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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리고 싶은 야곱! 닮고 싶은 이스라엘!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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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32장 22절 ∼32절 말씀
제목 : 버리고 싶은 야곱! 닮고 싶은 이스라엘!

본 설교를 하기 전에 오늘 저는 여러분들의 교회외 여러분들에 관해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말씀드립니다. 다만 제가 잡은 원 설교본문이 아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죄인이었다는 것쯤은 여러분들의 담임 목사님께 들어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거기에다 제가 오늘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우리는 야곱과 같은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란 사람의 무엇을 보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이것이 궁금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란 이름을 안고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문제가 마치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풀리지 않는 근심과 두려움의 존재로 에서가 있다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에서와 같은 문제의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알려면 먼저 야곱의 성품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먼저 야곱의 이름의 뜻을 보면, "발뒤꿈치를 잡은 자", "거짓말 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치사한 인생이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나올 때에도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던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남의 발목이나 잡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고나 할까요!

두 번째로는 창세기 25장 29절에 보면 어느 날은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 이 냄새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들에서 사냥을 하다 왔으니 얼마나 배가고팠겠습니까? 그래서 형 에서는 그 팥죽을 먹고싶어 달아고 하지요? 그런데 동생 야곱은 형의 이런 다급함을 이용하여 장자의 권리와 맛바꾸려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27장에 와서는 아버지 이삭의 눈이 어둡고, 감각이 둔하고, 형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갔다는 것을 이용하여, 실제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실제로 이런 일이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난다면 어쩌겠습니까? 이게 동생입니까? 원수지? 그렇습니다. 에서도 처음에는 야곱을 원수로 여기고 죽이려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고 맙니다.
세 번째로 여기에서도 야곱의 기질은 나타납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아내를 만납니다. 라반의 딸중에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을 일하였으나 라반은 언니인 레아를 주었고, 실망한 야곱은 다시 라헬을 얻기 위하여 다시 7년을 일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야곱은 이럭저럭 약 20년을 라반의 집에서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였어도 자신의 재산은 없는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30장에 보면 야곱은 삼촌에게 당당히 자신의 재산을 요구하였다고 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제안하는 방법에 동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에는 그런 양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야곱이 제안한 방법은 다름 아닌, 아롱진 자, 점 있는 자가 나오면 자신이 같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가서 신풍나무 가지를 베어 무니를 내고 양들이 와서 물을 먹는 곳에 놓아 새끼밴 양들로 그것을 처다보게 하여 아롱진 것, 점있는 것이 태어나도록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시는 축복이었지만, 오늘 날 야곱은 이렇게 치사하고 이해타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여기까지가 야곱의 성품에 대한 말씀들인데, 이 야곱을 보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별 차이없는 인생들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즉 우리도 야곱과 같은 모난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도 한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형 에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야곱만이 그러한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에서와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던가요?
있습니다.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여!, 아버지!, 하나님!"하면서 신앙 생활한다면 이건 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야곱이란 인물을 통해 여러분들은 에서와 같은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야곱에게 형 에서와의 관계 회복을 더욱 부채질 한 계기는 바로 그에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을 향해 가는 야곱에게는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던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해결하지 못한 에서와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낸 방법은 바로, 어느 한쪽으로 시원하게 해결나지 않는 번민의 방법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속은 지금 복잡하여 한쪽으로는 형 에서를 피할 방법을, 또 한쪽으로는 형 에서 앞에 엎드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 형 에서가 4백인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섭니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야곱은 답답해 하면서도 소와 양떼를 둘로 나눕니다.
한쪽을 치면 다른 한 쪽을 구할 방도였던 것이지요.

그런데도 걱정이 앞서자 드디어 야곱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내가 죽겠나이다! 형 에서가 와서 나를 죽일 것 같아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도 형 에서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야곱도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 나루터에서 기도를 합니다!
이 얍복강이라는 것은 바로 야곱과 에서와의 멀어진 사이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거대하고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은 야곱을 얍복 강 나루에서 몰아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어서 지시하십니다!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리라!
사람의 환도뼈는 큰 힘을 지지하고 있는 뼈로 사람에게 있어 힘의 중심을 상징합니다.
즉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과 위선과 교만을 만들어내는 그 환도뼈를 부러뜨리므로 인하여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먼저 여러분 중심에 있는 환도뼈가 부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해집니다! 그래야 참 신앙인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는데, "이제부터는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발뒤꿈치나 붙잡고 거짓말이나 일삼는 그런 치사한 그릇으로는 온전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부끄러운 이미지의 야곱을 버리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새 이름을 주시는데,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스라엘 이라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뜻으로 뻗어나가는 이름입니다! 지배하는 이름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이름입니다!

바로 이러한 증거가 그의 아버지 이삭이 죽기 직전 야곱에게 축복한 기도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을 창세기 27장 29절로 인도합니다.
거기에 보시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하지 않았습니까?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야곱을 축복하면서도 아버지 이삭은 그가 대범한 인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하늘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자는 반드시 야곱과 같은 부끄러운 이미지를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은 야곱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거듭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준비되고 훈련되어지지 않은자에게도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일 자체를 맡기지도 않으십니다!
교회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 없습니다!
씨앗은 아무나 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복은 절대적으로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들! 지금 여러분들에게 에서와 같은 존재는 누구입니까? 오늘 그와 속히 관계가 회복되기 원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바랍니다! 야곱의 모습을 버리기 위하여 엎드리기 바랍니다!
속히 엎드려야 합니다!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얍복강은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야곱이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버리고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에 얍복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얍복강을 건너는 지혜로운 자들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326장 복음성가를 부르셨습니다.
왜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왜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왜 내가 먼저 품어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용서를 모르는가...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께 맡긴채로..."
중략~~

오늘 나의 모습이 야곱과 같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야곱의 모습이 남아있는 나!
사랑하는 여러분들! 버리시기 바랍니다! 남이 먼저 손 내밀어 주기 바라는 그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중성을 버립시다! 위선의 마음을 버립시다!
그리고 이젠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남의 탓이라 말하지 말고 내 탓이라 말하는 용기있는 여러분들 되시길 다시한번 축원합니다!!!

조금전에 대표 기도하셨던 어느 여 집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랑교회가 이 지역에서 가장 으뜸가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요"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변화하면 그렇게 반드시 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도 이 지역에서 으뜸가는 가정되시고, 여러분의 교회도 으뜸가는 교회로 성장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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