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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들어야 하는 소리 (잠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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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들어야 하는 소리
성경; 잠언; 8:1-5

  간혹은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갖가지 운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휠체어를 타고 등산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하는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공을 따라 다니면서 축구를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이지도 안는데 공을 찰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공이 굴러가면 소리가 나게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공을 찰 때에도 방향을 소리로 들려주게 되면 그 소리를 듣고 공을 차게 됩니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소리를 들어서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지시하는 소리를 잘 듣고 따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으면서 소리를 듣지 않고 행동하게 되면 결국은 방향을 잃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은 베토벤이 안팎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외부 환경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베토벤이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으로 귀가 완전히 멀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베토벤은 "환희의 송가"라 일컽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작곡하고 발표하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의 비엔나에서는 베토벤의 음악이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향락과 사치의 비엔나는 가볍고 즐거운 음악을 선호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들에게 너무 심각하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 곡이 처음 발표되어졌을 때 청중들은 열열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주장 안이 떠나갈 듯이 환호하지만 막상 베토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단원 중 한 사람이 나와서 베토벤의 몸을 돌려 세웠습니다. 박수하며 환호하는 청중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베토벤은 비로소 답례를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13(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는 교향곡 제9번에 삽입 된 합창곡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파장을 달리하는 고주파와 저주파를 비롯한 우리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고,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습니다. 장비를 갖춰야 들을 수 있는 소라가 있고, 장비를 갖추었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어렸을 때에 성전에 있을 때에 부르시는 여호와의 세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었던 엘리 제사장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영의 귀가 열린 자가 들을 수 있는 여호와께서 들려주시는 영적인 소리도 있습니다.

  떠도는 소리 중에는 분별해서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듣기 좋은 고운 화음이 있는가 하면, 듣기 싫은 불협화음도 있습니다. 들어야 할 소리가 있는가 하면, 듣지 말아야 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불평이 섞인 부정적인 소리는 들으면 우리들의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와 반대로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소리는 들으면 우리들의 마음이 평안합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들어야 하는 소리를 권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명철의 소리입니다. 애타게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2-3)”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지혜와 명철이 우리를 부르고 있을까요?
 
첫째, 어리석은 자를 명철하게 합니다. 시편 14:1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음의 극치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에만 전념하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단순 무지하여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명철의 소리를 들으면 사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슬기롭지 못하고 둔한 자를 깨우쳐 지혜롭게 합니다.

  둘째, 미련한 자를 마음이 밝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성경에서는 슬기롭다와 미련하다를 대치하고 있습니다. 미련하다는 것은 익숙하지 못하고 미숙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미련한 자는 생각도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17:12에서는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명철의 소리를 들으면 이런 단순 무지 한 자의 마음이 밝아집니다. 잠언 19:3에서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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