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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살리는 교회 (눅 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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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15:8-10
제목: 사람을 살리는 교회 (The Church Saving the Persons)

1. 사람이 소중하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이순신 같은 영웅들을 소재로 하는 사극들이 인기가 높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요즘 좋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리더십의 부재 상황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좋은 지도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란 인물을 얻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굴지의 회사로 키웠습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교 기숙사에서 동기생 스티브 발머를 만났습니다. 빌 게이츠는 1학년 때 하버드대를 중퇴하였지만, 스티브 발머는 응용수학 부분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그 이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에 친구 빌 게이츠의 권유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여 2001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에 이릅니다.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로 키운 사람은 스티브 팔머입니다. 그의 인재 채용원칙은 이렇습니다.
“우리 회사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고용예산 따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시 고용합니다. 세상에는 일생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데도 사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돈을 벌어옵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회사를 일으켜 세웁니다. 사람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국가를 살리고, 세계를 살립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길을 걷도록,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도록, 사람들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을 갖고 살도록 돕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2.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게도 중요한 사람이 길을 잃었습니다.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헤매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낙원의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손에 쥔 것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길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비유가 모두 이런 길 잃은 인간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토끼와 지렁이가 100m 달리기를 했습니다. 토끼는 부지런히 힘써 달렸습니다. 지렁이는 엉금엉금 기었습니다. 누가 이겼겠습니까? 지렁이가 이겼습니다. 어떻게? 
지렁이의 길이가 100m 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토끼가 화가 나서 지렁이에게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너, 기어서 달리지 말고 서서 달려서 정정당당하게 겨뤄보자.’ 토끼와 지렁이가 다시 달렸습니다. 또 지렁이가 이겼습니다. 어떻게? 지렁이는 서서 달리다가 그만 넘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자신의 실력으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지렁이는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렁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실력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길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길, 은혜의 길, 축복의 길, 참 행복의 길을 잃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전9:1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선착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길 잃은 사람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길 잃은 사람을 구원하기위해서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은혜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죽이려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로 치라.”
비록 간음이라는 더러운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여인을 살려주셨습니다. 여인은 법에 의하면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은혜로 죽을 목숨을 건졌습니다.
평생 말 못하고 살아온 농아인들,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 걷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들 등 각종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들을 친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소외된 사람들, 왕따 당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4. 길 잃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데, 길 잃고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거룩한 종교생활을 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고 정죄하는 더러운 죄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상종하지도 않았고 자신만의 고매한 종교생활에 탐닉했습니다. 그들은 몹시 이기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인 거룩한 생활에만 관심을 가졌지, 연약한 사람, 왕따 당하는 사람들, 길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어도 사람의 눈이 두려워 예배드리러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우리끼리만 예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은 바리새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길 잃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한채, 혼자 교회로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의 모습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모습은 아닐까요?

부산에 가면 영주동교회가 있습니다. 요즘 모자이크 교회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교회 앞에서 과일 파는 가게 아주머니가 예순이 넘어서 초청주일에 교회로 나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너무 행복해요. 예수님 늦게 만난 게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래도 제가 죽기 전에 예수님 믿게 되어 너무 너무 행복해요.”
그러시면서 뼈있는 한 마디를 더하셨습니다.
“영주동 교회 다니는 이것들, 이 악한 것들, 내가 저희들 교회 앞에서 수십년을 과일을 팔았는데 이 좋은 예수를 저희들끼리만 믿고 나 보고 가자는 소리 한 번 안 하고...... 혹시 내가 싫다고 해도 끝까지 전도했어야지...” (김두식, 전도는 어명이다, 57-58)

5. 길 잃은 자를 찾아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여러분은 길 잃은 자식을 찾아나서는 부모의 심정을 아시지 않습니까?
자식이 길을 잃고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부모의 입에 밥이 들어갑니까?
속이 타들어갑니다. 길 잃은 자식을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아니 몇 날이고 부지런히 거리를 뒤지며 다닙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는 애타는 심정으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사람들을 찾아오신 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원래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길을 찾았습니다. 행복의 길, 평안의 길, 기쁨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친구들이, 이웃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인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33년간 공생애를 마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예수님의 사명을 우리에게 바톤 터치한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고,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건너 오셨듯이, 우리도 길 잃은 우리 이웃들에게로 건너가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가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불신자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슈퍼 주인, 우유배달부, 신문배달부, 과일 가게 주인, 아파트 경비원...
그들 중에 어떤 분들은 예수를 몰라서 믿지 못합니다. 교회에 오고 싶어도 누가 데려다 주지 않아서 부끄러워 못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가서 이렇게 전하십시오.
“예수님은 참 좋은 분이예요. 우리교회는 너무 좋은 교회예요. 우리교회 목사님은 참 훌륭한 목사님이예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이 많은지 몰라요. 한 번 와 보세요.”
이렇게 매주 한 두 번 과일을 사주면서 깎지는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돈을 더 주고 사십시오.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입니까? 좀 넉넉히 주고 사면 마음이 얼마나 기쁩니까?
이렇게 몇 주간을 하다가 10월에 들어가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번 10월21일은 우리교회에서 VIP를 초청하는 날입니다. 선생님은 제 형님 같기도 하고 너무 마음씨 좋은 분이라, 제가 선생님을 VIP로 초청하고 싶어서 명단을 써냈는데 오실 수 있습니까?”
이러면 그분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회 오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마음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생기지 않거든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제게 하나님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을 주옵소서.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주옵소서.”

6.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큰 기쁨
  애타는 심정으로 길 잃은 자식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어떠합니까?
끌어안고 엉엉 웁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요.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잔치를 벌이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한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던 19명이 다 석방되어 곧 부모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자식을 탈레반에게 빼앗긴 부모들에게 아무리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차를 사주어도 먹고 싶지도 않고 입고 십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돌아오기까지는 말입니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것을 다 주어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주방봉사로, 소그룹 리더로, 안내위원으로 열심히 봉사합니다. 성전건축을 위하여 먹고 입고 누리는 것을 줄이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립니다.  이것도 물론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일, 그래서 예수님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부탁하신 일 “가서 제자 삼으라”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만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실까요?

7. 결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넘겨받아 그 일을 사명으로 알고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관심을 갖고,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교회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람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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