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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수이신 예수 그리스도 (막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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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목수이신 예수 그리스도   
♣본 문: 마가복음 6:1~3

만약 예수님의 신상카드를 작성한다면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기록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요한복음 10:14)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양을 치는 목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포도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지만 농부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 것을 가르치셨으나 어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많은 병자는 고치셨으나 의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셨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지만 교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나사렛에서 사는 동안 목수로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가지셨던 유일한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동네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 말한 것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마가복음 6:2~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 목수 일을 했다는 것 때문에 무시를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향에서는 특별한 권능이나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 주시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무시를 당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가복음 6:4)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되 화려한 왕궁에서 위대한 왕자로 태어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의 학정에서 해방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간적이 없었고, 국경 밖으로 여행을 하신 일도 없었습니다. 그가 배운 것이 있다면 목수인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목공기술을 배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배운 유일한 학문이요, 기술이요, 직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부터 자신에게 관계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에 쌓여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사건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목수가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목수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30년 동안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고, 물건을 고치는 일을 하셨으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부터 천국의 집을 짓는 신령한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전 주님은 우주를 설계하고 만들고 세우신 위대한 목수이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하셨듯, 예수님은 성삼위 하나님으로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설계하고 만드신 목수요, 에덴동산을 건설한 건축가요, 인간을 만드신 목수이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깎고, 다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장차 가야할 하늘나라의 황금보석 집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2~3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이처럼 목수이신 예수님은 현재 우리들의 삶속에서는 어떠한 일을 행하실까요?

一. 목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십니다.

나무는 큰 것, 작은 것, 구부러진 것, 비틀어진 것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수의 눈은 목재에서 건축의 가능성을 봅니다. 예수님이 눈에 비춰진 우리들의 경우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베드로(게바)라 하리라.”(요한복음 1:42)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기잡이 어부 베드로에게서 장차 교회의 반석이 될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는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장차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계시를 받을 때 우레 소리와 함께 받고 이 비밀을 증거할 자로 보셨습니다.

버려진 나무 조각 같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다듬고 깎아서 거룩한 교회의 기둥과 들보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 이와 같이 유대 땅에서는 쓸모없이 버려진 나무 조각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고치시는 위대한 목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의 기둥으로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고 지금 이 세상에는 계시지 게시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에 이끌림을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자신의 못난 부분, 자신의 약점만 바라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겸손도 아닙니다. 이것이야 말로 못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6~29)고 하셨습니다.

주안에서는 누구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목수의 손에 나무가 들려졌을 때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듯, 우리들이 주안에 거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목수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승리의 사람으로, 존귀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큰 대리석 돌덩어리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묻기를“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했을 때 미켈란젤로는“이 속에서 모세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모세가 곧 깨어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들어 쓰시고자 부르셨습니다.

더그라스 멜로크라는 시인이 이러한 시를 썼습니다.

만일 그대가 산꼭대기의 큰 소나무가 될 수 없으면
골짜기의 작은 나무가 되려므나.
그러나 골짜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되라.

만일 그대가 나무가 될 수 없으면 덤불이 되려므나.
만일 그대가 덤불이 될 수 없으면 풀이 되려므나.
만일 당신이 풀이 될 수 없으면 이끼가 되려므나.
그러나 호수에서 가장 생기 찬 이끼가 되라.

이 시의 의미는 어디서 무엇을 하던 주어진 처소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노래입니다. 맡은 일이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노래입니다.

목수가 나무속에 감춰진 가능성을 보듯, 예수님은 우리 속에 숨겨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인간 재목을 찾아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는 목동 다윗에게서 장군의 가능성, 왕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목수 예수님은 구두를 깊던 무디 소년에게서 대부흥사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二. 목수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적 인간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리모델링(remodeling)이라는 말입니다. 낡은 건물을 새롭게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낡고 불편하고 쓸모없는 건물이었는데 건축기술자들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새 건물이 됩니다. 이것이 목수가 하는 일입니다.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목수는 자르고 깎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듭니다. 가치 없는 것을 고쳐서 가치 있고 쓸모있는 물건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 까지 하리니.”(마태복음 12:2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와 같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고쳐서 쓰십니다. 목수가 새집을 짓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여 완전케 하듯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하십니다.

병든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부정한 여인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삶의 방향을 바로 세워주셨습니다. 삭개오 같은 민족 반역자를 회개시켜 성실한 애국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이러한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여 쓸모없는 청년 어거스틴을 고치셔서 성자가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 년간 기독교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신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학습능력이 부족하여 퇴학당한 에디슨을 고치셔서 세계의 발명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헬렌켈러를 고치셔서 세계가 우러러보는 여류 사상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본에 나라가 빼앗긴 상황에서 실의에 빠져 방탕한 나날을 보내 고 있었던 젊은 청년 이승훈을 고치셔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고치시는 목수 예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 라 자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나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마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6~29)하셨습니다.

전능하신 목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고하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는다는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의사를 믿기에 병든 몸을 맡깁니다. 이발사와 미용사를 믿기에 그토록 소중하고 관심 많은 머리를 맡깁니다. 또한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 즉 순종입니다. 환자는 의사의 지시대로 행할 때 건강이 회복 됩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치시는 목수 예수님의 연장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고장난 인간을 고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말씀으로 병든 영혼, 병든 삶을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6~17)하셨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오래 동안 경비교도대 대대장을 지내면서 많은 흉악범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박효진 장로는 자신의 신앙경험을 책으로 엮으면서 제목을“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전능하신 목수이기 때문입니다.

서정시인 나태주 시인은 “하나님은”이라는 제목의 시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넝마장수
골목마다 쏘다니며
넝마를 줍는.

하나님은 고물 수선공
집집마다 방문하여
망가진 고물을 고치는.

하나님은 무의촌 약사,
약 없는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아파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왜 아니리.....
하나님 앞에 우리는 저마다 넝마,
버릴 수도 간직할 수도 없는 고물,
병들어 신음하는 모두가 환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목수! 예수님은 수선공! 예수님은 무의촌 약사와 같습니다. 이같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목수 예수님께 고침을 받기 위해 행해야할 두 가지 행동강령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게로 오라”와 “내게 배우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즉 “고침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부서지고 고장난 삶 까닭에 고민하며 걱정하는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고침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살아갈 삶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목수 예수님의 손에서 잘 지어지고, 잘 고쳐지기 위해 하나님 말씀과의 만남의 시간인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병든 영혼, 병든 삶이 예수님에 의해 고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목수의 가장에서 태어나셨고, 목수 일을 하시면서 30년을 지 내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은 육신이 병들어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마음이 병든 죄인들을 고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우 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무덤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주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성령으로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성경말씀의 연장으로 고장난 우리들, 벗나간 우리들, 쓸모없는 우리들을 고치시고자 우 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29)하셨습니다.

목수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는 것, 그리고 주께 배우는 것은 우리들 이 행해야할 몫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목수 예수님이 사용하실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있는 나무입니다. 생각이 있는 나무요, 의지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님께 나아와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예”라고 해야 합니다. 어디든지“예”라고 해야 합니다. 어제든지“예”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믿음입니다. 이것이 곧 목수 예수님께 쓰임받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들의 삶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된 상급이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목수 예수님께 존귀하게 쓰임 받는 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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