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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이란 무엇인가? (사 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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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부흥이란 무엇인가?
본  문: 이사야 64:1-4절(구약p.1044)

2007년도는 시작부터 평양대부흥을 맞이한다고 해서 교회마다 부흥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흔하게 부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유행가처럼 부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오히려 백년전 1907년도에는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님이나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에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함을 깨닫고 은혜를 사모하고 회개하는 가운데 강력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부흥을 경험한 주의 종들의 입술을 통해서 복음의 능력이 강하게 선포됨으로 인해서 부흥의 불길은 뜨겁게 전국을 향해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백년후가 된 오늘은 백년전의 그 부흥을 다시 한번 어게인한다는 뜻에서 부흥을 달라고....그 부흥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부흥을 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흥의 열매, 그 부흥의 결과만을 기대해서 더욱더 우리의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이 그 속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성공주의적 부흥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부분적으로는 동의합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부흥이 우리에게 임해야 되고,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부흥을 원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부흥을 갈망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04년도 웨일즈의 부흥을 가져왔던 이반 로버츠는 13년동안 이 땅에 부흥이 임하도록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운데 하나의 제목은 “하나님이 교회를 굴복시켜 주옵소서”입니다. 여기에는 강력한 소원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 이 교회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뭔가 잘못되어가는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하에 굴복시켜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왜 부흥이 필요한가를 절실히 영적으로 바로 깨닫는다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수가 없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간구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왜 우리가 부흥을 그토록 갈망해야 하는가 그것을 바로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간절하지 못합니다. 어느 시간에 모여서 기도합시다라고 할때 한번 기도하는 정도지 지속적으로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걸어가면서도 “주여 부흥을 주옵소서”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2에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를 2:14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땅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나라가 되도록 이 땅에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부흥을 갈망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사야 64:1-4에도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임하소서.” 이보다 더 강력한 부흥을 요청하는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여! 하늘을 가르고 이 땅에 임하옵소서.
그 이유도 오늘 말씀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흥을 필요로 하고 우리에게 부흥이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그토록 부흥을 갈망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부흥을 부르짖어야 할 이유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간절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없고,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두가지 이유 때문에 부흥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가슴아프게, 가슴저리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 두가지 중에

첫째는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 때문에 우리는 부흥을 절실히 사모하고 갈망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자신의 상태와 주의 교회가 처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무기력한 모습을 본다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실상은 너무나 가난하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너무나 보잘것 없고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저들 스스로는 우리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실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부흥을 부르짖지 않았고 부흥을 갈망할 수 없었고, 부흥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더 침체에 빠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모습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교회는 어떻습니까? 마가복음 9:14-29에 보니 우리 교회의 모습을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귀신 들린 자녀를 둔 아버지가 그 아이를 데리고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가시고 제자들만 남아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쳐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전에 전도하러 갔을 때 귀신도 쫓아내고 고쳐본 경험이 있는지라 그들은 그 아이를 고쳐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무능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이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찾아온 저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현대 교회는 교회 성장을 위하여 교회 부흥을 위하여 온갖 방법을 가지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정말 처량할 정도로 발버둥을 치고있습니다. 락음악까지 동원해서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겠다고 발버둥을 하고 있습니다만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천주교회가 부흥하고, 오히려 불교가 부흥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을 때 정녕 하나님께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활에 얼마나 생명력이 있습니까? 예배에 얼마나 기쁨을 찾고 있습니까?

지쳐있는 모습들, 피곤한 모습들, 의욕없는 모습들, 열정없는 모습들, 헌신없는 모습들...이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아닙니까? 예배를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을 만나고, 얼마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세상이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습니까?
행함이 없는 말만의 종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내적 변화가 없는 외적형식만 남아있는 종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실상을 바라본다면 정말 우리는 뜨겁고 간절하게 무릎꿇고 부흥을 갈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부흥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부흥을 절실히 갈구하고 소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더 이상 부도덕정도가 아니라 도덕이 없는 사회로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20%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것은 더 암흑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석구석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입니다. 이사야 1:5-6의 말씀대로 머리끝에서 발바닥가지 성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곳이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적어도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한국교회가 존재하는 이 나라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든 세상을 치유할 능력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상은 점점 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소망없는 상황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처방도 내어놓을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예배드리고 흩어지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런 병리현상을 바라볼 때 뜻있는 크리스챤들은 무릎을 꿇고 부흥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셔서 이 병든 사회를 고쳐주옵소서. 눈물이 쏟아지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고치고 회복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교회가 할 일이 뭡니까? 이런 사회의 잘못된 곳에 파고들어가서 작은 누룩이 되어 떡 덩이를 부풀게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불이 되어 어둠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이 꺼져버렸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곳에 크리스찬이 들어가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회개하면서 ‘오 하나님, 하늘 가르시고 이 땅에 임하여 주옵소서! 부흥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나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 세상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그 사람은 부흥을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줄 압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그와같은 주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흥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는, 부흥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와 가치를 깨닫고 부흥을 갈망할 수 있어야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이 땅에 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세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이 땅에 비상하게 임하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성령으로 이 땅에 강하게 임하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오늘 말씀 64:1-3에도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해달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실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만 사람이 그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게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여 찾아오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 땅에 임하시고 찾아오실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상한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 때 수 많은 사람이 그 앞에 놀라고 고꾸러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교회 안과 밖에 부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죽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생명을 얻게되고 무기력한 교회가 힘을 얻고 깨어나고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머리로만 믿던 사람들이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어지고 겸손해지고 회개하게 되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기도하기를 시작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으로 임할 때 교인들이 살아나는 겁니다. 내가 살아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흥을 갈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어도 진리가 깨달아지지 않고, 회개가 나오지 아니하고, 또한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교회밖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64:2을 봅시다.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교회밖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되고 무릎을 꿇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흥은 교회안의 교인들을 소성케하고 교회밖의 죄인들을 일깨움으로 그 결과 사회속에, 각 지역에, 각 기관에 모든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열매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부흥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이 땅에 오실 때 그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땅에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들시들하게 믿던 사람들이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진리 안에서 즐거워하고 사명자로 일어서게 되고, 교회밖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부흥이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경험되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이 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력하게 세워지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는,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부흥이라는 겁니다. 부흥이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주도권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런 의미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부흥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가 나의 주인이요,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내 방법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의 뜻을 따라주시고,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내가 주의 뜻을 따르겠으니 말씀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진정한 부흥은 다름아닌 하나님 앞에서 내 방법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 앞에 내 방법을 부인하고 접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부흥이 경험되지 않고 임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그 주도권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여기게 부흥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는 섬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가? 과연 하나님이 승인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에 굴복해서 하나님의 뜻안에서 하는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것은 이제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내 방법, 내 자아,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흥이 임할 때 우리는 갈등하게 됩니다. 여러분 편안하게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내게 임하게 될 때 우리 몸안에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나를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법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오 주여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의 부끄러움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때 비로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내 방법, 내 생각을 포기해 버릴 때 하나님이 왕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높아질 때 그 때 부흥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절 말씀을 보니까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라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밖에 행하시는 주님, 이사야 선지자는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넘는, 훨씬 탁월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모든 것을 진동시키고 꼼짝하지 못하도록 묶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부흥을 갈망하신다면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내 생각에 집착하고, 내 욕심에 집착하여 살아왔던 내 자신이 주님 앞에서 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인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흥이 임하면 굉장히 갈등이 옵니다. 받아들여지기까지...그러나 마침내 내가 깨어질 때 참된 평화가 오고, 참된 은혜가 올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게 부흥입니다. 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인되고 부정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워지려면 굉장히 고민해야 합니다. 며칠동안은 제가 몸을 앓았습니다. 이 고통이 말로 다 못합니다. 금요일에는 설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지금도 설교할 생각이 별로 없어요. 어디 굴 속에 가서 며칠 있다가 나오고 싶어요.
왜냐? 아직도 내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아직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아직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는 승리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으세요. 그 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생육하고 변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부흥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가치를 두고 말씀을 드립니다. 제 자신의 문제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흥이 목사에게 임할 때 이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흥이 임할 때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나의 입술을 통하여, 나의 생활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목사가 설교할 때 과연 그리스도의 영광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부흥이 뭐냐?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체해 있을 때 영광스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섞은 냄새가 납니다. 짬뽕이 됩니다. 복음이 짬봉이 됩니다. 본래의 맛을 상실한 복음을 전하게 되고,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하게 됩니다. 조잡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부흥되지 못하여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지 못할 때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왜 부흥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를 원하시고, 왜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까? 복음의 능력이 살아날 때, 십자가의 능력이 살아날 때 죄인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대단히 고민합니다. 여러분도 같이 고민합시다. 시간시간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죄인들이 회개하고 일어나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이 살아나는 이 강단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 자신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십자가의 깃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 부흥이 임했던 교회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영광이 나타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 많이 해주시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 많이 하십시오. 정말 살아있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지? 시간시간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흥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내 심령이 살아나고 회복될 때, 그래서 복음이 살아나고 십자가의 영광이 살아날 때 이곳에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믿는 자의 수가 더해가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게 부흥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하세요. 좁은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내게 임하시는 겁니다. 성령으로 강하게 임하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되고 세워지는 겁니다. 내가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내려놓고, 내 방법과 수단을 내려놓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부흥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

또 한 십자가의 영광이 복음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이, 십자가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만 되면, 십자가가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도 기업에도 구석구석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서 가정에, 이 땅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고 갈망한다면 그렇게 사모했던 부흥을 우리들도 경험하도록 하늘가르고 이 땅에, 이곳에 임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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