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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빛을 비추라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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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마태복음 5:13 ~ 16
설교제목 : 네 빛을 비추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태복음 5:13-16

아프가니스탄의 피랍 사태 때문에 아직도 온 국민이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모슬렘이 기독교인을 납치한 것이 아니라 탈레반이 외국인을 납치한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기독교인을 납치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을 납치하다 보니, 그게 바로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 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것은 기독교인에 대한 이 사회의 비우호적인 분위기입니다. 특히 인터넷에는 아주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프간에 있는 젊은이들과 한국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비방이 지나치자 안 믿는 사람들조차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렇게 심하게들 합니까? 이 젊은이들이 놀러 간 것입니까?”하고 반대의 댓글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여서 교회나 목회자, 또 모든 기독교인이든지 회개할 것은 하고 개선 할 것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당하고 감정적인 비난과 말도 안 되는 억지, 입에 담기 힘든 잔인한 표현들을 보면 ‘한국 사람들의 언어가 이렇게까지 부패 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랍된 젊은이들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놀러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해 째 아프간의 병원에 봉사를 위해 나갔습니다. 그들을 납치한 탈레반에 대한 비난의 글은 찾아보기 힘든데, 잡혀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비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세인, 제사장, 사두개인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 했습니까. 결국에는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큰 잘못을 했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산 사람 가운데 예수님만큼 선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난을 받고 결국 죽임까지 당한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힌두교도들이 많은 핍박 속에 순교했다는 역사는 거의 없습니다. 불교와 이슬람교 역시 조금은 있을지 모르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으리라.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리라.” 어두움은 빛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종종 그런 미움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학창실절에 그런 경험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제가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3~5학년 3년 동안 교회 다닌다고 쇠몽둥이로 맞고 혼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악한 사람처럼 보입니까? 착하게 생겼잖아요. 그런데도 예수 믿고 교회 간다는 한 가지 이유로 맞았습니다.

토요일에는 ‘자아비판’시간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잘못한 것을 학생들 앞에서 말하고 용서를 빌어야 됩니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일어나 그 학생을 비난합니다. 저는 예수 믿고 주일날 교회 가는 것뿐인데 친구들이 저를 비방합니다. 한 번은 한 열명정도 되는 아이들이 저를 뒷산으로 끌고 가서 몰매를 때리더라고요. 교회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공연히 미워하는 겁니다.

세상은 예수를 싫어합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하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수많은 신앙인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싫어했기에 핍박을 받으셨고,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자의 역사입니다. 한국교회도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너희가 핍박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이 크니라. 너희 믿음의 조상들도 이런 고생들을 했다.” 이번 피랍사건에 두 명의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사람이었더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여러분의 믿음이 언제 어디서나 늘 굳건하고 신실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때도 예수를 철저히 믿고 주일을 잘 지키려고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상복아, 너 그렇게 믿으면 안돼!”하시면서 저를 불쌍하게 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예수를 모르는 그 선생님이 불쌍해 보이더군요. 고등학생 때는 우리 마을에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교회를 갈 때면 한 무리의 깡패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예수 믿는 아이들을 공연히 싫어해요. 편견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같은 학교 친구가 하루는 술을 먹고 와서 저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자기처럼 술 먹고, 세상이 하는 놀이, 망나니짓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20년 후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어느 교회의 장로가 되어 있더라고요.

마귀와 이 죄악의 세상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선과 교회와 믿는 사람을, 주는 것 없이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받아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상이 클 것입니다. 핍박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은 맛이 없고 어둡고 부패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여러분, 오늘 아침에 이 메시지를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왜 소금일까요?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맛을 내지 못합니다.
“맛이 없는 세상, 맛없는 인생에 소금을 쳐서 맛있게 만들어 줘라. 부패하고 썩어가는 이 세상, 너희가 소금이니 너희가 맛을 내 주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소금은 별로 비싸지도 않고 필요한 때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조금만 넣어도 맛이 살아납니다. “조미료와 같은 신앙인이 되라”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정치가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앞을 내다 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오늘을 돌이켜 봅니다. 우리들은 폭력적이고 탐욕스럽고 불안정하고 냉소적이고 희망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어떻게 되어갈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존엄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폭력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아프간사태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폭탄조끼를 입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주변사람들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모릅니다. 왜 무고한 사람들을 두 명이나 죽여야만 했습니까?

역시 그 영국 정치인의 말입니다. “사회의 대들보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수 세기를 통해 정부는 사회의 구조를 형성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도덕적인 지침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방향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 이렇게 어려운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금인 여러분과 제가 내 가정, 내 동네, 내 직장, 작은 곳에서부터 평화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이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여러분의 가슴 속에 안주하시는 예수님 그분 때문에 여러분의 삶에 안정이 있고 평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냉소적이고 희망이 없는 세계지만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게 되고 기쁨과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소금은 섞여야 됩니다. 소금 혼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의 속에 들어가야 맛을 냅니다. 부패한 사회,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곳에 예수 믿는 여러분이 소금으로서 섞일 때 사회가 변하는 체험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빛인 줄 몰랐습니다. 그저 ‘내가 빛이면 좋겠는데, 어떻게 빛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세상의 빛이다.” “누구 말씀입니까?” “너!” “너가 누굽니까? 저요?” “그래. 너!” “제가 무슨 빛입니까?” “네 안에 내가 있잖아. 내가 빛이다. 너는 나를 네 마음에 초청했지.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네 안에 내가 있고 네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계시다. 너는 바로 세상의 빛이다. 어두운 세계, 어두운 세상을 밝힐 빛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빛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빛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빛을 사람에게 비추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는 겁니다. 어두운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어두워 보입니다. 세상이 어두워 보이면 반드시 여러분의 생각을 검토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내 생각이 어둡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 주셔서 어두운 생각 대신 밝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무엇이든지 좋고, 무엇이든지 아름답고,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고, 무엇이든지 키울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생각들, 복잡한 생각들, 머리 아프게 하는 생각들은 털어 버리고 “하나님, 내 생각들을 바꿔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라.” 이 때 마음이란 생각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보인다.” 그렇습니다. 어두운 생각이 들면 털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은 빛입니다. 밝은 생각으로 가득 차길 바랍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쓴 글들을 보면 제 사전에는 없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추잡하고 야비하고 천한 단어들이 모두 어디서 나옵니까? 글 쓰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죽음의 단어, 어두움의 단어, 마귀의 단어들입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단어들도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대화할 때 어떤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가?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느끼는가, 아니면 죽음을 느끼는가? 행복을 느끼는가, 불행을 느끼는가? 건전한 것을 느끼는가, 야비한 것을 느끼는가? 어두운 단어를 밝은 단어로 바꾸어 여러분이 입을 열 때마다 세상이 밝아지는 축복, 생명이 일어나는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분노, 불안, 초조, 긴장, 공포와 같은 우리의 어두운 감정이 우리 주변을 질식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시옵소서. 두려움 대신 용기를 주시고, 불안대신 확신을 주시고, 미움 대신 사랑의 감정을 주시옵소서.” 빛인 여러분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앙의 태도, 어두운 태도, 부정적인 태도 대신 밝고 긍정적이고 주님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태도로 여러분의 주위가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행동과 습관, 환경도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변의 환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열린 청소년수련회에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했으나 극소수의 아이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렸어요. 제가 사흘 동안 눈에 띄는 대로 주웠더니 한번은 한 학생이 쫓아와서 “목사님, 제가 줍겠습니다.”하더군요.

환경과 인간은 형제요, 한 가족입니다. 왜? 아버지가 같잖아요. 우리를 만드신 분도, 자연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형제간에 서로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참 속상하지요. 좋은 습관은 부모님들이 자녀가 어릴 때부터 철저히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는 환경 문제에서도 꼭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경을 밝게 만들지언정 어둡고 더럽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말 할 때 약간 소금을 쳐서 맛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그대로가 아니라 제가 해석을 한 것입니다. 말을 해도 좀 맛있게, 듣기 좋게 하라는 것이지요. 말 한마디라도 양념을 잘 해서 맛있게 하려는 노력, 상대방이 먹기에 적절하고, 먹고 싶은 말을 하도록 노력해서 우리 입에서 늘 생명의 언어가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속에 이미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고,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냥 비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좀 비켜서면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누구세요?”하고 그냥 나가지 말고 “주님, 누가 문을 두드리네요”하고 비켜서세요. 예수님께서 그 앞에 서시면 마귀가 문을 두드릴 때도 “내가 주소를 잘 못 찾았네!”하고 도망 갈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땅에 선한 일을 넉넉하게 펼치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느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는 얼음 창고였습니다. H2O가 있기는 하지만 얼어있는 H2O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같은 H2O라도 녹아서 물이 되어야 불을 끌 수 있는데, 그 창고 속의 얼어있는 H2O는 불이 나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얼어붙은 얼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약하지만 예수님께서 제 삶을 통하여 소금으로서의 역할, 밝은 빛으로서의 역할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어둠속에서도 언제나 빛이 되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내 입술에 밝은 언어를 주시고 축복의 말을 주시고 좋은 태도와 좋은 감정, 좋은 생각, 좋은 행동과 습관이 인격화되어 본능적으로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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