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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밀알의 영광 (요 1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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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영광(요12:23-33)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13)하며 외쳤다. 그 기세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세상이 저를 좇는 도다.”(19)라고 하였다. 헬라인들도 몇 명이나,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다(20).

  그때 예수님께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고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상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세상 권세를 무릎 꿇게 하신다. 세상 앞에 보아란 듯이, 천군 천사를 동원하시고, 로마 군병을 몰아내시고, 로마의 앞잡이 헤롯을 무릎 꿇게 하신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을 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기대와는 전혀 딴판의 말씀을 하셨다. (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언하시고 난 다음,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는 세상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다르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영광, 하늘의 영광, 우리 성도들의 영광이 무엇인가? 이는 죽음을 통해서 이루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일들은, 세상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용하시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방법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한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가 강한 교회인가? 죽기를 각오한 교회가 강한 교회이다. 계시록을 보면, 마지막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고백하면, 핍박을 받은 시대가 온다고 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는, 물건 하나도 살 수 없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계13:17). 핍박이 올 때, 제일 먼저 교회에서 사라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취미 삼아 교회 오는 사람들이다. 또한 명예를 갖기 위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다 떠나갈 것이다.

  예수 믿으면 축복 받고, 예수 믿으면 출세하고,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근거로 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떠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이 누구인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사람이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요, 역사 하는 믿음이요,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믿음이다. 그러면 교회는 누구를 키워야 하나? 순교자를 키워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 교회의 능력이다.

  예수님께서 (26)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너희가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려면 떠나라, 그러나 나를 섬기기 원한다면, 십자가를 지고 밀알처럼 죽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죽음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라는 말씀이다.

1. 예수님의 죽음이 영혼을 구원한다(24).

예수님께서 자연법칙을 강의하심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지셔야할 십자가를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 자신이 죽어야,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다는 말씀이다. 곡식(밀알)처럼, 땅에 들어가야(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많은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예언적인 말씀이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류가 구원을 얻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예수님의 죽음 같이, 우리의 삶에 많은 열매를 얻으려면,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그때부터 계속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셨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기 위한 준비를 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나요? 인간의 타락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순종을 했다. 이때부터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 되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탐욕, 사기, 분쟁, 악독, 살인을 행하게 되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고 성경은 증거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지옥으로 가야할 운명이다.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라고 말씀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화염에 싸여, 그 안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쌍둥이 빌딩이 뜨거운 열기로 무너지는 장면이, TV로 생중계 되었다. 이날 2,801명이 생명을 잃었다. 빌딩 안에서, 수천 명이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그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왜 그렇게 끔찍하게 뛰어내려 죽었나요? 어찌하든 그 뜨거운 불길만은 피해 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성경은 지옥의 불길이 쌍둥이 빌딩의 불길처럼, 실제적이고 확실히 있다고 증거 한다. 쌍둥이 빌딩은 뛰어내릴 창문이라도 있지만, 지옥에는 뛰어내릴 창문이 없다.

  지옥은 죽음도 없는 곳이다. (막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다. 원래 지옥은 인간을 위해 예배된 곳이 아니다. (마25:41)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범죄한 인간,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가 나의 저주, 나의 심판을 모두 담당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일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밀알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나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으면, 구원받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확증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믿으면 죽어도 사는 역사가 나타난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당할 자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지만,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 된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시기가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젊어서, 어떤 사람은 늙어서 깨닫는다. 그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에서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영혼의 문제는 미룰 문제가 아니다.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이, 구원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피 묻은 손길을 외면하지 말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2. 순교자의 피가 뿌려져야, 선교의 열매를 맺는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박해는, 초대교회부터 참된 복음과 진리가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있었다. 이는 비단 국가만 아니라, 한 사회나 가정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을 말살시키려는 음모가 이루어짐과 같다. 그들은 애굽에서, 광야에서, 가나안에서, 바벨론에서, 바사에서, 또한 근세에는 스페인, 소련, 폴란드, 독일 등 극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의 위대한 신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성경은 이들이 핍박을 받을수록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을, (출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마치 겨울 보리밭을 잘 밟아줄 때, 긴 겨울 추위를 거뜬히 견뎌내고 새봄을 맞이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흩어졌을 때, 그들이 머무는 곳이나 밟는 곳에는 복음의 흔적들이 남아, 새로운 교회들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박해의 역사요, 피와 희생의 역사다. 하지만 박해와 시련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많고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 예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그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이, 후일 스데반의 순교의 이유였던 그 도에 순종하여, 그 도를 위하여 일생을 바친 위대한 사도가 된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졌고, 주님의 희생을 통하여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회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위에 세워졌다.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때 쇄국정책을 쓰던 조선은, 솔가지와 유황을 뿌려 나룻배를 떠내려 보냈다. 셔먼호에 나룻배가 닿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배에 탔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뭍으로 나오자, 군관들은 그들을 처형했다. 토마스 선교사는 뭍으로 나와,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에게 무릎 꿇고 엎드려, 성경을 건네주려고 얼굴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높이 받들어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받지 않고 토마스 선교사를 처형했다.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의 심령에 변화가 생겼다. 도대체 무슨 책인데, 죽어가면서도 건네주려고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동료 몰래 흩어진 성경을 가지고 돌아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어, 훗날 영주교회의 영수가 되었다.

  그 앞에 성경책을 받았던 박영식은, 성경이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져서, 성경을 뜯어 자기 집을 도배하였다. 그래서 그는 보기 싫어도, 누우면 성경말씀이 보였다. 그래서 결국 말씀이 그에게 들어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성경으로 도배한 이 집이, 평양에서는 최초의 교회,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다.

  이 널다리골 교회가 바로, 1907년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던 장대현 교회의 전신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전파는, 희생과 헌신, 더 적절한 표현을 쓰면, 피가 흘려지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았고 확장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독교는 피의 종교요, 피에 의해 피의 복음을 증거 하는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 도를 받아드리는 자들의 뿌리는 피에 의해 증거 된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증거할 때마다 희생의 피가 흘려졌다. 교회는 주님께서 흘리신 희생의 고귀한 피 위에 세워진 존귀한 기둥이다.

  그래서 초기 시대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했다. 온 땅을 두루 덮은 ‘부흥의 여정’을 추적한 김우현 감독은,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땅 끝까지 가서 자신을 순교 제물로 바쳤던 하늘 사람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부흥은 순교자의 피 위에서 피어난, 하늘 꽃이라고 했다.


3. 우리 자신의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라는 대가를 치르고, 교회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순교라는 대가를 치르셨다. 죽기로 결정하면 어떤 일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 살려고 하니까 치사해 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로 결정하셨다. 뺨을 치고, 돌로 치고, 침을 뱉는 온갖 수모를 겪으셨다. 얼마든지 고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고난에 맞서 정면으로 싸우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을 이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나요? 죽으라고 부르셨다. 십자가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죽으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육은 우리를 살리지 못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따라서 성도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밀알처럼 죽지 않았기에 문제가 된다.

  (갈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하였다.

  봄이나 가을에는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치스럽게 결혼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는 호텔에서도 결혼식이 가능해져, 그 호화로움이 날로 더 심해지고 있다. 결혼식장도 최고, 드레스도 최고, 신혼 여행도 최고다.

  그런데 호텔업을 하는 사람과 여행업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호텔 로비에서 싸우는 신혼부부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신혼부부가 제일 많이 싸운다고 한다. 혼숫감이 부족하다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싸운다고 한다. 신혼여행 갔다가 싸우고,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이혼하는 사람도 많다.

  탤런트 이찬과 이민영 커플도 그랬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비싼 시계, 비싼 다이아몬드, 최고급 승용차가 없어도 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10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보면, 위로가 되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그렇다면 금딱지 로렉스 시계나,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진열하고 있는, 주인들은 매일같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을 진정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과 사랑과 희생이다. 그것만 있으면 감격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참된 영적 풍성함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세상의 가치를 포기하고 주님께 나오면, 우리의 마음이 변화된다.

  다미엔은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다미엔은 소록도와 같이 외딴 섬, 하와이 군도의 하나인 모라카이에 나병 환자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벨기에에서 이곳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다미엔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빈정되며 비웃기까지 했다. “너는 건강한 몸이기에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처럼 날마다 몸이 썩어간다면, 그렇게 말하진 못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처음부터 굳게 닫혀져 버렸다.

  다미엔은 고민에 싸여, 제단 앞에 나아가 기도했다. 그러자 다미엔은 기도하던 중에 “너는 저들의 심정이 되어 보았느냐?”는 음성을 듣고, 그는 크게 회개를 하였다. 내가 죽어야만 복음이 전파된다. 그러고 나환자의 피를 자신의 몸에 넣었다. 그리고 그도 문둥병자가 되었다.

  얼마 후 다미엔은 감각이 점차로 무디어가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갔다. 죽음의 병이 찾아온 것이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간 문둥병자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선 다미엔은 외쳤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럴 때에 수많은 문둥병자들은, 전류에 감전된 듯한 감동을 받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후일 사람들은 다미엔을 부를 때, 거룩한 성자, 세인트 다미엔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다미엔과 같이 되기는 어렵더라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나를 죽이자. 그러면 복음화가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살다보면 끊임없이 사랑해야 할 주변 사람들과 의견충돌이 일어나, 미워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26)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주님을 온전히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죽어야 많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에, 자신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 놓으셨다. 교회는 성도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희생 없이는, 구원도 면류관이 없다(No Cross, No Crown). 성도들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위엄이 있고, 말에도 무게가 실리려면, 자신이 먼저 희생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우리 인격으로는, 선뜻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희생자가 되기 어렵다.

  희생하려는 삶을 살려면, 밀알이 땅에 묻혔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우리 영혼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 가능하다. 오직 성령님이 나를 지배해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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