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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모두 승리합시다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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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승리합시다 (출 17:8-16)

오늘의 사건은 시내산 서북쪽 20km지점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인 르비딤이라고 하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광야에 들어와서 첫 번째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오아시스 지역인 르비딤에 장막을 쳤는데 물이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전에는 오아시스였었는데 샘과 개울이 고갈된 지역인가 봅니다. 먹을 물이 없다고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므리바 사건이라고 합니다.(민 33:12-14)

우리는 이 백성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모세를 원망하는 과거의 정도가 아니라 (14:12,13,15:24,16:2,3) 이제는 모세와 다투기까지 합니다.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사실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모세를 곤경에 처하도록 합니다. 어떻게 모세 혼자서 그 책임을 다 질수가 있겠습니까? 공동체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서로 힘을 합하여 그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족한 힘이나마 보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뒤에서 원망이나 하고, 비방이나 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며 인격적인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함께 힘을 합해서 노력해 보다가 그래도 안 되겠거든 하나님께라도 호소하여야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한 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격을 드러낸 것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원망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그들의 눈으로 보지 아니했습니까? 광야 행진 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장에 서셔서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시지 아니하셨습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역사를 눈으로 보지 아니했습니까? 바로의 추격을 받을 때에 넘실거리는 홍해바다를 두 쪽으로 쫙 갈라놓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 땅과 같이 바다를 건넜지 않습니까?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지를 않나(출15:22-27), 신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라고 하는 특별한 양식을 공급받고(출16장), 반석에서 생수를 충분히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좀 어려운 일이 생겼어도 어떻게 해야 신자답겠습니까?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 속에 살았는데, 지금 우리가, 어려움에 빠졌다면,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실 거야!”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니,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여기에 계신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1. 여기 르비딤에서 생긴 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르비딤에서 이 난리를 치룬 후에 아말렉이라는 부족이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총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말입니다. 출17:8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사실 이스라엘은 군대나 군사들이 아닙니다. 애굽에 살 때에 종노릇하고 주인이 시키는 것을 거의 수동적으로 움직였던 종일뿐입니다. 제식훈련을 받아 본 일도 없고, 전쟁에 나가서 싸워본 일도 없고, 전술전략은 더더군다나 할 줄도,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 아말렉이라는 말은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하는 사막 골짜기의 부족들’이라는 말입니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로, 첩의 후예들이었고(창36:12) 매우 호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민13:29,14:25,24:20) 물론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몰랐습니다.(신25:17-19)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 피곤해 진 틈을 타서 선재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것도 뒤에 비겁하게 말입니다. 저들은 광야 행로 중에 대열에서 피곤하여 쳐진 연약한 아녀자와 어린이, 노약자들을 후미에서 공격한 것입니다.

그 후의 일이지만 이스라엘 선민 역사에 있어서 아말렉은 언제나 대적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신 것입니다.(출17:16) 하나님은 아말렉의 이름과 그 자손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25:19). 그렇다면 저들을 하나님의 원수요, 대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광야 생활에 첫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르비딤에서 만난 그 전쟁은 아말렉과의 전쟁이었습니다.

2. 르비딤에서 있었던 전쟁은 여호와 닛시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말렉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진영은 전투태세로 돌입하였습니다. 모세는 대오를 정비하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선봉장으로 세우고, 군사를 모집하여 전쟁터로 나가서 아말렉과 싸울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 자신은 그의 형 아론과 갈렙의 아들 훌(대상2:3,출24:13-14)을 데리고,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지형적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손을 들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견되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깁니다. 그리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참 이상하지요?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여호수아의 지략과 용맹함과 전략에 따라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모세의 손이 계속적으로 들려 있으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깁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머리를 씁니다. 널찍한 바위를 의자삼아 모세를 거기에 앉혀 드립니다. 그리고 아론은 모세의 오른손을, 훌은 모세의 왼손을 붙들어 드립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지 않기에 해가 지기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여호수아의 군대는 계속적으로 승리하고 마침내 아말렉을 진멸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모세의 팔이 피곤할 때, 서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 올려 주므로 해가 지기까지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르비딤에서의 전쟁은 참으로 신기한 전법이요, 전술이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있으면 전쟁은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전쟁에서 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손을 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첫째는 그것은 전투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그 전쟁은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는 전투 전진의 신호입니다.
모세가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 군대는 적진을 향하여 계속 진군하여야 했습니다.

셋째는 모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의 표현이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고 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간절한 호소일 뿐만 아니라 아론과 훌이 함께 모세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으니 합심기도, 합력하는 기도였습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한 상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었을 때 하늘로부터 뇌성과 우박과 불덩어리가 함께 떨어져 애굽을 치셨습니다.(출9:23-25) 그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었을 때 그 재앙이 일시에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출8:29)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애굽을 향하여 손을 들었을 때, 메뚜기 재앙이 나타나 애굽에 채소를 치게 하였습니다.(출10:12)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바다 위로 내어 밀었을 때, 홍해 물이 갈라져 육지가 되었고(14:16,21), 다시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손을 내밀매 홍해 물이 합쳐져 애굽의 바로와 그 신복들을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출14:26-27) 여러분들도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는 손을 들었다는 것은 축복을 갈망하는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든 시대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복음시대의 사자들은, 손을 들고 그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의 승리는 어떤 사람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과 축복하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승리의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따라 하십시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사람의 칼과 수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과 기도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 결론적으로 여호와 닛시의 신약적인 교훈을 말씀드림으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승리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에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손을 높이 들고 아버지께 기도하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은 저 십자가 나무 형틀에 높이 달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부르짖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눅23:34) 또한 그 모습 속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의 승리를 이 속에서 보여 주십니다.(요16:33)

모세와 우리 예수님이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모세는 르비딤의 어느 작은 산위에서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아말렉이 전쟁하고 있는 한 지역의 전쟁터를 쳐다보고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전 세계적인 우주 공간의 모든 교회의 승리를 위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쪼록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우리는 천성에 도착하는 그 날까지 아말렉과 싸워야 합니다. 뒤에 쳐진 나약한 유아와 노약자들을 아말렉을 공격하였듯이 오늘날 사탄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거룩한 전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육탄으로 전투하는 여호수아와 그 용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서 손을 드는 기도의 전투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땀과 피와 물질과 힘을 다 바쳐 세우는 성전은 저와 여러분들의 여호와 닛시! 하나님 자신의 승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이요, 우리 교회의 승리요,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영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면서 여호와 닛시의 깃발 아래 아말렉과의 거룩한 전투를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승리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 모두가 승리의 함성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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