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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가 있습니까?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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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있습니까?(요15:1~8절)

시카고 대학의 총장이었던 월리암 하퍼 박사는 자기 학교를 찾아 온 신입생들에게 55초의 연설을 했지만 명 연설가로 유명합니다. 연설의 내용은 매우 짧았지만 그 내용은 신입생들 마음 속에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연설을 했을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성인으로서의 길을 출발하게 됩니다. 사람은 25세가 되면,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가치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 자기 자신의 인생철학을 확립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신앙적인 자기 철학을 세우고,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을 하고, 그대로 한 평생을 살았던 성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이 연설의 내용입니다. 이 짧은 연설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은 다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생애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하버드 대학의 인기있는 교수였다가 스스로가 지체부자유자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남은 생애를 헌신하였던 헨리 나우엔 교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인생에는 오르막 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 길이 있노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한창 올라 갈 때가 있는가 하면, 또한 내려 갈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실패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빛과 어두움이 서로 교차하듯이 인생에도 반드시 이 둘이 서로 교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사회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세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욕심이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필요없는 욕심을 너무 부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저렇게 힘없이 무너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왜 무너져 졌으며, 왜 무너져 가고 있습니까? 경제에 대해서는 무식한 제가 한마디 할까요? 지나친 욕심때문 아닙니까? 소위 문어발식 운영,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나친 욕심이 문제라고 사회학자들은 한결같이 지적합니다.

둘째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 못한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열심히 안한 것이 죄입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그 정도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하고 못하고는 각자에게 주어진 지능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은사가 다르므로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실패의 원인이 있습니다.

셋째는, 목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패는 죄가 아닙니다.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왜 버느냐가 분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그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목적부터 물을 것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목적을 두고 이 일을 하는지를 말입니다.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 편에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존재목적을 위해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습니까?


1. 선택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행복한 사람 10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음에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그것은 선택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33:29)”

60억의 인구가운데서 내가 선택받았음에 행복의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60억의 인구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란 말입니까? Wy Me? 정말 찬송가 가사 그대로‘아 하나님의 은혜로’아닙니까? 도대체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입니다.

이것은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로 내가 선택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의 근거가 있고, 뿌리가 있음을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오늘은 그렇다고 한다면, 60억의 인구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해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먼저 16절을 보십시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자 여기 보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내 의지 가지고 예수 믿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임을 여기에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의지 가지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랍니다.

즉,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니시어티브를 취하신 것입니다. 주도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교만이 여지없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60억의 인구가운데서 나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감사 감격스럽던지요. 내가 똑똑해서 내 의지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믿은 줄로만 알았을 때에는 우쭐한 마음과 교만한 생각이 들더니만, 그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에는 감사 감격의 눈물이 나옵니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왜 나를 선택해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목적이 계십니다.왜 여러분들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오직??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과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6절에 보면,“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열매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열매없는 허무한 인생이 아닌 열매가 있는 보람있는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심판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 언젠가는 우리에게서 열매를 요구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서도 열매를 요구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했지 아무런 열매도 없어 저주받지 않았습니까? 또한 3년씩이나 과원에서 열매를 기대하셨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자‘찍어 버리리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런 비유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너희도 열매맺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가지가 아닌 구체적인 열매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했지, 삶이 없고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의 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번 고급옷 뇌물 의혹사건 청문회를 통해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뻔뻔스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의 현주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려 나온 여인들이 다 크리스챤들이요, 중직자들입니다. 저마다 성경책에 손을 얹고 맹서들을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저마다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저들의 말을 믿어준단 말입니까? 누가 말만 하는 우리들의 말을 믿어준단 말입니까? 한마디로 잎만 무성한 나무였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이면서도 정작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서 그에게 물어 봅니다.“당신은 그처럼 예수를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면서 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그는 대답을 했습니다.“나는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고, 그리스도는 좋으나 교인은 싫습니다.”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로 부터 왜 왕따 당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말만 번드르 했지 행함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입니다. 분명히 소금은 소금인데 이미 맛을 잃어 버린 소금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사실 열매만 있으면 기도응답은 결과적으로 따라 오는 보너스 선물인데 말입니다. 16절 중간에 보면,“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열매만 있으면 구하는 것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응답이 없습니까? 문제는 그 열매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그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을 그 농부로, 그리고 믿는 우리들을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아시는대로 이 포도나무라고 하는 것은 열매에 그 존재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포도나무는 결코 관상목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재로 쓰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존재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열매에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정체성이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본문의 비유를 통해 대입하면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우리의 존재가치나 의미는 오로지 열매에 의해서 평가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열매맺는 삶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열매맺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탐스러운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어서 농부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열매가 있는,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 중요한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2. 전지되어야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보십시오.“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여기‘깨끗케 한다’는 말은 손질한다는 뜻으로 곧 전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아무리 극상품 포도라 할찌라도 전지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면, 2년내지 3년이면 벌써 들포도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먹지 못할 열매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고로 계속 해마다 전지작업을 해 주어야 합니다.

무슨 얘긴지 아십니까? 우리가 주 안에서 열매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전지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누가 전지작업을 잘하느냐?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잘라 내느냐에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아예 못쓸 포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누가 예수 잘 믿는 사람이냐? 얼마나 과거와 깨끗하게 단절하고 사느냐에 있습니다. 얼마나 맺고 끝는 일이 확실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들 한마디로 힘들어요.

미국의 사회학자로 유명한 죤 브레들리 쇼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If you want to go, You have to be able to say goood- bye.” 만약 당신이 진정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Say Good-bye를 바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안녕히라는 말을 깨끗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Say Good-bye가 잘 안돼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미련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거입니다. 거기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그 미련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어디 한두 사람인줄 아십니까?

그래서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시는대로 제주도에는 1년 사시사철 신혼부부들로 북적대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들어보면, 신혼여행을 갔던 그 장소가 이혼장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신랑이 샤워하러 들어 간 사이에 옛날 애인한테 몰래 전화하다가 들통 나 가지고 도장찍고 만 것입니다. 아니, 신혼여행 간 그 자리에서 옛날 애인한테 전화 걸것은 무엇입니까? 결혼을 했으면 이제는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질질 끌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세상에 미련한 여자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정상을 향해서 성장하려면, 과거와의 관계가 깨끗해야 합니다. 끊은 것은 과감하게 끝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각신문마다 머리기사를 장식했던 기사내용을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제목은“흡연이 내 모든것을 앗아갔다”였습니다. 이것은 한 폐암말기 환자가 정부를 상대로 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담배소송을 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담배를 피워 폐암말기 환자가 되었으니, 정부와 담배 인삼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1억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낸 것입니다. 이제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담배는 내가 피워 놓고, 이제와서 그 책임은 정부가 져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담배 피우라고 했습니까? 담배가 몸에 해 됨을 뻔히 알면서도 그거 하나 끊어버리지 못하고 마냥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그 책임을 정부가 지라니? 글쎄올시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것은 정부의 책임문제이기 이전에 나의 결단력의 문제요, 나의 의지력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담배 한개피가 5분의 생명을 단축한답니다. 스스로가 명을 재촉하는 결과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온갖 질병의 원인이 담배에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울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현대인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들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렇듯 의지가 약할 수가 없습니다.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 한시간도 못가니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야 무슨 일이 이루어 지겠습니까? 스스로가 담배에 노예가 되어 꼼짝 못하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존재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한국이 골초대국이라면서요? 세계 흡연율 제 1위랍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몇년 믿었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고 그 옛날 습성들, 옛 버릇들을 버리지 못하면 신앙생활의 발전은 없습니다. 그것때문에 시원스럽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저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은 그야말로 뼈를 깍는 아픔이 수반됩니다.

가지를 자르게 되면 우선 아품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자를 부분은 잘라야지 나머지 부분이 살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곧 결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우리가 말씀앞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도내가 하나님앞에서 결단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의 삶속에서 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3.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는 원줄기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4절 중간에 보면,“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그랬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절로”입니다. 즉 스스로 과실을 맺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을때에야 가지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상식적인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식이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지 제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보십시오. 상식대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겠습니까? 상식이하의 짖들을 하니까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상식이하의 행동들을 하니까 이 세상이 시끄러운 것 아닙니까? 가지는 뭐니뭐니 해도 원줄기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그랬습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그야말로 Nothing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을 떠난 고기가 잠시는 살 수 있을련지 모르나 결국은 말라 죽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꼭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일이면 열일을 다 뒤로 하고 여기 나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줄기 되시는 주님에게서 진액을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받아 싱싱한 열매,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일과 교회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마치 교회는 주유소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동차가 좋으면 뭘 합니까? 기름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기름을 넣을 때에 제 구실과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주간 동안 마음껏 달리다가 이제 기름이 떨어질라 하면 또 여기와서 공급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주유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주일을, 또는 교회를 영적인 밧데리 충전소라고도 합니다. 자동차 밧데리가 소모되어 약해질라 하면 또 충전을 하는 것입니다. 충전만 시켜주면 금새 힘있게 엔진이 돌아 갈 수 있습니다. 주일이면 여기와서 영적으로 충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한주간을 힘있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을 작전타임이라고도 얘기합니다. 운동 경기를 시청하다 보면, 가끔식 작전타임을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에 감독으로부터 코치를 받는 것입니다. 코치를 받고 나가서 화이팅하는 것입니다. 코치를 받고 나가서 싸워 승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주간 동안 살다가 주일이면 여기에 다시 모여 우리의 영원한 감독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작전 코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흩어져서 경기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재주만 믿고 날뛰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좌우간 우리는 시시로 주안에 거할 때에만 열매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글랜드 스턴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나는 일생동안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 95명을 알고 있다. 그중에 87명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다.”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가십시다.


4. 열매를 맺게된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에 보면, 우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라면, 간단합니다. 우리 매일의 삶속에서 열매맺는 삶을 살아 드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비로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열매만 맺게 되면, 하나님에게도 영광이요, 내 자신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서 내가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는 축복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도 기도응답의 축복이 여기에 있습니다.“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열매맺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믿음의 열매, 전도의 열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있습니까? 이 가을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좀 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열매가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10월 31일

저희들의 열매맺는 삶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가지된 저희들로 하여금 참포도 나무되시는 주님에게 붙어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함을 아시오니 아직도 전지되지 못한 부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주안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순간 순간마다 결단하여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안에 있어 열매가 풍성한 의미있는 삶, 승리의 삶, 능력의 증거가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들포도라도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하면 촣은 나무의 원액이 올라오기에 참 포도나무가 열매가 맺어지듯이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맺도록 구원하시고 선택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우리 자신이 열매를 통해 좋은 그리스도인지 믿음의 열매가 있는지 점검해보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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