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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와 누룩 (마 1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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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은 일 년 내내 단기 선교팀이 오고갑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 주어진 하나의 영적 분위기입니다. 세계 청년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많이 해서 여름철이 되면 비행기가 거의 선교팀으로 가득가득 차는 그런 아름다운 현상이 지금의 한국 실정입니다. 이번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의 불행한 사건이 앞으로의 선교 열정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많이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도 수없이 오고 갑니다. 금년 여름에도 우리 청년들이 인도 등 여러 군데 예정되어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는 것, 이번 일은 특수한 일이지만 똑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저도 선교 다니다가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새벽에 모임을 갖기 위해 나가는데 교회 문밖에 총을 가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 선교팀을 털면 돈이 나온다고 그렇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면 이런 위험들을 항상 가지게 됩니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무서워하면 선교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매우 불행한 일이 일어나 대한민국 교회 전체가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번 일로 인해서 오히려 한국 교회 사명이 새로워지는 어떤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비유의 주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하늘나라의 특징을 천국 비유로 초점 맞추어 설교하셨는데 오늘 말씀은 겨자씨와 누룩의 원리로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7, 8월에 있는 교회의 많은 어린이 신앙 수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천국은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영생의 장소, 우리 인간 육신 이후에 주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또 하나는 현실의 천국입니다. 하늘나라 그림자로서 지금 이 땅 위에 이루어져있는 구원의 현장, 예를 들면 우리 개인에게도 이미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영혼 가운데 이미 천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 가정이라든가 교회라든가 이런 공동체가 하늘나라 그림자로서 이미 천국이 이루어진 현실적 하나님의 나라로 이렇게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이 땅에 살지만 생각과 마음은 항상 하늘나라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살고 있는 약 7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경험하고 살았지만 이 사람들의 마음은 한국에 항상 있기 때문에 외국에 살아도 거의 겉으로만 사는 것이지 정말 사는 것은 한국입니다. 남의 나라 호주에 이민을 왔으면 호주 시민으로 살도록 노력해야 되는데 노력을 잘 안 합니다. 신문도 호주신문을 안 보고 한국 신문을 받아보고 한국 방송을 다 들어야 되고, 항상 마음은 한국에 두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큰 불이 났다 해도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타거나 말거나….’ 하지만 서울에 불이 났다고 하면 그 멀리 타국에서도 서울에 왜 불이 났느냐고 묻고, 캐나다 대통령이 누가 되던지 아무 상관이 없지만 한국에서 선거철이 되면 외국에서도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어야 한다고 구역 예배 때마다 싸움들 하고…. 몸은 외국에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사는 겁니다. 천국의 시민이 그렇다는 겁니다. 몸은 땅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하늘나라에 가있는 것이 우리 이 땅에 있는 천국 시민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천국을 초점으로 해서 설교를 일곱 가지나 하셨습니다. “그 나라 소유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너희가 노력을 하라.” 이런 뜻으로 설교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겨자씨와 누룩의 성격과 천국은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님이 이렇게 설교를 하셨는가? 이것을 우리가 한번 조명해 보고자 하는 겁니다. 하늘나라는 시작이 작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겨자씨를 보신 분은 한번 손들어 보세요. 얼마 안 되지 않습니까? 보신 분들은 다 눈이 좋으신 겁니다. 돋보기 써야 보일까 말까 할 먼지 같은 작은 씨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작은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시작을 보세요. 베들레헴! 어느 마구간 농가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당시 베들레헴은 유목민의 머물러가는 하나의 정착지였습니다. 양떼를 몰고 한 바퀴 돌아 베들레헴에 와서 다시 정비하고 병들은 양들을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고 그러다 다시 데리고 떠나는 집시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의 정착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밤의 베들레헴 현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지경의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보잘 곳 없는 빈촌 마을 동네의 마구간 하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우주에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그런 존재인데 바로 그곳이 구원 진리의 시작이었다는 이것이 하늘나라의 성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과 그들이 처음 만날 때의 장면을 아주 그림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물을 깁고 있는지라.” 갈릴리 바다라야 커다란 호수에 불과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 궁상맞게 앉아 찢어진 그물을 깁고 있는 어느 한 구석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보이지도 않는 시작!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사람들을 만나 한쪽 구석에서 한마디씩 주고받은 것이 마침내는 커져서 온 세상을 다 정복하게 되는, 하늘나라의 성격은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세요. 최초의 한국 개신교회를 보면 황해도 선천교회라고 쓰러져가는 싸리처럼 오막살이집, 사람이 들어가기조차 힘든 그곳이 대한민국 최초의 교회였다고 합니다. 메킨타이어 목사와 로스 목사가 중국 심양에 와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조선인으로서 그 사람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다가 성령의 감화를 받은 이응천 씨와 조선말 성경 제작을 도와주던 서상민, 이성학, 김진기 이런 사람들이 최초의 세례 받은 사람들입니다. 겨자씨 같이 보이지도 않게 거기서부터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석진, 서경조, 양전대, 길선주, 방기천, 이기풍, 송인서 일곱 사람이 그 당시에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최초의 대한민국 목사로 겨자씨 같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과 같이 작게 시작이 기독교다. 언제나 작은 시작한다. 보이지도 않는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을 겁니다. 처음으로 교회가 생겨질 때를 생각해보면 어느 교회든지 사랑방부터였습니다. 아니면 상가 하나를 세를 얻어, 잔디밭에 모여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개척교회를 할 때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겨자씨로 시작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떻게 이렇게 신앙인이 되었는가?’ 우리 중에는 지금 순교자적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내가 피 흘리라면 흘리죠.’ 이러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한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교회에 가서 배운 찬송이 “예수 사랑하심은”으로 기억납니다. 그때가 5~6살 때라고 기억납니다. 시골 동네 조그만 오막살이 교회당에 누군가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할 준비를 시작하는데, 정말 그곳으로 나가 열심히 따라서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5~6살 된 어린 아이가 기독교가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벌써 내 영혼에 겨자씨 같은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점점 자라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하도 가자고 졸라대서 가기 싫은걸 한번 온 것이 동기가 되어서 순교자적인 신앙인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길가다 짓궂게 달라붙는 전도하는 사람이 건네준 전도지 한 장이 동기가 되어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어떤 목사님이 자꾸만 전화를 해서 “내가 교회에서 꼭 한번 간증을 했으면 좋겠다.”하셔서, 사실 제가 간증 집회는 잘 안하는 목회자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도 졸라서 “그러면 한번 오세요.”하고 시간을 마련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간증은 골자가 이렇습니다. “여러분, 나는 직업이 도둑놈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질을 하러 큰 예배당 본당에 무엇이 좀 있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교회당에 도둑질하러 들어갔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가보니까 강대상을 들고 갈 수도 없고 피아노를 들고 갈 수도 없고 아무리 돌아봐도 들고 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들어왔으니 뭐 한 가지는 가지고 가야 되는데 뭘 가지고 갔느냐 하면 저기 십자가 앞에 있는 큰 성경책이었습니다. ‘저것이라도 내가 들고 가야겠다. 이게 그래도 꽤 가격이 나가겠다.’ 그래서 그 성경책을 들고 나갔답니다. 나갔으니 팔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 시절에는 청계천 주변에 헌 책방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곳에 책 사러 참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헌 책방에 도둑놈이 그것을 팔려고 내어 놓으니까 금칠하고 번쩍번쩍 하고 큰데도 안사는 겁니다. “아니, 당신은 누군데 성경을 다 팔러 오셨나요?” 이 성경책은 헌책방에서 살 수 없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책 사러 헌책방에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누가 성경을 사러 헌책방에 갑니까? 그래서 못 팔고 화가 났는데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서 집 방구석에다 집어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물건도 도둑질해서 갖다 놓으면 아무렇지 않았는데 성경책 갖다 놓고는 신경이 써지는 겁니다. 저기 있는 것이 뭐라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을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래서 이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갖다가 버렸답니다. 그랬더니 더 죽겠는 겁니다. 쓰레기통에서 귀신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쓰레기통에서 다시 건져다가 방에다 놨는데 도저히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제자리에 도로 갖다 놨답니다. 그러고 났는데 더 이상한 일이 생긴 겁니다. 그 교회에 그렇게 가고 싶은 겁니다. 도둑의 심리는 도둑질한 현장을 꼭 가보고 싶은 심리가 있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나가 결국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그 길로 자기가 목사까지 되었는데 그렇게 간증하면서도 그럽니다. “어느 교회인 것은 묻지 말아 주세요.” 그 사람은 성전에 들어와서 그 성경책에 손을 대는 순간 이미 복음의 씨앗이 겨자씨처럼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자란 겁니다.

그 다음에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끝내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오래 목회하면서 수없이 많은 교인들을 만났는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바보 같은 교인은 한명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저마다 많이 배웠고 남보다 뒤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고 바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똑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무슨 힘으로 설득해서 예수를 믿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겨자씨 같은 작은 일을 주님의 말씀대로 그냥 순종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바울도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작은 일이 없습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작아도 그 작음을 통해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작은 일에 충성하라.” 예수님은 이런 진리로 우리들에게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그 작은 사람이 어느 한 영혼을 붙들고 눈물겨운 목회를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 아닙니까? 사실 이 세상의 역사도 문명과 문화 이런 것이 작은 것이 동기가 되어 크게 되는 겁니다.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명의 기구가 핸드폰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뭐라고 합니까? 벨이라고 합니다. 왜 벨이라고 합니까? 벨이 발명해서 벨입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라고 하는 사람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가 청각 장애인입니다. 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내와 어떤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열심히 연구하다가 귀에 갖다 대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전화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겨자씨 같이 보이지도 않는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아내와의 대화를 위해 연구한 그 겨자씨 같은 작은 일이 온 세상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문명의 도구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작다고 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그 뒤에 큰 열매 축복을 하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겨자씨 같다고 무시하지도 마십시오. 그런 하나님의 관계성이 일이 인간에게 낀 나에게 주어진 그것만으로 감격하고 아무리 작아도 보이지 않아도 성의를 다해서 그 일에 내가 동참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그것을 통해서 이 땅에 조명되는 겁니다.

시카고 대학교 한국인 교수 한 분이 미국에 살고 있는 각 종족들의 직업관에 대해 연구 발표했습니다. 무엇을 발표했느냐 하면 “어느 종족이 어떤 직업을 얼마큼 어떻게 하고 있느냐?”였습니다. 일본, 미국, 아프리카, 한국, 중국사람 할 것 없이 종족별로 다 연구를 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나타난 특징을 보면, 어쨌든 직업을 가장 많이 바꾸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일주일을 해도 집어치우고 한 달 일하다 집어치우고 또 다른 직장을 찾습니다. 보다 나은 것을 찾아 항상 가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직업관이라 합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직업을 가장 바꾸지 않고 오랫동안 하는 민족이 일본과 미국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천직 개념으로 그 자리에서 그 일만 평생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제가 애틀랜타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LA로 올 때 원로 목사님과 자리가 달라서 카운터에 “우리 둘이 동행인인데 LA까지 가는데 자리를 같이 안게 해주세요. 이야기하면서 가고 싶습니다.” 자리가 다른 곳으로 예약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더니 “그러면 해드리겠습니다. 표 주세요.” 하시는 분이 할아버지인데 우물대고 잘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런 데서 일하시는 것도 참 용하시다.’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서 오래 일하셨나요?” “알고 싶나요?” 그때부터 우리 일은 안 해주시고 자기 관심사만 이야기합니다. “이 공항이 생기는 날 내가 처음으로 입사한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서만 30년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은퇴하셔야 되는데도 공항의 보배라고 그렇게 일하시는 겁니다. 평생을 거기서 보낸 겁니다. 이렇게 미국 사람들의 직업관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직업을 필요에 따라서 바꾸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하게 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은사는 오래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평생 주일학교 선생을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주일학교에서 한 영혼 구하는 게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내가 성가대 봉사를 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가서 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성가대에 가득하게 앉아있습니다. 평생을 그 자리에서 한 것입니다. 오래 할수록 좋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애국정신으로 한국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그가 로스앤젤레스 오렌지 카운트에서 오렌지 밭일을 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해준 철학이 무엇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한 국가 지도자가 시작한 노동의 땀이, 그의 정신을 오랫동안 기리자고 동상을 세우게 되었고. 저도 미국에서 참여해서 열심히 모금을 했었습니다.

작은 일을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교회에 큰일을 맡기시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작은 일은 없습니다. 다 큰일입니다. 왜? 커져가기 때문입니다. 돋보기안경을 써야만 보일만한 작은 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다 크게 생각하고 우리가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할수록 더 좋습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지 아니할수록 하나님의 상급은 큽니다. 이것을 패러독스 진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어린이를 돌보는 일, 본 교회가 주일학교에 많은 투자를 하고 온갖 정열을 기울이는데 우리 어린이들이 금방 자라 한국 교회의 주인이 됩니다. 이번 여름에 2200명 이상의 우리 어린이들이 올 것으로 계산하고 지금 준비를 다 했는데, 관계자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아부 2~3살 어린이부터 여름 성경학교를 열어 우리가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반드시 거둔다는 진리! 이스라엘에 가서 겨자씨 나무를 보니까 한 4미터 정도의 크기에 그리고 이게 이렇게 자라서 둥근 원형을 그립니다. 새들이 그 안에 둥지를 짓기 좋아하기 때문에 자라서 “새들이 깃들이니라.”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작은 것은 반드시 커져가는 진리입니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교회 하나가 생기더니 대한민국에 지금 5만개의 교회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교회들이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하게 짓는지 사회에서 비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유럽 교회의 대부분은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건축물을 구경하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보이지 않게 시작한 기독교 진리는 이렇게 커져갑니다. 일곱 명의 목사가 처음 안수를 받았는데 지금은 수십만 명이 넘습니다. 제 체험 가운데는 일곱 명이 시작한 교회가 7천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를 보면 제물포 항구의 언더우드, 아펜젤러 두 사람이 성경 들고 내리더니 100년이 지나니까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나라일지라도 선교사 한 사람만 제대로 들어가면 그 나라는 언젠가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 같습니다. 누룩의 의미는 뭐죠? 변화입니다. 밀가루 서 말이면 얼마나 분량이 됩니까? 그런데 거기 누룩 한 덩어리만 집어넣으면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람도 변화하고,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다 변화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2000년 동안에 나타났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간 나라는 절대 변화가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 변화되었습니까?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300년 동안은 유럽 역사에 바이킹이라는 해적의 세상이었습니다. 이 바이킹들은 한 나라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런 문화가 생기는데 지금 유럽에는 바이킹 축제라고 해마다 합니다. 여러분,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핀잔을 줄 것 아닙니까? “바이킹은 해적 도둑놈들인데 너희 조상들이라고 그게 뭘 잘했다고 축제를 벌이고 이런 기념식을 하냐?” “모르는 소리 말아라!” 바이킹은 해적 노릇을 했지만 세상에 공헌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민족 이동을 통한 문화를 바이킹들이 만들어놨다는 겁니다. “저쪽 사람들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이쪽 사람들 저쪽으로 내려가서 세계 교류하는 문화를 바이킹이 만들었고, 배를 타고 탐험하는 문화를 바이킹이 만든 것이다. 그 이후에 세계가 발견되었다. 이런 문화의 공헌이 매우 크다.” 무역 기지를 스웨덴 바이킹들이 건설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 흑해를 연결한 무역통상로의 개척은 바이킹 아니면 절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가 무역으로 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가 덴마크 계통 바이킹들의 기독교와 절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보세요. 해적이 되어서 바다에 나가면 한 달, 두 달, 6개월, 1년씩 집에 못 들어오게 되니까 가족들은 어떻게 삽니까? 그래서 해적 부인들이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데 더 엉망진창입니다. 그래서 바이킹들이 화가 나서 자기들도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이 바이킹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한 가지 가지고 있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오래 생활하게 되니까 조용히 생각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는데 “우리는 이런 일을 할지라도 우리 후손들만은 이런 일을 안 하는 후손을 가져야 될 거 아니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생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우리가 도둑질 해다 살자.” 그래서 기독교 여인들이 그 시대에 바이킹의 표적이 된 겁니다. 그래서 사람 도둑질을 했습니다. 강자로 기독교 여인들을 잡아다가 아기를 낳게 했습니다.

여러분, 스페인이 세계를 점령할 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남자들은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모두 강간해서 아기를 낳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중남미 일대 23개국이 한 언어로 쓰고 있지 않습니까? 잡혀온 기독교 여성들은 강제 결혼으로 자녀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데 남편들은 해적 생활에 집을 비우니까 이 여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우리가 시키자.” 신앙으로 열심히 키웠습니다. 그래서 바이킹의 후손들은 아이들이 아주 엄격한 신앙 훈련을 받으면서 살았고 철저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자라서 그 유명한 청교도의 조상들이 된 겁니다.

이런 역사의 변화! 나약한 여인들이 해적들의 무자비한 손에 강제 납치되어 해적 소굴에 들어갔지만 그들은 남편들을 변화시켜 청교도로 연결하는 누룩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곳은 어느 나라나 다 변화됩니다. 우리가 지금 그 역사로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쫓은 나라는 나쁜 영향의 절대 변화!

여러분, 북한을 보세요. 복음을 내쫓고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다 보지 않았습니까?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변화가 이루어져서 잘 살게 되고 교인이 향상되고 민주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처럼 하늘나라는 이런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이들을 여름 방학에 많이 초대해 뱃속에 있는 아기만 빼고 2~3살짜리부터 다 교육하려 합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육 부분만 놓치지 아니하면 한국교회의 장래는 밝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겁니다. 이번 여름에도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변화 역사가 갈보리교회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어린 심령들에게 겨자씨 같은 복음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또다시 허락해 주셨는데 이 일을 성의 있게 잘 감당함으로 아버지가 기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 훌륭하게 정착되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훌륭하게 확장되어 나가는 기쁨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 대한민국 교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되어 있는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어 주사 건강하고 무사한 귀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일에 우리 주님이 함께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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