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속은 다 보이는데 (마 23:23-28)

  • 잡초 잡초
  • 257
  • 0

첨부 1


속은 다 보이는데 (마 23:23-28)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일곱 개의 저주 가운데 넷째, 다섯째, 여섯째의 저주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저주를 하신 까닭은 그들의 외식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넷째 화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율법의 의와 인과 신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 세 종류의 십일조가 나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박하는 음식을 향기롭게 만드는 풀입니다. 약재로도 쓰였습니다. 회향은 미나리과의 일년생 식물입니다. 지중해 지방에서 주로 야생합니다. 열매를 약제 및 조미료로 씁니다. 

근채는 3-4 월에 꽃을 피웁니다. 이 열매는 자극적인 매운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조미료나 향료나 약제로 쓰입니다. 이런 박하, 회향, 근채는 값이 비싸기보다 그 양이 아주 적게 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소량의 약제를 얻은 데 대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부수적으로 얻은 수입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십일조를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계명을 그리 철저하게 지켰으면서도 정작 율법의 본래 정신인 의와 인과 신을 버렸습니다.  미가서 6:8 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의는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신은 믿음입니다. 율법의 계명들은 의와 인과 신의 정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은 잃어버리고 율법의 껍질만 섬겼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죄를 무거운 죄와 가벼운 죄로 나누었습니다. 살인, 간음, 배교 같은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하는 무거운 죄입니다. 하지만 작은 죄들은 선행이나 공로로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엄격하게 드리는 것을 핀잔한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율법의 정신을 먼저 행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들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고 비꼬셨습니다. 하루살이는 아주 작은 벌레입니다. 포도주가 익으면 신 냄새를 맡고 아주 작은 날벌레들이 꼬입니다. 이 날벌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루살이보다 더 작습니다. 그러다가 벌레가 포도주에 빠지고 맙니다. 벌레가 빠진 포도주를 그냥 마실 수는 없습니다. 걸러내야 합니다. 성찬식을 할 때 단에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이 때 덮어두지 않으면 날벌레들이 꼬입니다. 성찬식을 하려는데 벌레가 빠져 있으면 성찬의 은혜를 해칩니다. 그래서 덮는 것입니다. 

약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동물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어 먹을 수 없습니다. 레위기 11:4절에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작은 계명은 까다롭게 지키면서도 큰 죄는 예사롭게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약대 같은 부정한 것을 먹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부천노회 소속입니다. 노회는 일 년에 봄가을로 두 번 열립니다. 노회는 목사회원과 장로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행정적인 일들과 연합사업과 총회의 사업들을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회를 거룩한 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노회 회기 중에 회의하는 모습을 보면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니 은혜가 넘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회의 분위기가 험악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몇 몇 분이 법을 따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회의법과 절차 문제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늘어집니다. 그러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가 일수입니다. 회의 발언권을 그 몇 사람들이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몇 년 전에 임원선거에 절차 문제를 들어 검찰에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었습니다. 그래서 노회가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문구를 따지다가 노회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일본 청년이 모기 한 마리를 잡으려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홀딱 태웠습니다. 2004년 8월 29일 시고쿠지방의 마쓰야마(松山)에 사는 오니쉬 탓슈오라는 22살 청년이 집밖에 세워둔 차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어 그의 꿀 같은 단잠을 깨웠습니다. 오니쉬는 모기의 생(生)을 단축하기 위한 집념 하나로 살충제를 마구 뿌려댔습니다. 그리고 엉겁결에 담뱃불을 붙였습니다. 삽시간에 불이 집까지 옮겨 붙어 집을 홀딱 태웠습니다. 다행히 오니쉬는 얼굴과 목에 가벼운 화상만을 입었습니다. 가족들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청년에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단 한 가지, 화재로 인해 모기도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서 의와 인과 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성경은 우리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을 보면 한 구절도 소홀하게 보지 않습니다. 저절로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다섯째 화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탐욕과 방탕한 모습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릇에는 음식을 담습니다. 만일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위생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한데, 안은 더러웠습니다.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음흉한 속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안을 깨끗하게 하라고 질타하십니다. 그러면 겉도 자연스럽게 깨끗해지는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모두 숨어서 짓습니다. 죄를 안 지은 척합니다. 죄가 드러나면 수치스럽기 때문입니다. 만약 떳떳하게 내놓고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객기를 부리는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의 파멸은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죄의 힘은 그만큼 연약합니다.  이 세상에는 나름대로 죄인을 심판하는 도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서지 않아도 죄인은 법에 따라 형벌을 받습니다. 나라에 엄중한 법이 있습니다. 나라는 권력으로 법에 힘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그 권력의 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탐욕과 방탕은 형제지간과 같습니다. 탐욕은 속에 감추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욕은 이내 방탕으로 이어집니다. 방탕은 탐욕을 채우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방탕은 숨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들킵니다. 방탕은 반드시 그 뒤에 탐욕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죄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해서 생긴 돈은 방탕하게 쓰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땀 흘려서 번 돈은 방탕하게 쓰지 않습니다. 탐욕으로 번 돈은 방탕하게 씁니다. 방탕은 다시 강도 높은 탐욕을 채워줍니다. 결국 탐욕과 방탕이 맞물려서 몇 바퀴 돌고 나면 간이 부어오릅니다. 사단의 장난감이 되고 맙니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릇에 욕심을 담으면 그 그릇 또한 더러워집니다. 음식에도 죄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너무 화려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너무 비싼 음식은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검소하게 먹고 하나님 일에 그 돈을 쓰십시오. 또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렇게 먹고 즐길 수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 식탁은 검소한 것이 좋습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봐야 성인병에 걸립니다. 식도락을 즐긴다며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먹지 마십시오. 모두 낭비입니다. 근처에서 최선의 밥집을 찾아서 감사히 먹으면 맛있습니다. 먹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술은 방탕과 직접 연결됩니다. 먹고 중독이 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그릇에 언제나 성결한 것들이 담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하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담으십시오. 이 그릇에 탐욕과 방탕한 것을 담는다면 예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화 있을진저’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두려워합시다. 


여섯째 화는 회칠한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무덤을 치장해봐야 무덤입니다. 무덤을 아무리 멋있게 꾸며도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무덤에 왜 회칠을 할까요? 시신을 무덤에 안치 시킬 때 횟가루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회는 흙과 반반씩 섞어서 관이 들어갈 자리 주변과 위에 덮을 때 씁니다. 그래야 단단하게 굳어져서 물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흙이 회와 반죽이 되면 콘크리트 못지 않게 단단해 집니다. 이렇게 회는 보통 무덤 속에 흙을 다지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 회를 무덤 표면에 칠하지는 않습니다. 

무덤에 회칠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있는 독특한 장례 풍습입니다. 민수기 16 장을 보면 누구나 시체를 만지면 7 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7 일 동안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됩니다. 유월절 명절이 되면 각처에 퍼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성 밖에는 무덤이 많습니다. 자칫 모르고 무덤을 스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부정을 탔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먼 길을 왔는데 이런 실수는 큰 낭패입니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무덤에 전부 회칠을 해서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하얗게 회 칠한 무덤은 햇빛을 받으면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밤에도 표가 납니다. 

이런 모습을 예수님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빗대신 것입니다. 화려한 치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만 그에게서 시체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교양이 있는 척 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무례한 자들입니다. 위선과 거짓과 부정과 부패와 권모술수와 음란과 미움과 질투와 분노가 가득한 쓰레기장입니다. 저는 부목사 시절에 유난히 장례를 많이 치러봤습니다. 직접 시신을 염을 하고, 관을 관보로 묶고, 운구도 해보았습니다. 여름에 장례가 나면 가능한 빨리 입관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장례식장이 따로 있고 냉장 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죽은 지 하루가 지나면 벌써 시신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죽으면 그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합니다. 겨울에는 춥다고 방에 불을 넣습니다. 그러면 윗목에 두어도 소용없습니다. 시신이 상하면 아주 독특한 쉰내가 납니다. 서둘러서 입관을 하고 3 일장을 지내면 발인을 합니다. 여섯 명이 관을 양쪽에서 들어 나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신이 많이 상해서 관 안에서 물이 출렁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을 고를 때 방수 처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을 골라야 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많이 상한 것을 유족이 알면 마음이 아플까봐 조심조심 운구를 합니다. 인생이 그렇게 무상한 것입니다. 이 더러운 것을 예수님은 외식과 불법이라고 하셨습니다. 

28 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토록 분개하신 것은 처음에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23 장 2 절에 보면 이들이 모였을 때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자리는 회당의 맨 앞에 마련된 돌 의자입니다. 그 자리는 모세를 계승한 회당에서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권위 있는 자리에 앉은 이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회당에 오면 서로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저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탐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것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가장 위엄 있는 율법 지도자의 모습을 꾸몄습니다. 근엄한 표정, 화려한 옷매무새, 죄를 짓는 것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제스처, 굵은 목소리, 온 몸에서 거룩함이 풍겨 나오도록 척 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불법을 많이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회 칠한 무덤이란 별명이 너무도 잘 들어맞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십시오. 내 안에 거짓이 없습니까? 안 그런 척하는 것들이 다 있습니다. 저도 아침에 일어난 얼굴은 못 봐줍니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조금 나아집니다. 여자가 화장하는 것도 다 진짜 나를 감추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화장을 지우고 교회 오라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보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위장하는 위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과 방탕은 하나님이 더럽게 여기십니다. 쩨쩨하고 모진 마음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내면을 가꾸는 이가 아름답습니다. 속을 가꾸면 겉은 자연스럽게 변합니다. 우리가 누굴 속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게 삽시다. 더러운 냄새를 만들지 맙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립시다. 그러면 젊어집니다. 건강해집니다. 행복해집니다. 희락과 복이 넘쳐날 것입니다.
(황금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