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예수의 영은 담을 넘게 합니다 (사 42:5-9)

  • 잡초 잡초
  • 401
  • 0

첨부 1


참된 예수의 영은 담을 넘게 합니다 (사 42:5-9)

우리가 이 땅을 살다보면 많은 고난과 영적 침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고난과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고난과 영적 침체에 빠지면 자기 분석을 통해 해결하려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면 하나님의 빛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고,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며 이 시간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절을 읽겠습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면 우리는 절대로 두려움에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려움에 빠졌을 때마다 시편에서 “항상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반복하여 교훈합니다.
 
창14-16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굉장히 큰 번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을 얼떨결에 물리친 후 그들이 다시 보복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신학적인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자손을 많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자기는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들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 가운데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는 하지만 문제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하고, 자꾸 눈물만 흐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알려지면 창피해서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창15:5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무슨 얘기입니까?
원래 하늘에는 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 많은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뭘 못하겠느냐,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너의 아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어떤 때는 염려하고 두려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로 어떤 일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저도 인생을 살다 보면 잘 안되는 일이 있고, 기다려지는 일이 있습니다.
저도 목사이기 때문에 새성전과 비전관 건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신축하는 현장을 바라보며 “언제 이루어지나?”하고 그 일에 집착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걱정과 번민이 사로잡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에 집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초월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창시절에 중학교 1학년 것을 다 알고 2학년으로 갔습니까?
모르고 갔습니다.
그런데 2학년에서 3학년으로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보니까 중학교 1학년 것은 다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초월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그때그때 충성하며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건져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인 것입니다.

시121:1절을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에 참된 쉼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영적인 쉼입니다. 문제해결의 능력입니다. 그것이 초월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6-7절을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여기에서 “너”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백성의 언약”이요 다른 하나는 “이방의 빛”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언약”이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밖에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에게는 또 하나의 사명 곧 “이방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막혀 있는 모든 담을 헐어버리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어 예배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담을 넘고 벽을 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수의 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반드시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가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마4:15절을 보면 이방이라고 여겼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본거지를 유대라고 생각하고,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할 정도로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기에서부터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변방을 향해서 나아가셨던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한계를 뛰어넘는 그것이 예수의 영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7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여기 소경이란 시각적인 한계의 제한을 받는 자요, 갇힌 자란 공간적인 한계의 제한을 받는 자이며, 흑암이란 영적인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임하면, 이런 한계를 뛰어넘고, 제한을 뛰어넘는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게 되면, 교회 안에 있는 양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양이 보이기 시작하여 담을 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교회, 살아있는 교회의 특징은 새신자들이 항상 넘쳐나고, 그들이 가지고 온 변방의 소식으로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교회는 전부 다 경건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신자들이 있어야 하고, 연약한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런 사람도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의 사람들이 새가족으로 들어와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정말 제도권 안에 있는 안정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설교를 했더니 3,000명이 믿고, 그 다음에 설교를 했더니 5,000명이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수가 최소한 10,000명이 넘는 대단한 교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변방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핍박을 당하고 뿔뿔히 흩어졌을 때에 새워진 안디옥 교회를 보십시오.
행11:20절을 보면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제한성이 있었지만,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이방인이었던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더니 그들도 믿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 교회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면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방인에게는 전도하면 안돼, 넘어가면 안돼”라고 밤낮 줄긋는 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넘어가셨으며, 오늘 우리들에게도 땅끝까지 이르러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은 복음과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복음을 전도하는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