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왜 기다리게 하십니까? (요 15:16)

  • 잡초 잡초
  • 300
  • 0

첨부 1


왜 기다리게 하십니까?(요 15:!6) 

3D라는 말이 있습니다. Dirty, Difficult, Dangerous라 하죠.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3D가 있는데
뭔지 아십니까?
바로 Digital, DNA, Design 이라고 합니다.

정말 요즘은 뭐 그리도 빠른지 아차! 하면 만났다가는 사라지고, 만났다가는 사라지고 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정신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신앙에 관심이 적어진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주님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캄캄 무소식 이예요.

그러나 요즘 같은 빠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먹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이 주님을 기다리는 이유는?
요 15:16을 다시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는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왜 기다려야 합니까?

바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의심하지 아니하고, 기다리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 해 볼까요?
기도하지 않으면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지 아니하면 열매도 없는 것입니다.

기도와 기다림은 하나입니다.
기도하면서 의심이 생기지 아니하는 것도 하나입니다.

기도하면서, 의심하지 아니하고 기다리면 우리는 쓸모없는 가지가 쳐지게 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농부는 가지치기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고르고,
가지를 쳐내면?
아깝다고 그냥두면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고 맙니다.

잎만 무성하면 안되요.
열매가 있어야죠. 주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도 꼭 가지를 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들을 쳐내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다른 길로 가려고 합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 왔기에 이제는 느낌마저도 없습니다.

또 우리는 잘 속아요.

사람은 악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나약하고, 연약한 것들에는 동정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연약함에 속지를 마세요.
육체의 소욕은 악하면서도, 연약합니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은 악하기도 하고, 연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연약해도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잘 안되죠. 걱정 마세요.

롬 8: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성령은 잘난 사람을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들을 도우신다는 거예요.
우리의 삶이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혼돈하고, 질서가 없는 것도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나의 이런 가지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요?
기도하는 나를 보시고 싶어서.
기다리는 나를 보시고 싶어서.
그리고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려고.

어떻게 변화되는지 아십니까?

빌 4:6-7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다 표면을 보면 바람에 흔들려도 깊은 데로 가면 바다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 세상이 요란해도, 주변 상황이 복잡해도 이 마음이 절대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변질된 세상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을 다 사라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입니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 첫째는: 내가 알고, 남도 알 수 있는 부분.
․ 둘째는 :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부분.
․ 셋째는 :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아는 부분.
․ 넷째는 :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 바로 내 것인데도 그게 내 뜻대로 안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의 뜻대로는 되겠습니까?
조율이 잘 안됩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나의 마음을 지키는데 있다고 성경이 말하는데도”(잠 4:22-23)

․ 웃어야 하는데, 찡그리는 마음,
․ 울어야 하는데, 잘 안되는 마음,
․ 사랑해야 하는데, 미움이 젖어 드는 마음,
․ 새로 지어야 하는데, 그만 허물어 버리는 마음.

나의 입술로 범죄치 않기를 수없이 기도해도
나의 입술은 오늘하루도 남의 맘 아프게 했도다
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
주여 주여 난 어찌 하오리까
주여 나의 입술을 온전히 다스리소서
나의 맘으로 범죄치 않기를 수없이 기도해도
나의 심사는 오늘 하루도 수없이 미워했도다
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
입으로 기도는 잘해도 행치 못해
주여 나의 이맘을 정결케 씻어 주소서

그런데 그런 이 마음을 다스리려면,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그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사람이 따로 일하면 20개의 핀을 생산하지마는, 열 사람 다 같이 일하면 48개의 핀을 생산할 수 있다는 학설입니다.

이 시너지 효과는 영적인 면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시고,
하나님은 그의 약속이 하나도 헛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면, 풍랑을 이기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계곡을 건너듯이, 나에게 다가 오는 어려움을 헤쳐 나아 가야하는 장애물이지 피해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예요.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의 장애물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빌 4:7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지킨다’ 라는 말은 보초가 경계 근무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 가운데 얻어지는 평강은 그 무엇도 앗아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너지 효과는 인간 사이에 얻어 지는 것이지만, 주님은 이 마음을 지키셔서 그 무엇도 빼앗지 못하게 우리를 돌보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그래서 시 127:1에서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였습니다.

마음의 성을 지키시는 분이, 기도하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 우리도 기도하다가,
․ 의심 말고 기다리다가,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여러분,
․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