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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어제와 오늘 (창 41: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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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어제와 오늘

(창41:50-52)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1. 요셉은 야곱의 늦둥이로 다른 아들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에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심하게 따돌렸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하자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꿈인즉 형들이 장차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 꿈 얘기를 듣고 형들이 “네가 우리의 왕이 될 작정이냐? 네가 정말 우리를 지배하겠느냐?” 하고 코웃음치며 그 꿈 이야기 때문에 요셉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멀리 양을 치러간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여부를 알고자 요셉을 형들이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양을 치던 형들이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죽여 없애버릴 음모를 꾸미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오고 있다. 자,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아버지에게는 맹수가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창37:19-20) 그러나 큰형 르우벤의 반대로 요셉을 죽이지는 않고 옷을 벗겨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마침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을 보자 유다가 말합니다. “우리가 동생을 죽인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도 우리와 살과 피를 나눈 형제이니 손대지 말고 노예로 팔아버리자.” 이에 모두 그의 말에 동의하고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은화 20개를 받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결국 애굽에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갔습니다.(창37:26-28,36) 이 때 요셉의 나이가 17세였습니다. 요셉의 파란만장한 고난의 인생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꿈 많은 사춘기에 자신의 꿈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처럼 형들이 자신의 발밑에 엎드려 절하기는커녕 형들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 머나먼 낯설고 물설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힘들고 고달픈 종살이에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토록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지내던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하여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형편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아버지가 너무도 그리웠을 것이며, 한 배에서 태어난 막내 동생 베냐민도 너무나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형들을 생각하면 끝없는 원망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눈물로 삼키면서 허구한 날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형들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고난받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범사가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주인되는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가정의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이 때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려주시되 하나님의 복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록 축복했습니다.(창39:2-6) 창세기 39:5에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은 나 어린 요셉의 고난에 감추어진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그 고난을 통한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노예 신분이었지만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가는 요셉은 그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꽃미남이었습니다. 하루는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요셉에게 눈짓을 보내 자기와 동침하자고 유혹합니다. 요셉은 ‘내가 어찌 주인에게 악을 행하며, 하나님 앞에 어찌 죄를 범할 수 있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요셉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어느 날 그 여인이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가운데 요셉의 옷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요셉이 옷을 벗어버린 채 도망쳐 버립니다. 타오르는 욕정이 무참하게 거절당하자 그 여인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가운데 연정이 증오의 불길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냅다 소리를 질러 히브리 종놈이 자신을 성희롱하며 성폭행하려다가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쳤다고 소리친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물로 요셉의 옷을 가지고 있다가 남편이 돌아오자, ‘당신이 들여 온 히브리 종놈이 나를 성희롱하기로 소리를 쳤더니 이렇게 옷을 버려두고 도망했다.’며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주인 보디발은 전후 사정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가 27세로, 종으로 팔려온 지 어언 10년이나 된 때였습니다. 비록 종살이지만 시위대장 집에서 잘 되는가 싶더니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노예생활 10년에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창39:21) 하나님께서 감옥 교정관으로 하여금 요셉에게 제반 감옥의 업무를 맡기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감옥 일을 맡는 중 왕에게 범죄한 두 관원장, 비서실장과 예전 담당관이 요셉이 갇힌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시위대장은 이들이 죄수의 몸으로 투옥되었지만 전직 고관들인지라 요셉으로 하여금 시중들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들이 투옥된 며칠이 지나서 똑같은 날 각기 다른 꿈을 꾸었는데 매우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요셉이 그 이유를 묻자 꿈을 꾸기는 꾸었는데 해석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능히 해석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제게 꿈을 말해보시지요.’라고 하자 먼저 비서실장이 꿈에 포도나무에 세 가지에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는데 자신이 그 포도를 짜서 포도즙을 왕에게 바쳤노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사흘 안에 비서실장으로 복권되는 꿈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합니다. “당신이 복권되어 모든 일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내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말씀드려 누명을 벗겨주시고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창40:9-15) 그리고 사흘 후에 요셉의 꿈 해석대로 비서실장은 복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서실장은 복권되고 나서 요셉의 부탁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창40:20-23)

사람에게 기대했던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진 것입니다. 이로부터 만 2년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왕이 나일 강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갈밭을 뜯어먹고 그 뒤에 흉측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른 일곱 마리의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건강하고 살진 소들을 먹어 버리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어 두 번째 꿈을 꾸었는데 줄기 하나에 무성하고 알찬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사막의 바람에 말라붙어 쭉정이가 된 다른 일곱 이삭이 그 줄기에서 나와 먼저 나온 무성하고 알찬 일곱 이삭을 삼켜 버리는 꿈이었습니다.(창41:1-13)

왕이 꿈으로 인해 번민하다가 애굽의 모든 마법사들과 지혜로운 자들을 불러 해몽토록 했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비서실장이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시위대장의 종으로 있던 히브리 청년 하나가 제 꿈을 해석하고 그 꿈대로 정확하게 제가 복권되었는데 그 사실을 그간 잊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라면 확실히 왕의 꿈을 능히 해석하리라고 믿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바로 왕이 곧장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들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듣건대 네가 꿈을 잘 해석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요셉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왕에게 그 꿈의 뜻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꿈 내용을 듣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왕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앞으로 7년 동안 애굽 전역에 큰 풍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7년 동안은 흉년이 들 것이며 흉년으로 풍요롭던 시절은 다 잊혀지고 이 땅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왕이 꿈을 두 번 연달아 꾸신 것은 그 일을 반드시 속히 행해질 것을 뜻합니다. 이제 왕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택하여 나라 일을 맡겨야 합니다. 행정 구역을 다섯으로 나누고 각 구역마다 관리를 두어 풍년이 든 7년 동안에 잉여 농산물을 모조리 거두어 왕의 권한으로 각 성의 창고에 비축해 두십시오. 이와 같이 식량을 비축해 두시면 앞으로 애굽 땅에 7년 동안 흉년이 들어도 백성들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꿈 해석과 더불어 그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해주는 요셉에게 왕과 모든 신하들이 감탄했습니다. 바로 왕은 신하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이런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라면서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너에게 알게 하셨으니 너처럼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없구나! 너는 내 나라를 다스려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왕좌뿐이다.”며 당장에 요셉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종살이 13년 만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와 13년 종살이 끝에 나이 30이 되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애굽 전역을 통치하는 7년 동안 엄청난 풍년을 거두어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거두어 저장한 곡식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 비축량을 계산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창41:1-49)


2. 요셉의 꿈 해석대로 7년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들기 전 요셉은 아내 아스낫으로부터 아들 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첫째 아들을 ‘므낫세’라 이름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를 낳자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에브라임’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1) 요셉이 그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13년 종살이 끝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애굽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의 딸을 아내로 얻어, 7년 풍년에 아들까지 얻고 보니, 지난 날 숱한 세월 속에 겪어야 했고 가슴에 묻어두어야만 했던 아픔과 응어리, 맺힌 한들을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씻어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엄마 라헬이 막내를 낳고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적부터 배다른 형들로부터 눈칫밥 먹고 자란 유년 시절에 받은 상처, 아버지의 편애 속에 형들로부터 심하게 따돌림 받은 사춘기 시절의 마음 고생, 자기를 죽이려다 종으로 팔아버린 형들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 13년 동안 한 번도 찾아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 등 맺힐 대로 맺힌 지난 날의 쓰라린 상처와 고통과 고난을 깨끗이 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위대장 집에 팔려와 종살이 하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당한 일, 즉 억울하게 성폭행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일, 감옥생활 중 비서실장의 꿈을 해석해주고 복권되면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부탁했건만 토사구팽(?死狗烹)당한 일, 노예 신분이라 어디 항소할 수조차 없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막연하게 감옥생활을 계속해야만 했던 그 질고의 세월을 하나님께서 말끔히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13년 동안 가슴에 박혀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던 못을 속 시원하게 뽑아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단순히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은혜로 과거의 고통스러운 상처들이 극복되고 치유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셉과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지난 날 가슴에 맺힌 한, 가슴에 박힌 못들이 있습니다. 여자들 대부분이 하는 말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 아프고 상처받은 이야기들, 억울하게 당한 일들, 그리고 한 맺힌 일들을 글로 쓰면 책 12권도 더 된다고 합니다. 마치 남자들은 둔감해서 전혀 마음에 상처들이 없는 줄 알고 말합니다. 풀지 못한 응어리들이 있습니다. 잘 아물지 않은 아픈 상처들이 남아 있습니다. 쉽게 용서가 안 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남아 있으면 결코 평안할 수 없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와 맺힌 한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씻어내려 가지 않으면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가슴에 박힌 못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뽑아내야 진정한 축복입니다.

7년 흉년이 계속되는 동안 야곱과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고자 애굽에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궁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 하자 형들은 너무 놀라 대답을 못합니다. 요셉이 놀란 형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보십시오. 내가 형님들이 애굽에 판 동생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한탄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하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에 보내셨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노예로 팔았지만 그 고난의 배후에는 우리 가족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속히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손자들, 모든 소유를 가지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창45:1-10)고 말합니다.

요셉의 이 말 속에는 자기를 죽이려다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에 대한 증오나 맺힌 한이 전혀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고백 그대로 마음에 모든 아픔과 고통, 상처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만일 요셉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행한 일이 대하여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할까?’하면서 상당히 요셉을 두려워하며 근심으로 지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이 죽자 장례식을 마친 후 형들이 요셉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하시길, ‘네 형들이 너에게 악한 짓을 했을지라도 이제 너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이제 당신도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셉은 이같은 형들의 전갈을 받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하자 요셉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녀들을 보살펴 주겠습니다.’며 오히려 따뜻한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켰습니다. 형들에 대한 지난 날의 증오와 마음에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그 형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출15:26) 가슴에 박힌 고통스러운 못 자국들이 치유받기 바랍니다. 상한 마음을 그냥 덮어두지 마시고, 여러분의 지난 날의 모든 아픔과 고난을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털어놓으시고 치유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모든 고난을 아시고 고난 중에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여러분의 마음에 남아 있는 어떠한 아픔이나 상처라도 능히 치유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어제’가 치유되어 행복한 ‘오늘’의 생활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제’의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어야 인격과 성품이 뒤틀리지 않고 함께 행복해는 것입니다. 

2) 마지막으로 요셉이 둘째 아들을 낳자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에브라임’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와 전혀 보상받을 수 없는 종살이 10년에 감옥생활 3년, 모두 13년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 남의 가정만 잘 되고 복되게 하며,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통해 애굽만 더욱 부강하게 만든 일 등을 헛고생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고로 삼아 주셔서 요셉의 가문에 창성하는 복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주어지는 고생과 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고난에는 결코 헛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창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로 ‘어제’의 고생과 수고가 창성하게 하는 ‘오늘’의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로 여러분의 ‘어제와 오늘’이 치유되고 창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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