것을 슬퍼하고 장례식을 끝내고 피랍자들이 가정과 교회로 돌아오고 난 후에 그 모든 것을 토론하고 평가할지언정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들을 위해서 함께 슬퍼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어깨를 끌어안아주고 함께 기도해야 할 시간인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반응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돕는 한국 봉사자들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일부는 이 사건에 대해 짜증을 내고 비난하지만, 현지인들은 한국인이 피랍된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국 군대는 철수하더라도 봉사자들은 더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는 시민 2,3천 명이 한국인을 납치한 집단을 비난하고 피랍자들을 석방하라고 데모를 했습니다. 탈레반 출신의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협상을 하고, 한국 사람들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 이런 때에, 우리 국민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조롱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을 대신해서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의 현지에 간 백종천 청와대 비서는 우리 교회 집사님이십니다. 2부 예배에 참석한 그의 아내와 함께 백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백 집사님이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하고, 남은 22명을 한국으로 데려 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마치 결혼과 같습니다. 결혼을 할 때 서로 약속을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그대를 사랑하고 아끼며 그대의 신실한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을 하나님과 부모님들과 모든 증인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신앙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건강, 성공, 돈, 일류학교, 평화와 웃음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플 때도, 병들 때도, 가난할 때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좋은 일 있어도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과 여건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힘과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의 언행심사 가운데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성경에서도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기적적인 승리를 체험하면서 남긴 간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삭과 야곱, 요셉은 죽음 가운데서도 살아났고, 요셉은 노예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주 멋진 이야기지요.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그 아이를 건져서 결국 애굽 공주의 아들이 되고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가 됩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멋진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의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애굽의 모든 부하보다도 더 고난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홍해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고 전진함으로써 결국 이 모든 위대한 역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도 믿음으로 일곱 바퀴를 돌았을 때, 큰 성이 무너져 내렸고 여리고성을 정복했습니다. 라합도 믿음으로 생명을 구했고 가문을 살려냈습니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성경에는 믿음으로 위대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승리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고 승리를 기대하고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32~35절). 믿음으로 이것이 가능합니다. 과거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과 내일의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승리와 모든 성공과 모든 축복을 경험한 과거의 신앙인들처럼 우리도 이 시대 우리의 삶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생의 한 면에 불과합니다. 인생에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온갖 고난을 감수하고, 고난을 거치면서 아름답고 좋은 신앙의 간증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한 면으로는 믿음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고, 또 한 면으로는 역시 믿음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냄으로써 후세에 좋은 간증을 남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35~37절). 죽은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고 톱으로 두 쪽을 냈습니다. 두 쪽 사람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라고 합니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가신 배 목사님도 머리부터 발까지 7발의 총알을 맞았다고 합니다.

터키로 성지순례를 가면 ‘갑바도기아’라는 곳을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땅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8만 명이 살 수 있는 거대한 도시를 만나게 됩니다. 암벽 지역에는 사방에 굴이 뚫려있습니다. 핍박을 받아 갈 곳이 없었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그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방황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이런 고난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난을 감수하면서 그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수요예배에서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에 관한 영화를 참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만약 주 목사님과 사모님이 “우리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다른 목사님과 사람들은 다 신사 참배를 하는데 우리만 끝까지 이럴 필요가 없지! 나도 편안하게 살아야겠다!”하고 그저 편안한 삶만 살았으면 우리가 참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주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좋은 간증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무엇인지, 일사각오가 무엇인지,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 간 젊은이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4년 전에 그곳에 병원을 세우고 해마다 봉사를 갔습니다. 이리저리 놀러 다니다가 붙잡힌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젊은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아’자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데, 이 젊은이들은 이 전쟁의 나라를 생각하고 질병을 고치고 약을 주고 수술을 해주러 간 것입니다. 다른 젊은이들은 휴가라고 바닷가에 가고 산에 놀러 갔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휴가를 아프가니스탄에 바쳤습니다. 다른 젊은이들은 집에 앉아서 아시안게임을 보며 “아, 드디어 한국이 골차기에서 이겼다!”고 즐거워한 그 시간에 이 젊은이들은 자기의 시간과 돈을 바쳐서 그 머나먼 곳에 섬기러 갔습니다.

그 중에 미국 CBS와 인터뷰 한 임현주라는 여자 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술할 수 없는 아이들 두 명을 세브란스 병원에 데려와서 수술을 시키고, 한국에 조금 더 있어야 되는데도 이번 팀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것을 알고 통역을 하겠다고 바로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로 한국에서 편안하게 일해도 됩니다.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그곳에 갔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프가니스탄의 불쌍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약 없고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그곳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가슴으로 간 것이지 과시를 위해, 영웅주의자가 되려고 간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감수하면서 영적인 믿음의 간증을 남긴 사람들이 성경에도 있고, 오늘 이 땅에도 있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배 목사님의 아버님께서 제주도에서 예배드리는 모습과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흔들림이 없고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이셨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소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남편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족하니 나머지 사람들을 빨리 돌려주세요. 그분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는 장례식을 못합니다.” 참 멋진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아픔을 겪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믿음으로 좋은 간증을 남기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제 인생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힘든 일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좋은 일이 있든지 나쁜 일이 있든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동일한 믿음으로 좋은 영적인 신앙의 간증을 남겨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배 목사님의 가족과 피랍자 가족을 위해, 그리고 피랍자들의 무사한 귀국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비난할 때가 아닙니다. 예수쟁이들 어쩌고 하며 비아냥거릴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요, 사랑할 때요, 함께 울 때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자살폭탄의 종교가 아닙니다. 용서의 종교요 사랑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무고한 사람을 납치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향해 “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 참된 복음이 들어가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배 목사님의 죽음이 그 나라에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들도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을 알아서 자살폭탄 대신에 사랑의 폭탄을 남기는 축복이 그 땅에도 나타나길 원합니다. 아프가니스탄부터 저 아프리카까지 거리낌 없이 사랑의 봉사를 다녀올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선을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이번 일로 위축당하지 않고 세상 끝까지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새로운 축복이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대처하면서, 선한 일이나 선하지 않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막론하고 언제나 믿음이 이기는 것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이번 일이 새로운 헌신과 새로운 희생과 새로운 믿음으로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는 은혜의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들의 희생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새로운 믿음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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