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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수가 성 (요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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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수가 성 (요 4:3-19)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명력이라는 말을 하는데 살아가려는 의지 혹은 노력을 생명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는"살기 싫다."는 말을 잘합니다. 생명력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명력 낮아지는 경우가 몆 가지 있습니다. 언제냐 하면 먼저는 극한 수치심을 느낄 때입니다. 즉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그럴 때 뭐라고 말합니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도 싶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밌습니다. 왜 사람이 하필이면 쥐구멍에를 들어갑니까? 그만큼 수치심과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인간이하의 감정을 느끼게 하며 쥐구멍에라도 들어 갈 만큼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런 초라한 인간이 되더라 그 말입니다. 그런 형편에 있을 때 인간의 생명력이 아주 바닥에 깔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무엇이냐 하면 무기력증입니다."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내가 해 봤댔자 안 된다"하고 늘 포기하는 무기력증이 사람의 생명력을 떨어뜨립니다.

그 다음 인간의 감정 가운데 슬픔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슬픈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극복할 만한 용기가 없어서 슬픔을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큰 슬픔이 밀려옵니다. 주체 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제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대로 슬퍼 할 뿐입니다. 그래서 쏟을 수 있는 만큼의 눈물을 다 쏟았습니다. 그토록 슬퍼 할 때에 인간은 에너지가 바닥이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두려움입니다. 이기지 못하는 환경, 지배할 능력을 잃어서 그 환경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두운 것을 아주 무서워합니다.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불을 켜 놓았을 때는 무슨 일이든지 다하다가도 잠자리에 들 때는 불을 끄지 말 것을 원합니다. 왜 그럽니까? 어두움이라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신으로서는 그 환경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사람이란 정신력도 함께 약해지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잡니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도 이렇게 에너지가 고갈되게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론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에 놓일 수 있지만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에너지지수가 아주 땅에 떨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생명력이 회복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철저하게 이 경우에 처한 한 여인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게 되었는데 우물가에서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을 정도로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였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을 예수님께서 만나서 물을 얻어 마시고 상당히 긴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당시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남으로 삶을 바꾸어 주었고 그 지긋지긋하나 감히 벗어 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과거로부터 이 여인은 마치 새로운 샘을 얻은 것과 같은 새로운 삶으로의 출발이 있었다는 사건의 내용인데 바로 이 여인에게 오늘 주님을 만난 본문의 수가 성이라는 장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생의 정점으로 기억 되는 곳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과 주님을 만난 후의 수가 성은 이 여인에게 그 의미가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 수가성에 서 있는 심정으로 말씀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기 전 이 여인에게 수가 성은 말 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과 양심에 가책을 가져다주는 영적인 고통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이 여인에게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고독입니다. 얼마나 고독했습니까? 여섯 번째 살고 있는 남자, 보나마나 뻔한 사람입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의지하는 것이지 언제 또 헤어질지 모르는 남자입니다. 마음이 갈 리도 없습니다. 얼마나 삭막한 관계입니까? 잠을 자다가도 깨어 일어나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다섯 명의 전 남편들도 남이 되었고 지금 사는 남편도 말이 남편이지 마음하나 묻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기의 그러한 생활이 마을에 다 알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 두문불출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물 긷는 것을 피해서 그 뜨거운 정오에,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때를 택해서 훔치듯 물을 길어 오는 생활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독한 생활입니까?

현대인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 고독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많은데도 고독합니다. 마음을 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실제로 부부라고는 하나 오랫동안 외롭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한 육신은 같이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외로움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로 살지만 사랑이 없으면 분명히 외로운 시대입니다. 매일 얼굴 맞대고 살지만 사랑 받지 못하면 고독한 것입니다.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처참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면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은"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살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여인은 그런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이라고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여섯 번째 남자랑 살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사랑 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독의 현장이 수가 성입니다. 오늘 사람은 많으나 여전히 외로운 현대인의 고독이 있는 이곳이 수가 성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자를 만납니다. 우물가에서 이 여자에게 말합니다."물 좀 달라."그런데 이 여자 보세요. 아주 반항적입니다."유대 남자가 되어서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왜 물 달라고 합니까?"참 인심도 박하다 생각할 정도로 쏘아붙입니다. 그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한이 있고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또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도 갈망도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사 짜증스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야곱의 우물을 최고의 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은 물이기에 그럴 만도 합니다. 이 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너는 지금 이 우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러나 이 물은 마셔도 곧 다시 목마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다. 계속 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어쩌면 이정도면 됐다고 안주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의 믿음이 필요 없다고 스스로 자평합니다. 이 정도의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더 이상의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앙의 성장을 거부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이 여인이 머물고 있는 수가 성의 우물가와 같은 것입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생각해 것은"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너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여자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암시입니다. 그런 주님 앞에서 이 여인은 결사적으로 자기의 죄를 가려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 남편이 없는 것이 맞지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부분적인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가 정욕에 따라 지금까지 방탕하게 살아 온 것을 아십니다. 보세요. 남편이 몇 명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니까 이 얼마나 놀라만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부분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를 안 나올 때도 물으면"좀 피곤했습니다."그럽니다. 그러면서도 왜 피곤한 지는 말 안합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밤새우면서 도박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와서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약간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가리려거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이 여자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말씀이 정말 지금까지 살았던 남자들을 모조리 데리고 오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도덕적 타락과 그로 인한 이 여인의 처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과 이 죄악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그전까지는 물을 달라 할 때에 두레박도 없고 우물도 깊어서 어쩌고저쩌고...삐딱하게 쳐다보면서 다소 반항적이고 퉁명스럽던 여인이 예수님의 이 말씀에 항복합니다. 19절이죠."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인정하고 맙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깊은 여자요, 이걸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란 때로는 정말 물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이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애당초 하나님의 뜻과는 다릅니다. 원하던 집을 사야하고 직장을 구해야하고 자식을 잘 낳는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삼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우물이 깊고 물길을 그릇은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믿음이 시험 받고 실망하고 떠납니다. 그래서 일단을 두레박을 빌려 와서라도 물을 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급한 대로 형식처럼 신앙생활하고 누가 물으면 교회 잘 다닌다고 둘러대고 아니면 집안만 잘 되고 사업만 잘 된다면 아무 종교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두레박을 빌려다가 우선 살기 위해서 물을 긷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 이제 보십시오. 오늘 본문 뒤의 이야깁니다만 이런 여인을 예수님이 직접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 더 이상 이 여인에게는 조금 전까지의 실망과 좌절과 포기의 수가 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내 비밀을 다 아는 분입니다. 그에게 마음을 다 열었습니다. 나의 모든 허물을 알고도 나를 대해주신 분입니다.

여러분, 죄 사함의 기쁨, 선택의 기쁨, 은혜 받은 자의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게 될 때 모든 부끄러움과 모든 콤플렉스를 다 물리 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이 여인이 보여주는 특별히 감격스러운 것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 일입니다.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괴롭히던 바로 그 사람들은 찾아가서 전도합니다. 관계가 완전히 바뀝니다. 전에 만나기 싫어하던 사람들을 오늘 일부러 찾아갑니다. 참으로 멋있는 광경이 아닙니까? 사람이 변화가 되면 끝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진정한 생수를 발견한 여인에게 더 이상 물동이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 물동이는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한 여인의 삶이었습니다. 영생과는 전혀 관계없이 걱정과 근심과 부끄러움을 날마다 담아 나르던 통이었습니다. 이제 이 물동이는 필요가 없어 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를 입기 전에 전적으로 의지 하고 살았던 우리의 물동이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리고 나면 난리가 나는 줄 알고 있는 물동이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 때에 우리에게도 생수가 솟는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아직도 이 시대의 수가 성에 주님을 만나기 전에 들고 다녔던, 은혜를 입기 전에 의지 했던 그 물동이가 뒹굴러 다니고 있다면 슬픈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마치 수가 성과도 같습니다. 숱한 고통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씻을 수 없는 과거와 회복 할 수 없는 인간관계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우리의 죄 된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를 홀로 있게 아니 하시고 친히 날마다 찾아오시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더 이상 어떤 이유로도 변화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앞에 말 못할 현실의 수가 성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므로 진정한 생수가 샘솟는 수가 성, 날마다 새 삶이 시작되는 여러분의 수가 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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