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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주님 (사 5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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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주님 (사 58:6~14)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에 그가 귀국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백성들은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은 불타서 황폐한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또한 고향에서의 삶은 포로 시절보다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힘을 내서 성전을 재건했고 성읍도 수축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구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십니까? 왜 우리를 알아 주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왜 이토록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 까닭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금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적인 신앙 생활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본문 말씀 6절, 7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맺고 또 이웃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원래 복이 있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복 주시는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없이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셨지만 이제는 조건부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무조건 복을 주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키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사 다시금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첫째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여기서 부를 때, 부르짖을 때란 과연 어떤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부르짖어 간구할 때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항상 인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절 상반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삶을 늘 인도해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항상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인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한 순간만 인도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항상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의 영혼을 항상 만족하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육체도 늘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도 또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땅의 기름진 것으로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절 하반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그들의 삶은 메마른 동산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물이 없어서 메마른 동산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는 것처럼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다만 하늘의 신령한 은혜뿐 아니고 땅의 기름진 것으로도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원래 복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망해버렸고 백성들 대부분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그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또 다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 이유가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그들의 몇 가지 잘못 때문에 그들이 복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 하반절 말씀에 무엇을 지적하고 있습니까?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멍에를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유익 때문에 연약한 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가락질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위입니다. 존중해야 할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손가락질은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허망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망한 말이란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는 악한 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허망한 말로 낯을 찡그리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허망한 말을 삼가야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있어서 여야를 막론하고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허망한 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짓거리는 이제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짓말과 같은 허망한 말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 대신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10절 상반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그렇습니다!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들과 함께 그 고통을 나누며 그들을 위로할 때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는 자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무시하지 말고 사랑으로 돌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귀중한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 세 가지,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진심으로 돌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울러 선지자 이사야는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나 항상 계십니다. 그러나 또한 특별한 공간과 특별한 시간 속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함께하십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특별한 공간으로 성전을 사용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시간 속에서 함께하셨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구약의 이러한 공간과 시간은 신약 시대에 와서 교회와 주일로 대체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안식일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로 거룩하게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완성된 날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일을 즐거운 날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연한 삶의 자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인가를 본문 13절 상반절 말씀을 통해서 지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세속적인 활동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주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삶은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사 58: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물 댄 동산 같은 삶,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메마른 광야와 같은 곳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우리의 뼈를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그와 같이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땅의 기름진 것으로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마음껏 받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어린 양 보좌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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