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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의 공동체 (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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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공동체
출20:24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고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즘 새벽제단에서 일천번제의 예물을 드리며 예배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하나님께 단을 쌓아 일천번제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시는지라 솔로몬의 이와 같은 예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왕으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또 한번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부와 영화를 구하지도 아니하고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게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화도 주리라.”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구한 지혜는 물론이고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도 얻는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는 모든 분들에게도 솔로몬처럼 구한 것뿐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까지 받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는 분들이 귀한 것은 일천번제 예물을 일천 번 드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새벽을 깨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천 번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일천번제가 귀한 것은 매일 드리는 예배에 정성을 다한 예물도 함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나의 값진 희생을 그 속에 담아 드리는 예배이기에 귀한 것이고 매일 드리는 것이기에 더욱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보고를 열어 예비하신 모든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생활에서 무엇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4:10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이토록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예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영광과 기쁨을 누리십니다.
예배는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한국갤럽에서 한국 교인들의 예배생활과 관련된 설문조사에 보면 약60%정도만이 매주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번 이하로 참석하는 교인들이 16.8%나 되고 있습니다. 특히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직장과 학업문제가 33.3%, 게을러서가 33.3%로 나오고 있습니다. 스포츠와 레저의 이유도 15%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도사님들을 통해 매주일 결석자를 파악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빠지는 숫자가 늘 200-300명 정도 되고 있습니다. 고정적으로 장기 결석자도 몇 사람 포함되지만 대부분 돌아가면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시간관리 전문가인 마이클 포트너가 수백 명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것을 보면 70세를 산다고 가정할 때, 잠을 자는데 23년, 직장에서 일하는데 20년, 쉬면서 즐기는데 7년, 먹고 마시는데 6년, 줄서 있거나 신호등 기다리는데 5년, 약속한 사람 기다리는데 3년, 남성의 경우 물건 찾는데 3년 반, 여성의 경우 가사 일에 3년 반, 전화기 붙들고 1년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데 보낸 시간은 평균1년반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70년 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은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1년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은 온갖 보석들로 너무 아름답고 기막힌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에게 이끌리어 넓은 저택으로 안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네가 살 집이라고 하더랍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을 쌓은 벽돌이  군데군데 뚫려있는 것입니다. 이 좋은 집을 이렇게 망쳐놓을 수 있냐고 천사에게 물었더니 이 집은 네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네가 지은 것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벽돌이 중간 중간 비어있는 이유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드리는 예배는 천국의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이렇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인간이 만유의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친히 강림하셔서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주시고 위로와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예배하는 성도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그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향해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과 기도와 아멘의 응답은 예배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응답의 반응들이 예배시간에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성도들은 힘찬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뜨거운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고백하며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비전을 외치며 빛과 소금으로의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예배하는 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날 한 시간 예배하는 것으로 예배의 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성도들은 결단하고 다짐한 고백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배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닙니다. 예배가 결단한 예배자의 생활로 이어져야 하고 생활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아와 예배하며 다시 결단함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적극적인 결단과 고백으로 삶속에서 이어지는 진정한 예배가 되고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를 언제 드려야 합니까?
언제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일날 예배 드려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 날이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부활의 영광을 바라며 부활의 기쁨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58:13-14에서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즐거운 날이라 하여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이와 같은 안식일 규례의 정신이 주일에 예배하는 성도들의 주일성수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주일성수의 정신으로 주일날에는 꼭 예배드려야 합니다. 주일에는 모든 일에 앞서 먼저 예배를 드리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가지고 일생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주일성수의 신앙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어디에서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에 어느 곳에서 예배하든지 그곳에 함께하셔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교회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나의 기도를 심고 나의 헌신과 땀과 귀한 예물을 드려 섬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출타 중에라도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해외에 있다든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항상 나의 섬기는 제단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성도님은 직장 관계로 부산에 내려가 생활을 하는데 꼭 주일이면 서울에 있는 본 교회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직장으로 내려갑니다.
뭐 그리할 것까지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옳고 합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배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예배를 원하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일까요? 결론은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공급을 받습니다. 예배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복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만 만나고 돌아가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꼭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 만남 속에서 예배자는 감격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이 설레이고 기다려지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설레임과 기다림으로 나아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배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람들만 만나고 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로 우리의 영이 살찌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구로 빛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사람을 만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만나러 교회 나오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 마다 여러분을 만나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그 만남으로 신령한 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이 말씀은 예배하는 곳에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배하는 곳에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가 복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하는 곳에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리에 친히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을 성별하여 주시며 “이곳에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있느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 얻는 감격과 기쁨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시51:17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회중기도인데 장로님들이 하시고 있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예배를 위한 기도와 회개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예배 순서에는 없지만 어떤 교회는 회개의 기도라는 순서를 지키며 모든 성도들이 함께 회개 기도문을 낭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목회자의 사죄의 선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선언하는 것이지요. 예배의 요소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데 회중 기도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너의 양과 너의 소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언급된 번제의 방법을 보면 제물을 각을 떠서 피를 뿌리고 재단에서 태워 연기를 하늘로 올리우는 것이 번제의 제사법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가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 자기의 번제물위에 안수를 하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죄를 그 번제물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며 가죽이 벗겨지고 각을 뜨면서 죄의 댓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는 회개하는 자의 예배입니다.

2. 감사함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시100:4에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고백이 담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배하는 자들은 우리들입니다.
왜 우리들이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모든 은혜를 베풀어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복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의 평안과 축복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너의 양과 소로 화목제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예배는 감사함으로 해야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함이 없이 의무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으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릴 때 그 예배 속에 기쁨과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자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3. 결단이 있는 예배입니다.

온전한 예배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삶의 새로운 고백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회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면 새로운 결단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으로 나가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아멘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응답이 있는 예배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만남과 응답이 있는 예배가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복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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