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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민 14: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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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민 14:24~30)

4주를 연속해서 시리즈로 설교를 해왔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꿈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믿음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주로서 말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설교자는 늘 설교를 하고나서 부담을 가집니다. 그 많은 설교 중에 어떤 경우는 설교하고 나면 오늘은 아무리 봐도 죽 쑨 것 같습니다. 설교 준비도 잘 못했고, 준비하는데 방해꾼도 생겼고, 교인들의 반응도 별로인 것 같고, 환경도 도와주지 않고, 어느 날은 마이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교를 망쳤다고 생각이 들어 우울합니다. 대게 주일날 1부, 2부, 3부, 4부, 오후예배까지 마치면 목사는 좀 섭섭하기도 하면서 부담감이 듭니다. 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일 오후인데 마음이 우울합니다. 밥을 먹어도 밥맛이 없고, 텔레비전을 봐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비관도 옵니다. “나는 설교자가 안 될 사람이 설교자가 되었나보다. 설교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 설교자가 되어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까?” 그렇게 마음에 낙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녁에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설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무래도 설교 죽 쑨 것 같아!” 아내가 “여보! 오늘 설교 들어보니 괜찮던데. 처음 교회 오신 분인데 당신 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던데”라고 위로하려고 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을 합니다. “어! 그래! 그것이 사실이야!” 그 말 한 마디에 우울한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뭐 먹을 것 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아침에 던진 한 마디가 하루를 즐겁게 만들 수도 있고, 아침에 던져진 한 마디가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만나면 어떤 분은 꼭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어디 아프세요? 병색이 있는 것 같아요. 어제 잠을 못 주무셨나요?” 그 말을 들으면 안 아프다가도 아파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인사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 활력이 넘쳐 좋아 보입니다. 저는 목사님 얼굴만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목사님 너무 건강해 보여 너무 좋습니다. 넥타이도 너무 근사한데요.” 그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말도 상대를 축복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때때로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갈등을 겪는 분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말 한 두 마디 합니다. 그 말한 두 마디가 폐부에 깊숙이 들어가서 심장에 꽂혀진 것입니다. 그것이 잊히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갈등하며 미워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말 때문에 일어난 한 비극적인 역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 가까이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데스바네아라는 장소입니다. 모세는 이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파송을 합니다. 너희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살피고 돌아와서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열두 명이 40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보고하는데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매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좋은 보고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 좋은 것도 좋은 이야기로 바꾸어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땅에 가니 너무너무 좋습니다. 포도송이가 너무 커서 두 사람이 매고 올 정도로 곡식이 풍부합니다. 농사가 잘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을 능히 차지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밥입니다. 올라가서 정복합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열 명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그 성읍은 얼마나 견고한지 우리는 그들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낙자손의 후손입니다. 키가 얼마나 큰지 장대 같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악평했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폄하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빨리 퍼집니다. 누구를 칭찬하는 말보다는 누구를 헐뜯는 말이 더 빨리 번져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론과 모세를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이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저들의 칼에 죽게 하려는 것인지 우리 처자가 다 사로 잡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이 들으셨을까요? 못 들었을까요? 들으셨습니다. 오늘 성경 27절은 “나를 원망하는 이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듣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생에 하는 소리를 듣고 기억하신다면 결과가 어찌될까요? 28절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걸고 맹세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할 것이다.” 입니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이 갚아 주었습니다. 20세 이상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시체가 되었습니다. 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릴 때 그것대로 내가 값아 줄 것이다. 내가 행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 한마디를 해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말은 어찌 보면 무서운 것입니다.

매트 버드라는 의학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0여년간 봉사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정리하면 쓴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일생동안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어 집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 20년 동안 교수로 봉직한 의학박사의 결론이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쏟아지는 말이 곧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매트 버드는 언어 치료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남긴 사람입니다. 언어 치료학은 언어를 통해서 의학 분야에서 치료의 효과를 가져 오는 연구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에는 파괴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말은 무서운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게도 하고 살리게도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깊은 심장 속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상처를 치료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누에고치를 보십시오. 누에고치는 입에서 나오는 실로 자기 집, 자기 고치를 지어갑니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자기 집을 지어 그곳에 삽니다. 오늘 우리들은 무언가 부정적인 말을 하던 긍정적인 말을 하던, 말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의 말을 하면 행복한 집을 지을 것이고, 성공적인 말을 하면 성공적인 집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의 말을 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결국은 내 인생을 저주와 불행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말은 이와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잠언 6:2에 보면 “내입에 말로 내가 얽혔으며 내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말이 내 인생을 얽어맨다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을 일만 번 동안 반복해서 말한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말은 파괴적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혀는 불이다.”라고 말합니다. 혀는 불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 잘못해서 가정이 파탄 나고, 한 집을 불태웁니다. 어제 신문에 사위와 장모가 말다툼하다가 말이 좀 지나쳤나봅니다. 사위가 화가 나서 집에다 불을 놓았습니다. 장모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죽었습니다. 사위도 죽고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그 말 한마디 파괴적인 말이 인생을 파괴시키고 한 가정을 붕괴시켰습니다. 말은 무서운 것입니다. 말을 잘 쓰면 대단히 유익하지만 잘 못쓰면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움베르트 마트라 라는 신경과학자는 이렇게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 말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간다는 뜻입니다. 말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해 간다는 뜻입니다. 근세 신경과학계의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가 있다면 뇌 속에 언어 중추신경이 모든 전신의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 신경이 모든 신경의 우위에 있어서 그 언어 신경이 모든 신경의 지배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건강한 사람도 의사가 잘못알고 다른 사람의 검사 결과를 보고 “당신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입맛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잠도 안 오고 결국 그렇게 앓다가 죽어버립니다. 그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치기 어려운 병도 의사가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며 함께 협조를 구할 때 그 사람은 회복될 가능성을 훨씬 더 가지게 됩니다. 예전부터 우리가 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서 위약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오면 의사가 밀가루를 반죽해서 주면서 이것 먹으면 특효약이니 이것 먹으면 두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그 중에 40%는 깨끗이 두통이 사라집니다. 밀가루를 먹어도 병이 낫는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40%가 그런 효과를 봅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낫는 것은 약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얻어 우리 몸에 건강의 청신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우리의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호세 라마라는 1990년대 유명한 야구선수 투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새로운 야구장을 짓고 나서 그곳에 처음으로 둘러보다가 그는 좌측담장이 좀 짧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불평하며 투구를 했습니다. “젠장! 이런 곳에서 재대로 던지기는 걸렀구나!”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부정적인 말에 얽혀서 그 해에 그는 최악의 투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해에는 20승의 투수였지만 그해에는 연속 16패 투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씨앗과도 같다고 합니다. 심으면 심는 데로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처럼 부정적인 말을 심으면 부정적인 결과를 거둡니다. 성공적인 말을 심고 믿음의 말을 심으면 믿음의 삶, 성고의 삶을 거둡니다. 씨앗과 같습니다.

또한 말은 배의 방향키와 같습니다. 큰 배에도 작은 키가 있어서 그 키가 방향을 결정하듯이 세치도 안 되는 우리의 작은 혀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말하고 축복으로 말하면 축복의 삶 긍정의 삶이 되지만 “내 인생은 틀렸어! 나를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나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될 것이야!”라고 말하면 그대로 됩니다. 여러분 내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여러분 축복의 말을 선언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이 산들로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 말하는 대로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와 같이 중요합니다. 내가 말하고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세계에서 의심의 말, 불신의 말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작은 일에도 불평하고 저주하고 원망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역사의 방해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사가랴 라는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는 너무 나이가 늙어서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너희 가정에 아기가 생길 것이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사가랴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일을 어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아기를 낳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의심과 불신을 어떻게 막으시는 줄 아시죠? 그가 벙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누가복음 1장 20절을 보니 “보라 이일에 되는 날까지 내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말, 불평과 원망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벙어리로 만드셨습니다. 아기를 출생하는 날 그는 다시 입이 풀려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와서 쉽니다. 둘째 날 또 한 바퀴, 셋째 날 또 한 바퀴 불평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깁니다. 더운데 이것이 뭐 장난도 아니고 칼을 돌고 싸우던지 이것이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불평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 무서운 것입니다.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새워줄 때 그곳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앞에서 끌고 가도 뒤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저주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반감하는 것입니다. 한사람도 불평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이것 뭐하는 짓이야 돈다고 성이 무너지나?”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그러기에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의심의 말, 불신의 말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이왕이면 축복의 말,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무엇입니까? “아들아! 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나는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 너무 좋아!” 이렇게 말한다면 자녀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야 이놈아! 네가 도대체 잘 하는 것이 뭐가 있느냐?” 라고 말하면 자녀의 의욕을 꺾고 그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아빠! 나는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해요. 엄마 너무 너무 사랑해요!” 그러면 부모들도 신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들은 “나를 낳은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아빠가 나를 낳고 해준 것이 뭐가 있어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말은 상처가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세워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이 언젠가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손자들이 있는데 한 손자가 가만히 들어보니 학교에서 문제아였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덩치도 좋고 하니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힘도 To서 아이들과 잘 싸우기도 하니 선생님이 엄마 아빠를 자주 부르는 것입니다.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던 것입니다. 집에 와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장로님에 마음에 작심을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 다녀 올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뭐든지 칭찬할 거리를 찾아서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참 잘했구나!” 그리고 칭찬할 때마다 돈을 천 원씩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열심입니다. 칭찬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놀던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숙제를 하니 또 칭찬해주었습니다. 잘 했습니다. 칭찬을 받으니 또 칭찬을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니 끝에 있던 아이가 나중에는 일등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칭찬 몇 달 만에 아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칭찬은 이와 같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목사님! 뭐 칭찬할 거리가 있어야지 칭찬하지요?” 밥만 잘 먹어도 칭찬하십시오. “이야! 너는 밥을 이렇게 잘 먹네! 난 밥 먹는 네가 최고로 좋더라.” 칭찬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이야기 합니다. “아! 이놈의 자식! 공부도 못하는 것이 처먹기만 하고” 밥 잘 먹어도 칭찬해 주십시오. 우리가 어릴 때 텔레비전에 이런 광고문구가 있었습니다. “장난꾸러기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얼마나 좋습니까? 칭찬할 때 고래도 춤을 추는 것입니다.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칭찬하면 그의 마음을 열고 그를  변화시킵니다. 다이나마이트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말을 하면 우리도 행복해 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허리가 좀 뻐근하고 우울하더라도 거울을 보고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웃어보세요. 그러면 하루가 행복해 집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즐거워” 그러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우울해! 왜 이렇게 우울한지 몰라! 나는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비극적으로 죽고 말겠지” 이런 말만 한다면 우울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인 시인은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의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이 새롭게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것을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그렇습니다. 말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입술에 능력 있는 말을 선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능력 있는 말은 먼저 시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세요.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를 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예가 있다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네가 수태하여 예수님을 낳을 것이라고 말할 때 마리아가 "말씀대로 내가 이루어 지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시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아멘으로 시인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아멘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바람 건강법 황수관 박사님이 말하는 만병통치약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치는 약이 있는데 그것이 ‘아멘’ 약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시인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아멘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멘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분은 “정말 저런가?”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혹시 내 마음에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지라도 입으로 아멘 하면 그것이 믿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말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마음을 쫒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아멘 할 때 오는 효과입니다. 그래서 아멘 잘하는 교인들은 활기가 넘치고 부흥합니다. 아멘 잘하는 교회는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안하는 교인들은 졸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일산에 어떤 목사님이 개척을 했는데 상가 전세로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상가 주인이 돈을
꾸었는지 상가가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와서 “목사님 우리 큰일 났습니다. 만약 경매에 넘어가면 우리 전세금도 못 받고 쫓겨나게 됩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겁니다.”라고 말하고 방에서 로마서 8장 28절을 펴놓고 그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아멘” 하고는 반복적으로 그 말씀으로 읽고 아멘으로 시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일 지났는데 그 경매가 무산되고 그 교회가 그 상가를 아주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던지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선하게 이끌어 가실 것을 믿고 아멘으로 시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시인 합니다.

여러분! 선포하는 말이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침에 일어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말씀을 선포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그 말씀대로 하루를 살아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루의 삶을 향해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축복을 준비하고 계셔!” “오늘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기적을 행하실거야!” 믿음으로 선포할 때 능력이 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어려운 장애가 올 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여서 그 장애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마치 풍랑을 향해서 명령하실 때 풍랑이 잔잔해진 것처럼 여러분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질병은 떠나갈 지어다.” “풍랑은 잔잔해 질지어다.” “사탄은 물러갈 지어다.”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인간에게 놀라운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함으로 우리는 그 모든 권세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권세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에는 권세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선포할 때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낙심과 절망이 찾아올 때 절망을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낙심을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낙심은 떠나갈 지어다.” “절망은 떠나갈 지어다.” 말은 생명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립니다. 말은 육체를 다스립니다. 말에는 영적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 신비한 능력을 안다면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암송하는 자는 삶의 활력과 기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선포할 때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갚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선한 말을 하십시오. 축복의 말, 성공의 말, 은혜의 말, 격려의 말을 하심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워 지고 성공적인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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