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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음악듣기(듣는 마음) (약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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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야고보서 1:22-25
제목: 하나님의 음악듣기 (듣는 마음)

고난 주간에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책 <예수님처럼>가운데서   

1.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는 한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대화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도 안하고 지낸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언제나 대화가 있습니다. 나는 말하고 상대방은 얘기를 들어줍니다. 또 상대방이 얘기할 때 나는 들어줍니다. 그렇게 얘기하다보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합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에 집사람과 연애할 때 저는 토요일이면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아서 저녁밥을 굶은 한이 있어도 꼭 사는 것이 있었는데 공중 전화카드였습니다. 저는 서울에, 집사람은 광주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전화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왜 5000원 권 전화카드는 그렇게 빨리 닳아지는 지...우리는 전화로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때는 공중전화로 노래도 불러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미친 짓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되지만 그때는 정말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이야기는 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 얘기는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향해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역시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의 말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일 때 어떤 언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크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신다? 이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든지 없든지 그 분이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분을 향해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 예수님은 씨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4가지 밭이 등장합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밭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4가지 밭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맥스 루케이도는 이 4가지 밭을 4가지 귀라고 해석했는데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밭은 씨앗을 받아들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귀 역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귀와 땅을 연결해 놓았습니다.

  이 비유를 유의해서 보십시오. 4가지 경우에 씨는 모두 같습니다. 뿌리는 농부도 똑같습니다. 말씀이나 말씀을 전달하는 자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듣는 자가 다르고, 듣는 마음이 다르고, 듣는 귀가 다를 뿐입니다. 이 비유에서 비율로 따지자면 세상의 모든 사람의 4분의 3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가슴, 피상적인 삶, 불안한 마음, 이유야 어디에 있든지 우리 중 75%는 말씀을 놓치고 맙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들리지 않으면 이비인후과에 가셔서 청력 검사를 해 볼 텐데 우리의 영적인 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얼마나 잘 듣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주님께 얼마만큼의 시간을 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분산되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떼어서 그 분께 드렸습니까?

  예수님의 모습을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참 애썼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까요? 예수님은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늘 얘기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었고, 기도할 때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의 모습도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달라고 달라고, 어린 아이처럼 안주면 안 된다고 보채고 생짜부리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는 기도의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는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나의 소원을 그 분 앞에서 토해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하나님께 내맡기는 헌신의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돕고 희망을 주는 쪽으로 깨어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 속에 자기의 소원을 채워 넣은 것이 아니라 기도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서 아버지와 대화하며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로 들어갔습니다. 기름을 짜는 동산처럼 우리 주님은 거기에서 영혼을 아버지께 내려놓고 영혼을 짜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의 영혼에서 기름이 나옵니다. 바로 그것은 주님이 토하는 신음소리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것은 영혼이 으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기도하는 동안 아버지의 음성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저는 예수님께서 엎드려 기도하는 동안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네가 죽는 것이 나의 뜻이다. 아무리 치욕스럽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십자가에 죽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은 떨리고, 아버지의 눈에는 피눈물이 맺혔을 것입니다. 자신의 엎드림 앞에서 뒤돌아서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을까요? 저는 알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그 아들도 분명히 확신했다고 믿습니다. 주님은 기도의 시간에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성경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책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 모든 것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좋은 책을 읽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친구와 얘기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저녁에 지는 저녁노을을 보다가 노을 속에 새겨놓은 하나님의 필체를 깨닫기도 합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잘, 가장 정확히, 가장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무시하고서 하나님의 음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성경을 통해서 계속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특별 계시라고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속 시원하게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는 그 음성 듣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를 따라가며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는 기도하는데 갑자기 내 귀에 크게 “이렇게 해라.”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갈급해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쩌면 이런 방법을 원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얘야! 너 거기서 뭐하니? 성경을 읽어보렴. 거기에 나는 나의 뜻을, 나의 음성을 기록해 두었단다.”

  예수님을 봅시다.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과 꾸준한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도 꾸준히 시간을 들이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무엇으로 말씀을 물리치셨나요? 세 번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세 차례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그 분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능통했고, 성경을 암송했고, 성경을 마음에 품고 계셨고, 성경을 생활에 적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성경구절을 몇 개나 암송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성경구절을 쉽게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실질적 적용이 가능할 정도로 성경의 대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얼마나 잘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귓가에 들려주시는 아름다운 음악과도 같은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지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나요? 기도하셨고,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되려면 병원에 입원해서 특별한 백신주사를 맞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셨던 방법대로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습관을 쫓아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성경을 읽겠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안 듣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내 습관을 예수님의 습관처럼 만들어가려면 나의 습관을 죽이고 예수님의 습관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습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잠자리에 드는 저녁이든 우리는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장소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펼치고 성경을 읽기 전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을 찾아 성경을 읽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찾으며 읽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깊이 있게 읽으려고 노력하십시오. 성경을 읽다가 어떤 한 구절이 여러분의 마음에 부딪쳐올 때 그 구절을 묵상하십시오. 그 구절을 공책이나 메모지에 옮겨 적고 몇 번이고 다시 읽으십시오.,

  셋째는 “듣는 마음”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지난 번 노인대학에서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강의를 하셨는데 보청기를 해도 잘 안 들리면 그냥 맘 편하게 사시라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늙어가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저는 하나님의 큰 축복이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리 다 듣고 산다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세상의 소리를 들으려하지 말고 이제는 내 심령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라고 우리의 육신의 귀를 점점 어둡게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는 목사님을 통해서 설교를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여러분의 애인을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저를 경찰서에 쳐 넣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결혼해 드릴까요? 그렇게 하면 저를 지구 끝까지 따라와서 괴롭힐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나의 직접 경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부모나 목사나 소그룹인도자와 같은 대리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고 싶은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3.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내 자신을 소유할 기회를 드린다는 점입니다. 내가 좀 더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하는 이 훈련을 하는 동안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내 자신을 소유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까? 그러면 그 분의 말씀을 듣는 데 시간을 내십시오. 그 날의 교훈을 받을 때까지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내 삶에 적용하십시오.

2.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큰 또 한 가지 이유는 이것을 삶에 적용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말씀을 들은 다음 그렇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는 것에서 그치는 사람은 거울을 보고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는 사람이지만 듣고 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늘 기억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들음의 종착지는 행하는 것이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캠페인 때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게 되어있다.” 내가 그토록 크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품고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에서 행함이 없는 무변화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내 안에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행함입니다. 십자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십자가를 잉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갈보리 언덕에서 해산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음성을 듣고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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