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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도 맡기신 일 (욥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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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욥기 1:1-22(구약 761)
제목 : 내게도 맡기신 일

1.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석방이 늦어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점차 이 사건은 뉴스와 사건의 중심부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들은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수많은 원망을 들으며 지내야만 했다.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원망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① 그 나라에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가 가지고 그 난리냐?
② 유서까지 써 놓고 갔다는 사람들이 왜 지금 와서 살려달라고 난리냐?
③ 당신들 살아 돌아올 때 공항에서 얼굴 푹 숙이고 들어와라. 절대로 웃으며 환호하며 들어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들 때문에 이 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알지? 이 나라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또 국민들은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들과 이 나라에 이런 고통을 준 사람들이니까 절대로 고개 들고 오지 마라.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두 가지를 느꼈다.
① 사람들이 너무 무자비하다는 점이다. 무자비하다는 생각을 탈레반에게만 가진 것이 아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서도 느꼈다. 무자비하다는 말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생명인데, 어쨌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인데,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결과만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사람의 생명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했다.

②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극도의 이기심이다. 그 인질들이 풀려나서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 죄인처럼 부끄럽게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당신들이 그렇게 잘난 행동을 해서 우리 국민들이, 또 내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거기에 온통 신경 써서 내 생활에 지장을 주었으니까”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눈과 귀가 온통 거기에 집중되고 국민들이 큰 걱정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탈레반에 잡혀있었던 23명과 그 가족들의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지 않는 듯 했다. 인질들은 총칼의 위협으로 죽음과 생명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 공포, 엄청난 스트레스, 열악한 환경... 최종협상시한을 탈레반은 아무런 느낌 없이 정했겠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 때문에 내가 불편하고, 당신들 때문에 내 생활에 지장을 받았으니 당신들은 죄인이 되라’는 것이다. 나의 불편, 나의 고통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내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내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내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아파서 위독한 상태에 있는데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면, 내 가족이 그런 곳에 가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라”는 식의 그렇게 무자비한 말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젊은 목사님을 하나님은 데려가셨을까? 봉사하기 위해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농촌봉사의 꿈을 가진 젊은이를 왜 하나님은 총에 맞도록 내 버려두셨을까? 왜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해서 길을 떠난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받게 하셨을까?’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저는 이 시간 동안 욥기를 읽으면서 지냈다. 욥기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2. 성경 속으로

  1)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욥기 1-3장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듯하다. 1-3장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무대가 수시로 바뀐다. 그 무대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우리의 눈으로 환히 볼 수 있는 세계다.
  욥기 1장에서 첫 번째 무대는 보이는 세계다(1-5절). 그 곳에는 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의 모습, 그의 말, 그의 행위가 눈에 환하게 보인다. 그가 가진 재산의 규모와 그의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 자녀들의 잔치와 웃음소리,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이내 장면이 바뀐다. 무대가 천상의 모습으로 바뀐다. 아름다운 별들과 빛이 있고, 하나님의 빛나는 보좌가 있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그 아래 사탄이 등장하여 욥을 참소한다. 사탄은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욥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버리면 욥은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내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허락한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소유물을 사탄에게 맡기는 모험을 하신다. 사탄은 입가에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쏜살같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곧 세 번째 장면이 나온다. 욥이 살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 보인다. 욥의 가축들과 종들, 욥의 자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대는 곧 어두워지고 요란한 효과음이 들린다. 세찬 바람이 불고, 캄캄해지더니, 불이 떨어지고, 이내 가축과 종들이 쓰러진다. 어떤 집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무대 한 가운데 욥이 보인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울부짖으며 쓰러져 있는 욥. 그는 탄식과 아픔을 토해낸다. 다시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도 욥의 고통이 내게로 전달되는 것만 같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욥에게 말해 줄 수 있다. “당신이 고통 받는 이유가 있어요. 저 하늘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사탄이 당신을 참소했죠.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많은 소유를 주셨고, 그를 평안케 하셨기 때문이니 그가 가진 것을 거두어버리면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은 잠시 깊이 생각하시더니 이내 허락했어요. 욥의 소유물에만 손을 대고 그의 몸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고통 받고 있지만 이 모든 사실을 하나님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다 보고 계세요. 그러니 절대 실망하지 마세요.”

  그러나 욥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다.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입에서는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 새가 새끼를 부르는 듯한 절규가 흘러나온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까? 왜! 왜! 왜!”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관객으로 있을 때는 그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대를 빠져나와 욥의 자리로 가면 우리 역시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내가 경험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의 현실이 내 앞에 있을 뿐이다. 아무리 하늘을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욥기(특히 1-3장)는 우리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다. 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두 가지의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내 눈에 보이는 세계만 믿으려고 한다.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내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내가 경험할 수 있고, 내가 참여함으로써 얼마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세계만을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 욥기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내 눈이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60억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 하나가 있다. “당신은 눈에 보이지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믿지 않는가?”

  내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만난다. 우리는 어쩌면 욥과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 소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 가족이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늘 실패하는 모습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해도 해도 잘 안 되는 그 모습뿐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을 보고 만날 때도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보고 경험하는 이 세계 너머에서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욥기는 저와 당신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2) 하나님의 모험

  저는 그 동안 욥기를 욥의 시각에서 읽었다. “왜 욥이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그가 당한 고난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가? 그는 고난 앞에서 어떻게 처신했는가?”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욥기를 읽었다. 욥기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읽어 보았다. 그러자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읽어보자(8-12절).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욥은 엄청난 시험을 당한다. 이 본문을 욥의 관점에서만 보면 욥만 엄청난 시험을 당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 역시 엄청난 시험을 당한 것이다. 여러분은 황당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아무런 시험도 당하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은 욥이 시험을 당할 때 뒷짐 지고 계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욥이 과연 그 시험을 잘 견딜지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욥이 시험을 당하도록 사탄에게 그것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이 모험을 하셨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허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예, 하나님의 존재가 훼손될지도 모른다. 사탄의 말과 같이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욥의 소유가 다 사라지면 하나님을 저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와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존재는 피해를 입는다.

  사실 하나님 스스로 자신이 모든 것을 지켜낸다면 하나님은 아무런 훼손도 입지 않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욥에게 맡기신다. 욥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시험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신다.

  하나님은 23명의 인질들이 탈레반에게 잡히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알고 계셨을까? 그렇게 되면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는 사람들이 생길지 하나님은 아셨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사람들을 건지실 껄’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을까? 이 일로 인해서 가장 큰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를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을까?

  나는 여기에 대한 모든 대답이 “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그런 모험을 하셨을까?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알 길이 없지만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욥을 믿어 주셨다. 소유물이 없어져도, 자녀들이 죽어가는 정신없는 그 상황 속에서도, 온 몸이 종기로 뒤덮여 기와로 자기의 몸을 학대하듯 긁는 고통 속에서도 욥은 나를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하나님은 욥을 믿어 주셨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믿어주시지 않았을까? 좋은 일 하기 위해서 간 사람들이 그렇게 간악한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해도 너희들은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너의 예쁜 아내와 사랑스런 딸을 남기고 죽는다고 해도 너는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사람들이 쉽게 풀려나지 않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은 죽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 너희들이 서 있어도 너희들은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믿어주시지 않았을까?

  욥기는 오늘 믿음의 혼란한 상황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①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고.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② 하나님은 욥과 같이 나에게도 그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영예를 시험하고 계신다. 바로 당신은 그것을 맡은 대리자이다.
  하나님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그 일을 우리들에게 맡기셨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너무나 믿어주시기 때문이다.

③ 욥은 그 고난 속에서 울부짖었다. 아프다고 소리쳤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냐고 하나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나 결코 하지 않은 한 가지 일이 있었다. 믿음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것만은 하지 않았다. 그는 믿음만은 꼭 지켰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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