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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렘 1:4-10, 히 12:18-29, 눅 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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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렘 1:4-10, 히 12:18-29, 눅 13:10-17)

1.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가 쓴 두 권의 시리즈로 된 책이 있는데 한 권은 「나와 하나님」이요 다른 한 권은 「우리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 두 권의 책 제목만 보고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이분이 이 두 권의 책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나 개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 즉 공동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니 좋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고 그 갈비뼈를 하나 빼어서 흙으로 채우시고는 해와를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되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 것은 인간을 제대로 표현한 한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인간창조에 관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서로간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도록 지으심을 받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이 관계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이어서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 서로간의 담도 허물어 주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도 약속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창조 때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졌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태초에 아담의 옆구리 갈비뼈로 해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 주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쏟게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웃도 제대로 만나게 됩니다. 여기 교회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아담이 마취되고 갈비뼈 하나가 빠지게 되는 대 수술을 통하여 하와가 존재하게 되고 가정이라고 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는 엄청난 희생을 통하여 교회라고 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가분리의 관계 때문에 하나님은 단지 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요한 웨슬레가 한번은 기성 교회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서 산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하나님과만 교제하기를 원하여 천막을 치고 거기 은둔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고독한 종교를 모르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이한 체험을 통하여 크게 깨달은 웨슬레는 다시 하산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저 유명한 감리교의 창설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잠시 얼굴을 돌려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분도 지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그분을 위하여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의 몸을 성전 삼으신 성령께서 그도 성전 삼으셨습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분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이웃의 얼굴이 새롭게 보여 질 것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명실 공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서야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2.  오늘 구약 본문은 유명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오 또한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지었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막연하게 하늘을 지으시고, 다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고백합니까? 그래서 그것을 믿어서 무엇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과 진화를 믿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는 사실은 그 이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바로 나를 창조하신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나는 절대로 실수로 태어난 저주받은 인생이 아닙니다. 우연히 생겨난 운명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계획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최선을 다하여 지으신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렘 29:12에서 “너희를 위한 나의 계획을 내가 알고 있으니....희망이 넘치는 미래를 주려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와 지구의 부요함과 오묘함을 다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신비함도 다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하여 사도 바울은 감탄해서 말하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분이 말했듯이 내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해도 기적 중의 기적이요 그러므로 충분히 감사해야할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데 힘이 드십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속이 상하십니까? 때로는 삶 그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사도 신경의 첫 부분을 암송하고 명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구시라고 합니까?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요 3:16에는 그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30에는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이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옛날에 야곱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단지 목숨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도망가다가 캄캄한 밤중에 벧엘 들판에서 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다시 너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깜짝 놀라 잠이 깨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체험 때문에 야곱은 승리하였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야곱의 하나님, 아니 예레미야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 즉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요 1:12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이름”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마 1:21에 보면 천사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빌립보서에는 예수의 이름이야말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롬 10: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 성가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맨 처음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래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 받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처음에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일체가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나와 예수님은 운명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롬 5: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기 전에, 아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십자가위에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성취하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라고 한 말씀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정말 나를 위하신 하나님의 계획, “희망찬 미래”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 그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그 희망찬 미래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될 줄 믿습니다.

(3)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했습니다. 

    행 1:8의 말씀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바로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신 말씀의 신약적인 해석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의 설교 제목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까? 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만세전에 나를 계획하셨습니까? 왜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왜 성령께서는 나를 성별해 주셨습니까? 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성령의 은사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을 주신 뜻이 아닙니다. 이것만이 은사를 주신 뜻이 아닙니다.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를 사명자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면 혼자 예수님과 그 은혜를 즐기기만 하는 종교적 소비주의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단지 그 말씀뿐입니까? “너는 복이 되어라.” 다시 말하면 “복덩이가 되어라.” “복의 근원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고, 복의 전파자가 되고, 복의 매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들은 버림 받았습니다. 우리도 저 버림받은 유대인의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렵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옛날 모세의 율법을 범한자도 가차 없이 벌을 받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어떻게 그 벌을 피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태워버리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자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예수께서 18년 동안이나 귀신들려 꼬부라져 살던 사람을 고쳐주시므로 남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드셨듯이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도 역시 자기를 벗어나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새 피조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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