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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기다리는 사람들 (사 1:10-20, 히 11:8-16, 눅 1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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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다리는 사람들
본문 : 이사야 1:10-20, 히브리서 11:8-16, 누가복음 12:35-40

1.  오늘은 해방주일 또는 광복주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그 혹독한 일제 35년간의 통치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과도 방불합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그들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역사는 요셉이 총리로 있던 때로부터 430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 이스라엘은 특혜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혜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애굽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굳이 하나님의 약속이나 약속의 땅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요셉은 죽고 애굽의 왕조가 바뀌어 이스라엘은 새 정권에 의하여 박해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새 왕조는 국가의 안보를 위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의 씨를 말려버릴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어른들에게는 강제노역을 시키고, 이스라엘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버리라는 무서운 명령이었습니다. 잘사느냐 못사느냐가 아니라 멸망하느냐 아니면 살아남느냐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신음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복음성가에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들으신다.”고 했는데 정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습니다. 아니 “여호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그 백성의 고난의 현장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해방자 모세를 모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바로의 그 무서운 철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새 출발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의 해방도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독립운동을 위한 투쟁도 있었고, 당시 미국을 비롯한 2차 대 전승국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해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하는 가사에는 이런 신앙적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함석헌 씨는 열 처녀 비유를 예로 들었습니다. 당시 모두 절망에 빠져서 잠들고 있었던 밤중과 같은 그런 상황인데 갑자기 “신랑이 왔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까지 나라와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천년만년 지배할 줄 알고 거기 빌붙어서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만행을 부리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난날 해방의 정국을 뒤돌아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주의 오심을 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너무 좋아서 거기 빠져 살다가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기름준비가 되지 않아서 결국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그날이 가까이 왔다”고, 주께서 “문 밖에서 두드리신다.”고 하시면서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그 압박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땅을 찾게 되므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선민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일제 통치라고 하는 용광로를 통하여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금년을 평양 대 부흥 100주년으로 기념하는데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바로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시점이었습니다. 그 절망적인 현실에 하나님은 이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했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교회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살려내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공동체로 만드셔서 여호와 신앙을 위한 증인으로 세우신 것처럼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해 주심으로 다가오는 새 세상에서 우리 민족을 복음을 위한 선교자로서 쓰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과거 어떤 사람들은 우리 “조선민족”을 영어로 “Chosen People”이라고 하면서 우리야 말로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새로운 선민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2.  그런데 오늘 이 땅이 어떠합니까? 아니 이 땅은 고사하고라도 이 땅에 있는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이 땅의 복음화와 통일을 위한 사명이 있습니R? 과연 오늘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습니까?

  오늘 구약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것이 이사야 당시 선민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전은 그 화려하기가 극치에 달했습니다. 그들의 예배의식과 절기행사는 그야말로 장엄하기가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 만큼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고 나오지만....마당만 밟을 뿐이라...제물도 싫으니 더 가져오지 말라....성회나 대회도 꼴 보기 싫으니 더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주님께 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모여서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끝내 회개하여 돌아오지 아니하면 결국 선민이라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지난 7월10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는 한국 교회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10만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거기서 회개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모인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au 가슴을 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죄선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그것도 역시 행사를 위한 행사, 일과성의 전시적 해프닝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시효과를 노리는 기독교계 스타들의 행사가 아니라 오늘 여기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가슴을 찢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1900년대 세계적인 성령의 역사는 큰 집회에서 거대한 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통절하게 깨닫고 가슴 치며 회개할 때,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고백할 때 겨자 씨 같은 그 영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새로운 해방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속화와 죄악에서부터 탈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였던 것처럼 오늘 한국 교회도 이 시대와 다가오는  세상에서 과연 살아남아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이 세속과 죄악의 사슬을 끊고 여기서 탈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이 땅에, 이 땅의 교회에 보내셔서 이 시대의 출애굽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우리 모두 손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간구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럴 때 주님의 마음이 뜨거우셔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다시금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새롭게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3.  여기 오늘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서신 히브리서 11장 말씀은 우리가 흔히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믿음의 영웅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서가 쓰여 질 당시 초기 교회는 상당한 위기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주의자들 즉 율법적인 히브리 종교로의 회귀문제, 그리고 세속주의자들에 의한 교회의 세속화가 그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이 당면한 현실과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무엇보다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함으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1)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소개합니다. 그들 족장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과거와 단절하고, 주변의 세속적인 것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순종했습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되 하나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여기서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결단해야 합니다.

  (2)  끝까지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아들을 얻게 된 아브라함과 사라가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몸의 태가 닫힌 것 같음을 알고도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나이 100세에 약속의 아들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신앙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이 좋아서 주님을 바라보거나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본향을 지향하며 땅에서는 나그네로 산 족장들을 소개합니다. 우리 복음 성가에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 나는요 그곳이 몹시도 그리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변화 산의 세 제자들처럼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향하여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본향이 있습니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고백하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이 광야에 주저 물러앉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유혹들 앞에서 쉽게 무너집니까? 이제 우리 신앙의 눈을 들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향 찾아나가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어라...(언제든지)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올 때 이렇게 깨어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이야말로 진정한 출애굽입니다. 그러나 그날을 위하여 깨어 있는 사람은 언제 그날이 오더라도 거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보거든 너희 머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머리를 드십시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십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실 때 우리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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