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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 사함 받은 자의 믿음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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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 받은 자의 믿음 (막 2:1-12)

재판정에서 사형언도를 받은 한 살인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끔찍이 동생을 사랑하는 형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나라를 위해서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동생이 죄를 짓고 사형장으로 나가게 된 것이 너무 마음 아파서 체면 불구하고 대통령을 찾아가서 동생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형의 나라를 위한 공훈을 생각해서 사면을 허락했습니다. 형은 사면장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감옥을 찾아가서 동생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만일 네가 이 어려운 가운데서 사면을 당해서 자유를 얻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느냐?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은 살기등등한 목소리로"내게 사형 언도를 한 판사와 내가 이렇게 사형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불리하게 증언해준 증인들을 모조리 죽일 것입니다." 형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 말 없이 감옥을 나와서 사면장을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은 인간은 다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죄인인 줄을 아는 죄인이 있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죄인이 있고, 자기의 죄를 알지만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그런 죄인이 있습니다. 자기의 불행이나 자기의 죄가 나 외에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나를 죄인 만들었고 이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죄에서 벗어나는 결국은 회개가 문제고 회개했으면 사죄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죄 받았으면 사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는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치유는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으로 병이 고침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침을 받은 주인공이 한 마디의 말도 없는 침묵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또 병 고침도 받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없는 이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는 침묵이 있었지만 회개가 있었고 더 나아가 엄청난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순종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은 친구를 잘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친구들이 침상 째 들고 올만큼 중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가자고 할 때에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권면을 받아들일 만큼의 인격도 있었고 믿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예수님 앞에 가까이 가야 하겠는데 사람이 가득하기 때문에 용신할 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붕을 뚫고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지붕이 열리면서 침상이 내려옵니다.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야 하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5절을 보세요."예수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합니다. 친구들의 그 행위를 믿음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자,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환자를 보는 순간 병의 치유에 대한 선포가 아니라"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네가 병든 것은 네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거기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서기관들도 깜짝 놀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사실 이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픈 환자에게"네 죄 때문에 네가 병들었다. 네 병의 원인은 죄다."라고 말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누가 아프다고 합시다. 그런데 제가"당신의 병은 당신 죄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 받아들이실 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다시는 교회 안 온다고 나가실 것입니다. 사실은 중요한 이야기인데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말씀을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모든 병이 죄로 인한 것이라는 단정이 아닙니다. 물론 근원적으로 본다면 모든 질병의 원초적인 원인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질병이 반드시 그 사람의 직접적인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는 사건에서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심으로 그의 병이 나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은 언제나 복음이 먼저요, 하나님 나라가 먼저입니다. 병을 고치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을 용서해 주신다는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는 하나의 은혜로운 수단으로 치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병이나 고치는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근원적인 질병인 죄를 고치시는 구속자임을 나타내시는 사건입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지 않고 오늘 본문을 보면 괜히 아픈 사람을 앞에 놓고"지은 죄가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아프냐?","싸다 싸 죄가 많으니 네가 그렇게 아프지."만 따지게 됩니다. 물론 죄로 인한 질병도 실제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그런 시각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여간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10절 말씀이 그 의도입니다."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나타내는데 중풍병자를 통하여 죄 사함의 권세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더 봅시다.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병을 고치고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침상을 달아 내렸는데 예수님의 첫마디가"네 죄 때문에 네가 병들었느니라."직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아, 내가 죽으면 그만이지 왜 남의 죄까지를 들추는 거요?"안 그러겠습니까? 지금 이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 사람, 예수님의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사실은 참으로 어려운 시간에 보여주는 귀한 회개요 믿음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보통 혼자 있을 때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뉘우친다고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하지만 누가 나의 죄를 지적하면 거의가 변명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누가 죄를 고발한다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이거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침묵함으로 수용합니다. 마음속에서부터'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병이 되었군요'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 사함을 받는 가장 먼저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변명할 일이 아닙니다. 화를 내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의 첫 단계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이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믿고 침묵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는 오늘 서기관의 말이 그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중풍병자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당신이 누군데 내 죄를 사하니 마니 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였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어려운 예수님의 사죄권을 인정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신학적으로 엄청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 나아가서는 하나님 되심을 믿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행위는'당신이 내 죄를 사할 수 있고 주님이 나의 죄를 사했으니 내 죄가 사해졌음을 믿습니다.'이것을 믿는 굉장한 믿음입니다. 사죄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병부터 고쳐주고 나서 죄 이야기를 하자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입이 없거나 감정이 메말랐거나 말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침묵하며 바라고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송장과 같은 몸이었으므로 부끄럽거나 창피하게 여길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들것에 실려 가는 자의 실상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든지 언젠가는 들것에 실려서 묘지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내게 호흡이 있을 때에 들것에 누인 채로라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 들것을 내 손에 들고 걸어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몸이 들것에 달아 내리우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죽은 자 같다고 할지라도 부끄러워하지 말 것은 그것이 내 죄 사함을 받고 걸어 나올 수 있는 길이라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람, 끝까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정한 회개가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만한 겸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용서받은 자신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일어나라 할 때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에 그는 순종하여 일어나서 새로운 생의 장을 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숱한 죄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죄를 용납하고 죄 속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네 죄를 사함 받았느니라."는 말씀과 함께 용서받은 감격이 있어야 새로운 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은 자란 침묵하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는 믿음과 그에 따른 감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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