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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자유인 (갈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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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돈 몇 십만 원이면 전화 한 통화로 국내외 유명 대학의 졸업장을 가짜로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실력보다는 간판을 따지는 우리나라 사회풍조로 인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허위로 학력을 부풀려 활동 해 왔던 이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마음속의 큰 부담감으로 눌려있었을 것입니다. 학력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만 나와도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도 이와 같이 눌리거나 걸려있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참 자유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 안에 완전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완전히 누리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논리에 속아 율법적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영적인 해방과 참 자유함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자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이 말씀은 바울이 지금까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신학적으로 때로는 영적 아버지의 입장에서 강조했던 메시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참 자유함을 빼앗기지 말고 온전히 누리라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죄와 사망, 사단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즉 ‘영적인 자유’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죄인 된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빠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원죄-창세기 3장 사건이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 창세기 3장 사건 이후 하나님의 자녀에서 마귀의 자식으로 신분이 바뀌었고 마귀 종노릇하며 영적인 문제 속에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는 처참한 운명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저주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이렇게 멸망 길로 가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이런 저주받은 운명에서 해방되는 길은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범죄자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서로 용서해 준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절대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죄 사함입니다.

이 죄 사함의 축복은 우리의 과거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짓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짓게 될 모든 죄까지 다 해결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죄와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자유는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도 바울은 ‘이 자유를 굳건하게 서서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영적인 참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 이후를 보면 믿음을 통한 구원, 구원을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유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할례 문제를 거론하며 구원의 축복을 훼손시키려 합니다. 할례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를 마치 구원의 조건인양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영적 진리가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만듭니다. 서론에 눈이 팔리면 본론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바울이 안타까워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길만이 참 길이며, 이 길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더 이상 율법의 굴레에서 메어있지 말고 참 자유함을 누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이 자유를 누릴 때 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와 저주, 사단과 멸망, 사주팔자 운명에서 완전 해방된 참 자유인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설령 실수하고 넘어졌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자유를 완전히 누리는 참자유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숙한 자유 인생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 5:13~1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자유함을 얻은 뒤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부분을 언급한 말씀입니다. 그 핵심은 복음으로 Oneness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잘못 해석하여 육체의 기회로 삼거나 방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인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는 종노릇하기 위한 자유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해놓고 이제는 다시 종노릇을 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하라’는 것은 섬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만남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선입견, 편견, 상처, 분노, 질투 등을 모두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과거 문제로부터 완전 해방된 성숙한 자유 인생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성경학자 디한이 아래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하였습니다.

“한 젊은 부자가 하녀를 고용했다. 처음에는 이 하녀가 고용계약에 따라 의무적으로 주인을 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주인과 하녀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되었고 마침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하녀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하녀는 더 이상 고용계약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 여인은 과거 하녀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자신의 남편을 섬기며 헌신했다.”

이 여인은 왜 이렇게 더 큰 섬김의 모습을 보였을까요? 계약에 의해 고용된 하녀가 아니라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종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교회공동체에 풍성히 넘치게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 지역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서로를 살리는 복음공동체의 모습을 보이며 성숙한 자유 인생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미국 워싱턴 DC 근교의 한국전쟁기념관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된 것도 여러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져있습니다. 이 자유함의 축복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희생을 통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자유함의 축복을 놓치는 순간 평안과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자유함의 축복을 완벽하게 누릴 수 있을까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이 말씀이 바로 답입니다.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 말씀을 뜻합니다. 더 세밀히 말하자면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게 체험하면 할수록 참 자유함을 축복을 더 깊이 누리게 됩니다. 강단 말씀과 각종 훈련을 통해 그리고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이 축복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밝힌바 같이 우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존재’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만 이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참 자유인으로서 현장을 살려내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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