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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란 무엇인가? (고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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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고전 1:2)

얼마 전에 인천에서 신축공사 중인 건물이 무너진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기초가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견고한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기초와 골조가 튼튼해야 한다.

견고하게 잘 지은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은 준공 검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자가 발생하게 된다.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서 물이 새고, 문틀이 맞지 않아 문이 잘 닫히지 않기도 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믿음의 집을 짓게 된다. 어떤 사람은 반석 위에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모래 위에 짓는 사람도 있다. 평상시에는 잘 모르지만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그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된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이뤄왔지만 빠른 성장속도 만큼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일에 부실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이런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교회 2년만 다니면 집사준데...”

어떤 사람은 정말 물어보기도 한다. “목사님 정말 교회 2년만 다니면 집사주나요?”
“예, 집을 사드릴 수는 없지만, 성실하게 2년만 잘 다니면 집사 될 수는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시간이 지나면 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고 장로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쉽게 직분을 받는 것은 본인 자신에게나 교회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교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많은 교회 학자들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위기적 상황의 중앙에 놓여 있는 문제가 바로 교회에 대한 무지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 교회요? 교회가 교회지요. 또는 교회요? 예배드리는 곳이지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그냥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기초가 부실한 가운데 집을 지는 것과 같다. 그런 집은 오래가지 못해서 무너진다. 자기도 피해를 보고 남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유능한 선수일 수록 기본기에 충실하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한 바른 지식은 바른 신앙을 세우는 기초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교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교회에 대하여 바른 인식을 갖기 바란다. 그리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먼저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교회를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다니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은 아니다. 교회당 안에 들어와 있고, 교적부에 이름이 적혀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이다.

2)교회를 예배당이라는 장소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겠다.

3)사회정의를 구현하고 독재정권과 투쟁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정부 반대집회나 노사운동을 할 때 단골집 처럼 등장하는 곳이 명동성당이다. 물론 시대가 요구할 때 교회는 부정부패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주된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노사문제나 인권문제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4)구제기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상처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위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교회의 우선되고 주된 역할이 아니다.
예)부교역자 시절, 청년부를 지도할 때 한 청년의 불만.

5)교회를 축복의 창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만 나오면 골치 아픈 문제들이 해결되고, 사업이 잘 되고, 시험에 합격하고, 불치의 병이 치료되고... 그런 많은 기대를 가지고 나온다. 물론 문제가 해결되고 복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목적이 불순한 상태에서는 선한 결과가 나오질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나온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자기 목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곧 실망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은 잘못 인식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지적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 고전 1:2의 말씀이 교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교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1.교회란? -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
교회는 장소가 아니다. 건물도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다.

“교회”란 단어의 원래적 의미는 “불러내다”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서 불러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시고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도 있다. 교회당에 나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이 자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믿음이 강하건 약하건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그런고로 성도들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 의 주체를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100년 전의 유럽 교회는 사람들로 꽉 꽉 차고 넘쳤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아름답게 잘 건축했다. 그러나 지금은 텅텅 비어 있다. 어떤 교회당 건물은 쇼핑센터로, 어떤 교회당 건물은 댄스 홀로, 어떤 교회당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건물 종탑에 십자가가 붙어 있어도 그 건물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를 건물이나 장소적 의미로 생각할 때 성도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연극을 보러온 관객들이 아니다. 예배의 참관자가 아니다. 헌금내고, 찬양대의 찬양을 감상하고, 설교 듣고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이 아니다. 교회 그 자체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계획을 그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줄 연극 배우들과 같은 존재이다. 교회당 건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시려고 여러분들을 불러 내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2.교회는 거룩한 공동체 -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물론 하나님 한 분 외에 거룩한 분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죄인들도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예수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이다.
이 거룩한 백성을 성도라 부른다. 이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반문하고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왕이 사는 집을 궁전이라고 한다. 왕을 지키기 위해 궁전경비대가 주둔하고, 궁전을 수리하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개 왕이 사는 집도 가장 존귀한 영역으로 관리하고 보존한다면 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인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는가? 거룩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안다면 교회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거룩한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만약 성도가 자신의 성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죄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벌하신다.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첫 번째 중요한 과제이고, 두 번째로는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내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깨끗게 해야 한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 내주하시면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파견한 천국의 지점과도 같다.
우리들의 거룩한 삶을 통해 세상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한 심령들이 이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쉼과 치유함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회로 모일 때 마다 그 모임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우린 부족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릴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이루시길 원하신다. 그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결단하고 노력할 때 이뤄진다.


3.그리스도의 몸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관계성이 있다.

1)그리스도와의 수직적 연합관계
엡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 말은 교회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수직적 연합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직적 주종관계가 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지체들끼리의 수평적 연합관계
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12:25-26,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수평적 관계라는 말은, 모든 성도가 동등한 입장에 있으며, 서로 의존하는 협력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몸 안에는 여러 기관이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통일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성격과 재능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만약 한 지체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다른 지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조화가 깨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피해를 당할 것이다. 모든 지체는 다 동등하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하는 수평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교회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수직적 연합관계,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수평적 연합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때 교회로서의 본래적 기능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은 현재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 분의 흔적을 남겨 놓으셨다. 그것이 교회다. 500년 1000년 된 교회당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 가면 오래된 교회당 건물이 많이 있다. 관광객들이 입장료를 내고 구경할 수 있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사용했던 건물에 불과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돈 벌기 위해서 고생한 것 아니다. 학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고생한 것 아니다. 매도 맞고, 굶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고후11:27-28,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오늘날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 다툼과 분란이 일어나는 원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알면 다투지 않는다.
찬송가 356장 1절,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서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나와 관계, 그리고 나와 다른 지체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있는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성도들은 구경꾼들이 아니다. 주의 몸된 교회의 주체가 된다. 혼자 따로 떨어져 있지 않는다. 서로 연합되어 있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머리가 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며 다른 교우들과 유대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지는 일에 힘쓴다.

오늘 설교의 내용을 요약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1)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며 교회의 주체다.
2)성령의 전이다.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성전이다.
3)그리스도의 몸이다. 존귀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서울 미사리에 가면 조정 경기장이 있다.
좁고 길다란 보트에 여러명이 함께 노를 저어서 2km를 달리는 경기다. 8인조 경기에는 9명이 탄다. 8명은 노를 젓고 1명(콕스)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경기에서 승리의 관건은 8명의 선수가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한 몸처럼 노를 저어야 최고의 속도를 낼 수가 있다.

교회의 모습이 조정 경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향을 잡아주는 선수를 콕스라고 부르는데 콕스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8명의 선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같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훈련되지 못한 선수들의 경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는 달리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 배도 있고, 어떤 배는 한 두 명만이 노를 젖고 나머지는 구경꾼들인 팀도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열심히 달려도 헛수고가 되고,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던 두 세 사람은 탈진해서 나가 자빠지는 형국이 아닌가?

열심있는 소수의 성도들은 탈진상태에 있고, 대다수의 평신도들은 예배만 보고, 헌금만 내고 돌아가는 구경꾼과 같은 모습이다. 오늘날 교회가 무력해지고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내 자신이 교회요,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요, 내가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든 부실의 원인은 기초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는 관객도 손님도 아니다. 교회의 주체다. 교회 기관에 소속되어야 하며, 봉사의 일을 감당하고자 자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뒤로 물러가지 말라. 피하지 말라. 교회는 여러분의 영원한 기업이다. 예)한경직 목사 - 존경하는 목회자 1위.-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는 복 받는다. 9명이 한 마음, 한 몸이 되어서 골인점을 향하여 신나게 달려가는 조정경기의 모습을 연상해 보라. 얼마나 신바람나는 모습인가?

명심하자. 내가 교회요, 내가 주님의 몸이요, 내가 성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그 위에 여러분의 믿음의 집을 함께 견고히 짓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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