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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신앙의 결단 (수 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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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수 24:1-28         
제  목 : 여호와 신앙의 결단

<스티븐 코비>의 ‘오늘 내 인생의 최고의 날’ 책 속에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미식 축구감독 <조 파르테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조 파르테노> 감독에게 예기치 않은 전화가 걸려 옵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팀 구단주 <존 설리반>으로부터
        프로팀 감독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연봉은 130만 달러 옵션으로 10만 달러 보너스, 그리고 구단 지분 참여, 등
    엄청난 대우를 내세우며 감독직 수락을 제안해 왔습니다.
연봉 3만 5천 달러로 살아가는 조 감독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날 밤에 아내와 상의를 하는데 아내도 당신 결정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잠자리에 들은 조 감독이 아내에게 하는 말이
“ 오늘 밤 당신 백만장자와 함께 자는거야 ”하고 누웠는데
    남편이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조 감독이 하는 말이
“ 당신, 백만장자와 함께 잠자리 들었지만 당신도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어
      나는 가지 않을거야 “
조 감독은 나중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미식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아마추어 경기를 사랑하지
      프로경기는 내게 그런 의미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그 후 조 프로테노 감독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미식축구 감독으로서
      많은 훌륭한 선수를 길러 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삶의 영향력이
          각 분야에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 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동안에 그런 마음이 들어요.
우리의 신앙도 순수 아마추어 신앙이 되어야겠다.
돈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 여호와 신앙,
    오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바로 순수 여호와의 신앙인 것입니다.

본문말씀은 나이 많아 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과 기업 분배를 마친 후
    그의 백성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합니다.
23장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고 당부한 여호수아는
오늘 본문 24장에서 여호와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두 번째 고별 설교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고백하며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3장에 이어서 여호수아는 다시한번 고별 설교를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 지도자들을 세겜에 소집했습니다.
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을 세겜에 모았을까요?
1.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세겜에 모았을까요?(1절)
당시 국가적 중대한 회집 장소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 모였습니다.
23장의 고별 설교는 모세가 실로에서 행했는데
24장의 고별 설교는 다시 세겜에 소집을 합니다.
왜? 세겜에 소집을 했을까요?
세겜은 수8: 에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 온 후
    모세가 명한대로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맹세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언약을 새롭게 상기시키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세겜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갱신과 그리고 언약의 계승을 다짐하는 장소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의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을 계승해 나가는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순수 여호와 신앙을 다짐하고 계승해 나가는
      하나님의 지성소인 것입니다.
문제는 순수 여호와 신앙의 계승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때 영국 교회는 세계 선교를 시작하고 주도했던 나라입니다.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의 경건한 신앙의 뿌리는 영국이었습니다.
찰스 스펄전, 요한 웨슬리 등, 기독교 부흥의 시대를 꽃피웠던
  대설교가들이 있던 나라가 영국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더슨 테일러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 - 데비드 리빙스톤
우리나라에 들어와 순교의 제물이 된 <토마스> 선교사도 영국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성경을 한국말로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가 영국인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존 스탓트, 로이드 존스, 같은
    신학의 대가들을 배출한 영국교회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교회는 지금 문을 닫고 있습니다.
100년 전 26,000명에 달하던 성직자 수가 현재 8,0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한 교회당 평균 50명 내외가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다섯 교회 중 2교회는 주일학교가 없으며, 86% 이상이 중·고등부가 없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매주 4개 교회 이상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조한 주택이 가장 인기가 있어서 불티 날리게 분양이 되고
교회가 사무실로 공장으로 심지어는 술집과 모스크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존 로스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다니고 거기서 선교사로 헌신하여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기도하며 기원했던
  존 로스 선교사의 기념교회는 얼마 전에 문을 닫았으며,
토마스 선교사 기념 교회는 노인 8명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찬란한 영국의 기독교 역사가 왜 그렇게 시들어버렸겠습니까?
영국 교회뿐 아닙니다.
제가 어떤 글에 보니 영국이 세계 선교를 감당했던 19세기는
    영국은 해지지 않는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말하듯이
    세계 경제를 영국이 주도를 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영국은 깡통 차게 생겼다고 할 만큼 추락했습니다.
왜 영국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진리인 보수 신학을 버리고 자유주의 신학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생활에만 만족했지
      불신자들을 향한 구령의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신앙을 구시대의 유물로 여기고
    경제적인 부와 그로 인해 얻어진 유흥과 사치에 물들어
    평안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신앙을 그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일이 영국 교회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여호와 신앙을 버리면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물려주지 못하면 
언제든지 교회는 문을 닫을 수 있으며 나라는 나락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처럼, 앞서 그리심산에 선 사람들같이
    여호와의 신앙을 고백하며 다짐하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신앙을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조상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세겜 땅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는
  여호와 신앙을 결심 촉구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며 설교를 합니다.

여호수아가 먼저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모아 놓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2-13절)
2-13절까지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설교를 하는데
          23장과는 다르게 설교합니다.
23장에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자시니라, 고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하는 설교를 하지만
24장에서는 2절 - 여호와의 말씀에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옛적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다른 신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그 씨를 번성케 하기 위하여 이삭을 주셨고
    그 아들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홍해와 광야를 통과케 하였고
내가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선지자를 불러다가 저주케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하였고
내가 가나안 족속을 너희 손에 붙여 주었으며
특히 내가 왕벌을 보내어 아모리 두 왕을 너희 앞에 쫓아내게 하였다.
그리고 또 내가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건축치 아니한 성읍과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였느니라.
오늘 여호수아는 아브라함부터 가나안 정복까지
    이스라엘의 걸어온 발자취 즉 역사를 언급하면서
여호수아는 지금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지요.
이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설교인 것입니다.

이 설교 가운데 반복해서 드러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직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공이심,
즉 하나님은 결코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을 계획하시면 일을 성취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
    여호와 - 스스로 계시는 자 - I am that I am
    우 말로 의역한다면 - ‘내다’
3절을 보세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내다,
5절을 보세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애굽에서 너희를 구출해 내시고
      애굽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키신 분이 누구입니까? 내다,
8절을 보세요
    아모리 사람을 너희 손에 붙여 멸절시키신 분이 누고? 내다,
9,10절을 보세요.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은 자가 누고? 내다,
11,12절을 보세요, 가나안 족속과
  특히 왕벌을 보내어 아모리 두 왕을 쫓아내게 하신 분이 누고 - 내다
13절을 보세요,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건축치 아니한 성읍과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의 과실을 먹게 하신 분이 누고? - 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내가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역사가운데 직접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듯이
  우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듯이
  나를 세상에서 구원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질병과 파멸과 환난과 고통에서 나를 지켜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실패와 좌절과 낙심 속에서 나를 일으켜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특히 나를 나 되게 하시고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신앙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신앙 - 바로 여호와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지난날을 돌아보며 내가, 내가 했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껏 지내온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은총을 깨달아라! 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3절)

이스라엘의 지난 세월들 사실은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결론이지요.
13절에 [ 내가 또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치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
악을 선케 만드시고,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돌려놓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렇게 복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고난의 역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속사로 바꾸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승리케 하시고
  자기들이 짓지 않은 집에서 살며
  자기들이 수고하지 아니한 곡식으로 사는   
        놀라운 축복의 민족임을 여호수아는 천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은총 가운데 사는 민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며 광야에서 방황하던 유랑민족,
그러나 이제는 의젓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거저 누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말씀이 있는데
13절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해서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니요.
        우리의 수고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자녀를 기르신 분들은 `톤카(Tonka)`라는 장난감들을 잘 아실 줄 압니다.
불도저와 같은 땅을 파는 장난감들을 많이 만들어서 성공한 회사입니다.
그 회사 주인은 <로버트 L. 토어니어>(Robert Le Tourneau)라는
      초등하교 6학년만 다닌 신앙이 독특한 사람입니다.
그는 불도저와 같은 장난감을 만들고 있었는데
    처음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고전을 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시간과 장난감 만드는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하루는 친구에게 신앙에 대해 큰 도전을 받고는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만 열심히 섬겨야지 결심을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그가 어느 날 부흥회를 참석했습니다.
무릎 끓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전 삶을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짐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모든 장난감 만드는 기계를 버리기로 결단합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기계를 버리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의논하면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후에 또다시 뜨거운 감격 속에서 큰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장난감 회사를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 그래 지금부터는 나의 사업이 아니라 주의 사업을 하자 ’ 결단을 하고
그는 다시 장난감 기계를 모아 회사를 계속합니다.
그리고는 톤카 회사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킵니다.
순 이익의 90%를 자선사업과 교육사업, 선교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Jungle Crusher라는 정글을 부수는 기계를 만들어서
    원주민 선교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토어니어>씨는 
    톤카의 세계는 축복의 세계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손길에서 오는 축복의 사업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이겠습니까?


4. 여호수아가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14-18절)

14-18절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이방신들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결의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난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으니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섬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 그러므로 - 여호와 하나님 내가 -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을 주었습니다.
당신과의 관계를 맺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일까요?

15절  [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14-18절까지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섬김입니다.
섬길 것이라, 섬기라, 섬기는 것, 섬기던 신, 섬길 자, 섬기겠노라 등등해서
전체 9번 나오는데 그 단어가 모두 serve, worship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한다는 의미로 사용이 되어있다.
        하나님만 예배하며 섬길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그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이곳까지 왔고, 
      이제 지도자로서 그는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겠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느냐? 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체험적인 신앙 고백을 백성 앞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삶에 단지 순간적인 쾌락과 즐거움과 안녕을 줄 수 있는 세상적인 신과
그들의 삶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고,
    앞으로도 인도하시며 그들을 돌보실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데,
너희는 택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선택하라는 말이 아니지요
나의 여호와 신앙의 확신을 따르라는 말이지요.
여호와 신앙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왕상18:21절에 갈멜산상의 엘리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결단의 고백을 듣고
16절에 온 백성들이 결단을 합니다.
[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
18절 하반절
    [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니이다 ] 
우리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의 세상적인 즐거움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로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셨고,
    그들의 광야의 수많은 고비 때마다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은혜와 복을 선포하셨고,
        그 약속대로 성취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모든 환난과 근심으로부터 지켜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그들은 결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주어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까지 나를 생명의 길로, 구원의 백성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요 사랑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로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단을 할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5.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결단을 할 때 우리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19-28절)

여호수아의 고백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버리거나 다른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아주 뜨겁게 다짐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의 고백을 비웃듯이 말합니다.
19절-20입니다.
[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말하는 백성에게
너희가 능히 여호와를 섬기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중요한 말입니다. 너희가 다른 신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여호와만 섬긴다고 하는데
    우상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세속화되어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쩜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신앙 모습을 질타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Charles Allen 박사라는 분이 미국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교인 중 20%는 거의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있고,
    25%는 평상시에 거의 기도를 드려보지 않고,
    35%는 가정에서 성서 읽는 일이 거의 없으며,
    40%는 일정한 헌금을 결정하지 않고 있으며,
    75%는 교회에서 어떤 책임도 안지고 있고,
    85%는 한 명도 교회로 인도해 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풍속을 좇고 우리 가운데 우상이 존재할 때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섬김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있는 우상을 제거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차 21절에
[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 다짐하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스스로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그 선택을
    책임 있는 자세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한 후에
  큰 돌을 취하여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운 다음에 백성들을 향하여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라`고 선포한 후에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이 돌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돌이 된 것입니다.

<결론>

여호와 신앙의 특징 - 바로 내다
              여호와만 섬기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는
    여호와 신앙의 중심의 가문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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