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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군을 찾으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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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군을 찾으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요즘 나라 안팎에서 흑색선전과 상대측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각종 루머와 비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소리를 들으면 ‘해도 너무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흠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흠과 단점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노아를 가리켜 당대의 의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 대낮에 길바닥에 누워 자는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자식들 앞에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자고 아내는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누이라고 속이는 아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으나 그는 과거에 사람을 죽인 전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인데도 간음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또 살인도 하고 말았습니다.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실 때에 큰소리 쳤습니다. ‘다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죽는 데까지 가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부족한 허물이 있고 단점들이 있는 법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의원이 쓸데 있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1.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라”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 교만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왕이지만 도무지 사용 할 수 없기에 버리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교만하거나 주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6: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말씀도 보면 하나님은 일군을, 사람을 찾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되 미리 예선하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예선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다 미리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믿게 하십니다. 이 교리가 바로 선택의 교리이며, 제한적인 속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정하셨다면 가만히 두어도 믿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구원의 섭리에도 사람을 사용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구원은, 누군가의 전도를 통하여, 어느 교회를 통하여, 보이는 이 땅위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었고 오늘의 구원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한 일을 이루어 갈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다윗을 찾으신 것입니다.

2. 외모보다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7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외모보다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무조건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외모는 무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바로 서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뚝이가 늘 이리 둥글고 저리 둥글고 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이 바로 서 있듯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중심이 바른 사람입니다. 예전에 빌 빅스비가 주연하고 감독한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영화를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점잖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스트레스나 충격과 위기의 때를 당하면 거대한 괴물로, 야성적인 사람(주인공 빌 빅스비가 헐크로 변했을 때의 모습은 미스터 유니버스를 2회나 차지했던 보디빌더 출신의 로우 페르기노가 열연)으로 돌변합니다. 또 로버트 스티분슨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지킬박사는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와 명예로 만인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지킬이 낮에는 천사와 같이 헌신적으로 사회에 봉사합니다. 그러나 밤만 되면 살인자로 변하는 이중적인 구조의 삶속에 살다가 자살하고 맙니다.

우리는 중심을 하나로 겉과 속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신자들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앞에서는 웃으나 뒤에서는 미움이 가득한 그런 삶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좋게 말하고 뒤에서는 험담을 하고 중상 모략하는 그런 이중 인격적인 삶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세울 때에 중심이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향하여 선한 행실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찾아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소명과 책임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새의 집으로 간 사무엘은 이새에게 아들들을 모으라고 하여 그들을 심사합니다. 사무엘의 눈으로 볼 때에 다 하나님께서 택한 그릇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마다 주님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불러 올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 너는 기름을 부어라’ 아버지, 이새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격미달 같아 보여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가 그이니 기름을 부으라.’고 택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중심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행13:22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군을 찾으실 때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겉으로도 잘 하는 것이 좋지만 속으로도 진심으로 잘 하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사람의 외모만 보기보다는 그 중심을 보고, 나타난 결과만 보지 말고 그 동기와 배경까지도 볼 줄 아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기름 부으면 성령께서 감동하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함께 삼상16:13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오셨을 때에 어디에 있었습니까?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양을 지킬 때에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면 양을 살리기 위하여 곰과 사자와도 싸워 자기 양떼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런 다윗을 일군으로 예선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가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충성하는 사람이었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곰과 사자들 가운데서 자기 양떼를 지키는 용맹스러운 사람! 즉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불의 앞에서 사자같이 담대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릇된 일이라도 선하게 바로 잡고 교회의 화평을 도모하는 그런 일군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읽은 삼상16:13절 말씀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왕으로 임직하였다는 것인데 임직이 될 때에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하니라” 이 말씀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미련하고 죄가 크고, 허물이 큰 사람일지라도 ‘기름을 부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부를 때에 너에게 있는 재능과 의로움과 완벽함을 보고, 그것 때문에 너를 부른 것이 아니란다. 너는 부족하고 허물이 크고 불안전 하지만 내가 너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 할 능력을 부어 주어서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책임지겠다.’라고 하시는 약속이고 보장이고, 위로와 격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전에 문민정부 때 김 대통령께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비서관으로부터 미국의 클린턴을 만나서 인사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비서관은 김 대통령에게 가르쳐 드립니다. 처음 만날 때는 ‘How are you?’ 이렇게 인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I am fine'(좋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me too’ 이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런데 깜박 잊어버리고 만나자마자 ‘Who are you?’(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했습니다. 클린턴이 깜짝 놀라며 ‘I am Hillary's husband'(나는 힐러리 남편이요)"라고 하자 "me too"(나도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유머는 한미관계는 문민정부 시대부터 잘못되었다는 풍자입니다. 그래도 대통령 하잖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직분을 감당 할 수 있겠는가? 또 본인도 나는 직분을 감당 할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시면 얼마든지 감당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4. 끝으로 사람을 찾으시는 이유가 나옵니다.

행13:22절에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기름 부으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왜 기름을 부으십니까? 그 다음에 이유가 설명됩니다. 함께 하시겠습니다.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 자기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군들은 자기의 뜻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불만을 품고, 원망이나 하고 직분 받은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되었어도 주님의 뜻대로 되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또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고후5:14-15절을 함께 찾아 봉독하시겠습니다. 신약 성경 291면입니다.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자세히 살펴봅시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여기서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15절에 “...산 자들로 하여금...” 여기서 산 자란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바로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은 우리 모든 성도들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죄와 허물로 영 죽었던 우리를 주님의 보혈로 살려 주신 줄 믿습니다. 이제는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후5:15절을 다시 봉독하시겠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직분을 받은 분들이야 얼마나 더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비록 실수하고 죄를 범한 다윗이지만, 넘어졌었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일어 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쪼록 이제 결론적으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순종하는 일군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외모가 아무리 출중해도 중심이 바르지 못하면 일군으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일군으로 삼으신 줄을 깨닫고 내 감정과 기분과 혈기와 뜻을 다 죽이고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일군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기뻐 찾으시고, 쓰실만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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