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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 애쓰라 (잠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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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회심을 위해 애쓰라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I. 들어가는 말

잠언은 여러 곳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신앙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자신들은 늙고 힘이 없어지게 되어 자녀들이 새로운 세대를 이루게 되는데 그 때에는 자녀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지만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부모들이 쉽게 할 수 있는 큰 착각이 내 아이들은 언제든지 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그 이상을 넘어서면 자녀는 절대로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더 자라서 성인으로 활동하는 세대가 되면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고, 역사 가운데 우리들이 앉았던 의자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자녀들을 통제하거나 인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앙입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우리는 늙어 아이들을 통솔할 수 없어도, 심지어는 우리는 죽고 없어져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우리의 신앙을 계승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만들 힘이 우리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향한 우리들의 영향력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니 어찌하든지 그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는 자녀들이 된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를 인도하시어 주님의 인도를 받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아이들에게 먼저 신앙이 심겨져야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 방면으로 빠른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육욕적인 방면으로 빠른 것입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됩니다. 집안에서 잘 단속한다고 해도 부모가 아이들의 24시간 전부를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자녀들이 음란한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게 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종류의 교육이 아닙니다.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것이 굉장히 어리석은 것이라고 반감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현실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들은 결국 쓸데없는 구닥다리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유혹이 들어오면서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힘들어집니다.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대학을 가고 또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어려웠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똑같이 돌아오기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이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어서 신앙을 갖기가 더 어려워지는 역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이 어렸을 때일수록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그들로 진실로 회심하고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어떻게 하든지 우리 아이들이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루어주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독자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나이로 만 3살 정도가 되면 충분히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펑펑 울면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지성을 얕잡아 보고, 복음을 마치 굉장히 성숙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이해한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질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마음에 빛이 들어와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회심과 변화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II. 본성과 행위

이제 잠언에서 말씀하시는 본성과 행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A. 행위로 나타나는 성품

여기서 우리들이 먼저 생각해볼 것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신중하면 행동하는 것도 신중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가 인색하면 그의 행동도 매우 인색하며 이기적입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너그럽고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늘 베풀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합니다. 자존감이 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수치스러운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품이 급하면 그가 하는 일이 늘 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자신의 성품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는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한 번의 경우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의도는 없는데 실수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짐짓 다른 목적을 위해 지어낸 행동, 위선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행동을 여러 번에 걸쳐서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꽃이 핀 것을 보며 나무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맺힌 열매를 보며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를 확인하게 되듯이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어떤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놀랍게도 어린아이에게도 이것이 적용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 자연적 성품과 신령한 성품

이렇듯 사람의 성품은 행위로 드러나는데 우리는 이 성품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자연적인 성품과 신령한 성품입니다.

1. 자연적 성품

자연적 성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거듭남의 역사 없이도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서 개발되고 고쳐짐으로써 형성되고 촉진될 수 있는 종류의 자연적 본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본성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자연적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적인 본성은 후에 환경과 교육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또 다른 자연적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은 좋은 쪽으로 변화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쪽으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기를 때에 가정교육의 중요성,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연적인 성품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수많은 가정적 문제의 원인은 거의 자연적 성품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모님으로부터 원만한 성품을 물려받지 못하였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인간으로서 참된 길을 걸어가고자 하고, 자녀를 잘 가르치고자 하여 엄격하게 교육을 시키고 본을 보이며, 책임감과 성실성, 청결함 등에 대해 꾸준히 훈련을 시키고 그러한 좋은 성품이 길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이 아이를 둔다면 이 아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이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의 영향을 계속적으로 받으며 자연적 성품이 선하게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원래 온순하고 훌륭한 자연적 성품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거나 부모에게서 양질의 교육을 받아온 사람은 자신은 큰 죄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면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발전하는 것이 굉장히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에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성격이 굽거나 반항적이고 꼬여있지 않아서, 순종하고자 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면 더욱 순종하고자 하고 온전하게 살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좋은 자연적인 성품을 가정교육이나 혹은 학교교육을 통해서도, 성장해서는 자기개혁을 통해서도 제대로 갖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신앙이 들어올 때에는 대체로 엄청난 회심과 함께 감격적으로 주님을 붙드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괜찮은데 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성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안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두 교육을 모두 잘 시켜야 합니다. 오늘 집중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에 이야기할 신령한 성품이지만 자연적인 성품의 교육도 잘 시켜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임감, 성실성, 부지런함,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 등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비록 아이라도 그 행위로 자기 자신의 품성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어느 아이가 아주 신중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 아이의 품성 속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바름과 신중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녀들의 성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교양 있고, 신중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신사적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야 합니다. 물론 신앙은 첫 번째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연적 성품이 아무리 올바르게 잘 길러져 있어도 신앙이 안 들어가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자연적인 성품에 대한 교육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2. 신령한 성품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령한 성품입니다. 신령한 성품은 중생한 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해 다루어지면서 변화된 성품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하나님처럼 순결해지고자 하는 순결한 마음, 하나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랑의 마음, 주님을 닮고자 하는 거룩하고 진실한 마음, 주님을 닮아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희생의 마음, 이런 것들은 모두 자연적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되는 신령한 성품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 아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무리 말을 잘 듣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거듭나지 않았는데 많은 종교적인 의무를 부과해 보십시오. 매일 가정예배 드려야 된다, 하루에 15분 이상씩 무릎 꿇고 기도해야 된다, 성경 5장씩 읽어야 된다, 밥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해야 된다 등의 종교적 의무를 부과한다면 5, 6세 밖에 안 된 아이들도 반발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저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이런 것들을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실 때 새롭게 심어주시는 성품이 바로 신령한 성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품, 거룩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입니다. 이런 성품은 회심하지 않고는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성품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려다 놓고 아무리 슈바이처를 본받아라, 안중근 의사를 본받아라, 빌 게이츠를 본받아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훈계하여도 또 이 아이가 엄청난 감동을 받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한계는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잘 받으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할지 몰라도, 그렇지만 그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회심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III. 회심의 길

그렇다면 회심이 무엇입니까? 회심은 둘로 나뉘는데 넓은 의미의 회심, 좁은 의미의 회심입니다. 좁은 의미의 회심은 고유한 의미의 회심인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고,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도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거스르며 살았기에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 뉘우치게 됩니다. 그 죄에 대한 회개는 한 가지, 한 가지 행동들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불순종과 죄된 행동의 원뿌리를 보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음을 깨달으면서 깊이 뉘우치는 것인데, 이것이 회심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보면서, 그 예수님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이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십자가 아래로 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회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회개와 그리스도 예수를 의뢰하는 믿음입니다. 그런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전폭적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좁은 의미의 회심은 인생에서 구원받을 때 딱 한 번 일어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쏟아놓는 철저한 회개, 피할 바위이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항상 똑같은 정도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 빠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흐려지게 됩니다. 머릿속으로는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이시고 나는 죄인이며 내가 의뢰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남아있기는 하여도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렸을 때 예수님이 사랑해주시고 용서해주신 것을 기억은 하지만, 지금은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죄에 가까워지게 되면 이런 것들이 모두 흐려지게 됩니다. 그 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되면 그것이 다시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인 것과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과 자신이 피할 수 있는 피난처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좁은 의미의 회심이 새롭게 경험됨을 말합니다. 이것을 넓은 의미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다가 뒤로 미끄러질 때가 있는데, 그냥 돌아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항상 회개의 한 지점이 있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대한 뉘우침과 그리스도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생겨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회심을 통하지 않고는 신령한 성품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빛으로 보면 다 똑같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절대로 똑같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도 은혜가 떨어지면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양이 없고, 경우가 없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신앙의 세계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연적인 성품이 망가져서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안 믿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자녀들을 보니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자녀들에게 더 열심히 살아라, 책임감을 가져라,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며 자신들도 그렇게 똑바르게 살며 모본을 보이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자녀들은 잘 다듬어진 사람들이 됩니다. 그렇게 훌륭한 교육을 받고 교육받은 대로 산다면 어디가든지 환영을 받습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편할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고,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상처를 받았어도, 깊은 신앙은 없지만 상식선에서만 살아도 그렇게 형편없이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선행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이 잘 갖추어지고 예의바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다 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잘 다듬어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려고 하는 이 마음은 누그러뜨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자연적인 성품의 변화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절대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절바르고 올바르게 아이를 길렀는데 이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느냐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그것은 회심이 없이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필요합니까?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자녀를 헌신적으로 잘 길렀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만큼 착한 애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회심했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심이야 아직 안했지만 애들이 워낙 착해서…” 그것이 복음입니까? 그렇게 착하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보다 상처받은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여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회심한 사람이 낫습니다.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 하나님께 다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자신의 죄를 뉘우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녀들을 상식을 가지고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거듭나고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회심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자연적인 성품을 개발하는 것은 부모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덕있는 부모를 만나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죄를 미워하는 것,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 그 사람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루시는 사람이 아니면 그 안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교육을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가 아니면 본성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부모가 애쓰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부모의 힘으로 그를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적인 성품은 부모가 교육을 통해서 더 좋은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지만 신령한 성품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IV. 결론과 적용

그래서 부모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회심의 길을 위해서 말입니다. 첫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기도가 부족해서 자녀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한 기도의 힘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들이 강퍅해서 회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회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교역자들이 사랑해 주지 않아서 회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면승부를 해야 합니다. 자녀의 회심을 위해 일평생 3일 금식 기도를 해보신 분이 계십니까? 사업의 위기 때문에 금식기도 하는 분은 많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회심을 위해 그렇게 해보셨습니까? 자녀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다 밤을 새어보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그런 적이 없으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회가 있는 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얘야,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빠는 너에게 아무 소원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다. 네가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빠의 꿈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단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틈 날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가 본을 보이는 것도 포함됩니다. 부모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알아가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음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신앙이 기쁨이 되어야지 스트레스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네가 순종할 때만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너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사랑해줍니다. 아이가 침체에 빠질 때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꼭 지켜주실 거야. 그 대신 너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왜냐하면 너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또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단다.” 그렇게 많이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할 때뿐만 아니라 침체에 빠졌을 때에도, 내가 회심하지 못한 때에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 사랑이 어디서 왔을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구나!’ 하고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회심과 신앙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르치며, 뜨겁게 사랑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안겨주어 “전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일 큰 선물이 저의 부모님을 만난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처럼 저를 위해 기도하고, 저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저를 사랑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고 제가 은혜 가운데 살기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라는 자녀의 고백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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