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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단의 유혹 그 나머지... (창 3: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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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 11- 24 사단의 유혹 그 나머지...

우리가 이 본문을 여러 번에 걸쳐서 다루면서 아무도 다루지 않았고 또 지나친 문제들이 몇 가지 있다.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런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간과된 문제만 다루면서 이 본문을 맺으려 하는 것이다.

1. 의사 소통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볼 때 최초의 인간은 부호나 말을 고안해 내지 못했을 터인데 그가 어떻게 말을 해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또 뱀(사탄)과 의사 소통하였는가? 그래서 우리가 추측 가능한 것은 만물의 주체인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모든 존재들의 의사 소통 방법은 말이 아닌 다른 수단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과의 대화 - 말로 하는 대화 그것은 타락 이후의 일이 아니던가? 이전에는 말이 아니어도 의사 소통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이 뱀을 사용해서 말을 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것은 소리가 아니면서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는 논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체험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의사 소통이 바로 이런 형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는 순수함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의 의사에는 복선이 생기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정확한 의사 소통의 방법이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말이 의사 전달을 가장 쉽게 합니다. 그러나 말이 있기 때문에 진실한 의도가 왜곡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말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가리워진다. 그러므로 말은 이런 양면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소리보다도 진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지혜인 것입니다. 뱀이 말을 했고 그것을 인간이 알아들었다고 해도 별로 이상스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2. 뱀에게 내린 이중 처벌이다.

또 뱀이 유혹한 것이 아니라 사단이 뱀을 빌어서 왔다면 그도 피해자인데 뱀에게 정죄를 한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뱀도 희생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를 정죄한다면 하나님께서 재판을 잘못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이 들어오도록 침입로를 열어 둔 것은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마치 하와가 자신의 호기심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사단의 침입로를 연 것과 같은 것이다. 마땅히 자신의 책임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 것이다.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의 연단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들어서 사용했고, 또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면 그 시험의 주체만이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라도 동조한 자신에게도 죄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서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오늘 우리는 똑같은 형편에 처해 있다. 곧 날마다 죄에의 유혹이 있는 것이고 그 가운데 사는 우리는 유혹에 끌리던지 아니면 물리치던지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것이다. 죄를 단호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저주와 죽음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이다.

3. 동물 변형의 문제

이것은 진화의 문제는 아니다. 진화는 분명히 더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 사건 곧 뱀의 경우에는 퇴화된 경우이다. 그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 변형을 명령하셨다. 곧 뱀이 배로 기어다니며 흙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물론 이 말씀이 상징하는 내용은 이중적이다. 그래서 뱀이라고 하는 동물에게는 배로 다니고 흙을 먹고 이슬을 먹는 것이 그의 처벌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가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그 활동 대상으로 하며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흙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최초로 동물의 새로운 변형이 생긴 사건이다. 진화가 아니라 변형인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보면 뱀은 본래 배로 기어다닌 것이 아니라 발로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서 그 형벌로 배로 기어다니게 된 것이다. 창조 이후에는 이것이 최초의 변형이며 마지막 변형인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진화의 가능성을 말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인 것이다.

진화의 모든 가능성들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중요한 성경 표현이 있다.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말은 창세기의 첫장에 열번 이상 사용되었다. 모든 창조된 종류(히브리어: min)는 그 종류대로만 번식되며, 다른 종류를 번식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한계 내에서의 수평적 변종(예, 개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은 가능하고, 한 종류로부터 보다 고등한 종류로의 수직적 변종(예,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변화)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리는 신약성경(고린도전서 15 : 38- 39)에서도 또 다시 강조된다.

게다가 진화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철학적이며 종교적이다. 진화론이 자본주의 사회와 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국가 종교로 규정된 반면, 이들 사회에서 정부와 교회의 분리 원칙을 근거로 창조론이 비난받고 공공 규정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진화는 실제로 모든 무신론과 인본주의 종교 그리고 정령숭배 종교의 기본이 되고 있다. 도교, 불교, 유교, 힌두교 같은 인류의 큰 종교들은, 모두 우주의 전능한 참 창조주를 부정하고 시공간의 우주를 궁극적이고 영원한 실체로 받아들이는, 다른 형태의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창조론을 기본으로 한 종교들(유대교, 기독교, 회교)까지도 진화론을 허용하는 개방적인 분파를 갖고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와 기독 대학에서의 가르침을 주도하고 있다.

진화적 철학은, 대부분의 반기독교적 사회, 경제, 종교 철학의 근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낙태, 약물 문화, 동성연애와 자유로운 성생활을 주장하는 등의 반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 대부분에 사이비적인 과학적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여러분이 보는 외국영화의 세계에서처럼 그런 종류는 진화론이 근거가 되어 있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세계에 편만한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살펴볼 때, 해롭고 무신론적인 진화론은 진실일 수가 없다.
만약 진화가 과학적 측면에서 진리로 입증되었다면, 그것이 아무리 성경과 상충되고 또 하나님과 참 도덕관계를 해치더라도 진화론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진화론이 참 과학과도 상충된다. 과학의 모든 참 사실들은 특정의 창조 행위를 증거하지 진화를 증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은 지으신 이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살 때에 참 행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어서 복과 은혜를 누리라는 것이며 창조하신 이가 있음에도 그 분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산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그 분이 없이 살아야 하는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그분과 거하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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