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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면류관을 향하여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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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100m 경기는 세계의 주요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칼 루이스(Carl Lewis)와 벤 존슨(Ben Johnson) 중에 누가 우승자가 될 것인가'. 당시 스포츠 전문가들은 칼 루이스의 우승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벤 존슨이 9초 79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였습니다. 벤 존슨은 챔피언이 되어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허나 도핑테스트에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을 박탈당하였습니다. 세계 신기록도 무효 처리되었습니다. 벤 존슨은 사흘만에 부끄러운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금메달은 2위를 한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습니다. 결국 벤 존슨이 받았던 상은 부끄러운 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면류관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에서는 3년마다 올림픽과 같은 이스무스(Isthmus) 라는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경마, 경주, 마차경주, 레슬링, 권투, 음악, 또는 시 경연 등이 벌어졌고, 후대에 가서는 짐승과의 격투 종목들이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헬라의 도시들 간에 중요한 경쟁이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스타디움의 경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스타디움의 경기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스타디움의 경기자라고 불렀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들입니다. 영적 싸움을 하는 전사들입니다. 결과는 이기기 위함입니다. 본문 25절은 '이기기를 위해서 다투는 자'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김의 결과는 당연히 상을 얻기 위함인데, 그 상은 이스무스 경기의 승자들에게 주는 솔잎으로 만든 면류관처럼 썩어버리는 월계관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승리한 영적 전사들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은 썩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강조합니다.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의의 면류관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달려왔던 신앙의 경주를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앞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오셨습니까? 지금은 어떤 신앙의 경주를 하고 계십니까? 바울처럼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설 때 면류관을 받아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면류관이 아닌 자랑스러운 면류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면류관을 향해 어떻게 달려가야 합니까?


첫째로 최선을 다하라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가 시스틴 채플의 천정 벽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천정이 높았기에 아래에서는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천정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친구가 "여보게, 밑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그리고 내려오게나". 그때 미켈란젤로는 친구를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가 아닌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 없다네."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하나님이 알고 자신이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여도, 전도를 하여도, 봉사를 하여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신앙의 경주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4절입니다.“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경주하는 자가 면류관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경주장의 말은 한번 출전하여 뛰고 나면 체중이 8kg이나 준다고 합니다. 전력을 다하여 뛰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승리하려면 전력투구 해야합니다. 바울은 경주 말에 비길 수 없는 믿음의 열정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12절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최선을 다하는 신앙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복받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기 위하여 스타디움의 경기자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교훈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만이 면류관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만 임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16장 9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신앙속에 면류관이 주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절제에 힘쓰라

독일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요슈카 피셔(Joseph Martin Fischer)는 '나는 달린다' 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피셔는 연방의회 의원으로서, 헤센 주 환경부 장관으로 성공적인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에 대한 압박감과 책임감, 스트레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쌓이게 되자,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하여 112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거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결혼 생활마저 파국을 맞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활 태도, 자신의 외모, 생각까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근본적인 것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50살의 문턱에서 지금까지처럼 되는 대로 살던가 아니면 완벽한 변화를 시도하던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삶 전체를 변화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몸무게를 지속적으로 줄여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킬 수 있는 원칙과 기본 수칙을 만들었습니다. '너 자신을 결코 기만하지 말라!' '항상 너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일은 피하라' '결코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달리기를 선택하였습니다. 피셔는 달리기를 통해 본래의 체중인 75kg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 하나도 절제하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자신의 몸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일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면류관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하여야 합니다. '절제' 라는 말은 '극기생활' 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무스의 경기자들은 10개월 동안 죽음에 이르는 훈련을 통과해야 경기장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규약에 복종할 것을 서약해야만 하였습니다. 코치의 지도와 훈련, 식사, 침식, 휴식, 오락 등 일체가 통솔 아래 들어가고, 매도 수없이 맞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당시 극기하는 훈련생활에 대하여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경기에 승리하려면 많이 참아야 하고, 많이 노력해야만 한다. 더위와 추위를 겪어야 하고, 사랑과 술을 끊어야 한다." 약한 선수는 이길 수 없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선수는 경기에도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의미의 '절제' 라는 단어로 신앙의 경기에 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합니다. 절제를 통하여서만이 자신을 이길 수 있으며, 무수한 시련도 인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면류관의 주인공은 절제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27절의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 는 말씀은 '노예를 길들인다' 는 의미입니다. 노예마다 주인이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길들여지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몸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 길들여 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는 요행이 아닙니다. 철저한 절제에 이르게 될 때 주어지는 상급이며 면류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방향을 정하라

1997년도에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Madre Teresa)와 다이애나(Diana Spencer)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열 일곱살에 수녀가 되어 칠 십년을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다가 떠났습니다. 숨질 때까지 그녀는 인도의 가난한 자들, 버려진 이웃들과 살았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세계는 그녀의 사랑에 감동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테레사의 장례는 힌두교와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종교는 달라도 고귀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인도의 수만 명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가 죽기 며칠 앞서 영국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태자와 이혼하면서 수백 억의 위자료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이집트 출신의 최고 갑부와 함께 생활하였고, 그 날도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다면, 다이애나는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확연히 삶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결과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본문 26절입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경기하는 자는 목표 있는 달음질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삶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축구 선수의 목표는 오직 '골인' 입니다. 골프 선수는 오직 '홀인' 이 목표입니다. 마라톤 선수도 오직 지정된 목표를 향해서 달립니다.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달음질은 무의미하고 헛된 것입니다. 그 달음질은 표류하고 말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방향을 말합니다. 27절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복음을 전파한 후에 버린바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에게 방향을 두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믿음의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신앙이 난관을 헤치고 나가는 힘이 되었고 모든 시련들을 이기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썩지 않는 면류관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가십니까? 복음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디 면류관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제를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의 방향으로 끝까지 달려가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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