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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전도:11시 59분 (롬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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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도:11시 59분 (롬 1:16-17)

I. 복음

유난히 힘이 센 장사 개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개미들은 쌀 한 톨을 겨우 드는데 이 개미는 두 톨씩도 거뜬히 들었습니다. 많은 개미들이 이 힘 쎈 개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기고만장해진 개미는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넓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힘센 장사 개미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찾아가서 힘 자랑을 하였습니다. 쌀 두 톨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집어던지기도 하며 괴력을 발휘하였지만 누구하나 개미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철없는 어린아이 발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 지식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은 그 권세의 힘을 과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힘이란 겨우 쌀 두 톨 드는 힘밖에 안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저 어리석은 개미 같은 무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나가 보세요. 하늘과 땅 온 세상에 하나님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헛된 것을 자랑하고 정말 자랑해야 할 것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복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복음을 자랑할 시간이 많지 못해 안타까와했습니다. 예수 복음 듣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우리나라 4700만 국민 중에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등록된 인원은 약 25%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년 245,700명(2005년 통계), 매월 12만명이 별세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3만명이 천국에 갔고 9만명이 지옥에 갔다는 얘기입니다.

복음전도의 긴급성에 쫓겨 젊은 시절 아프리카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복음전도의 열매를 거두고 있는 라인하르트 본케는 지금 우리시대를 "복음전도 밤 11시 59분, 구원시계 밤 11시 59분"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때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구원 열차의 막차가 떠날 것입니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복음전도는 촉박하고도 긴급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양이 발하는 에너지를 1초 동안만 정확하게 축적할 수만 있다면 이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구가 100년을 쓰고도 남음이 있다고 합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총은 사탄의 권세를 부수고 만 인간을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이면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내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본문 로마서 1장 1절부터 17절까지를 읽어보면 복음이란 단어가 무려 일곱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복음 즉,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의 "유"는 좋다. 그리고 "앙겔리아"는 소식이란 뜻입니다. 바로 유앙겔리온은 좋은 소식,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 Gospel은 좋은 이야기, 복된 이야기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종전의 소식을 듣지 못하여 29년동안 필리핀 루방섬 정글에 은신해 짐승처럼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군 중위 오노다 히루씨입니다. 그는 일본군 장교로 22세때 필리핀에 파견되어 29년이 지난 1974년 그의 나이 52세 때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났고 일본이 경제적 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나이 52세 되기까지 깊은 동굴에 숨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는 복음을 잘 알지 못하여 고통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예수가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치열한 전투에서 이겼다는 "승전의 소식" 이것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이 사회적인 개념을 기독교에 적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그를 의지하는 모든 백성을 살려내는 영원한 구원의 소식을 "복음, 유앙겔리온"이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II.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종교 개혁가들의 대헌장이 되었던 본문을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복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로서 강조어요, 반어법입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당대의 석학이었습니다.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당당한 권세를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 이 내용이 로마 시민을 향해 외치는 서신이라는 데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로마는 오직 힘만이 통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강자만이 진리요, 승리하는 것만이 진리였습니다.

더구나 로마인들은 유대인을 몹시도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살인 강도와 함께 무력하게 죽은 예수, 그분이 외치는 설교의 주제는 로마 시민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겸손, 사랑, 회개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로마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사도 바울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지금 선전 포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앙겔리온 - 승전의 소식은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 그분의 복음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이여, 너희들이 말하는 힘, 능력이 무엇인가? 진정한 능력은 복음 안에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외침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한마디는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로마가 힘의 상징이 아니라 복음이 힘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능력이라는 말은 원어로 "뒤나미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다이나마이트" 폭탄과 같다는 말입니다. 즉 반석이라도 폭발시켜 산산조각을 내는 엄청난 힘, 즉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오래전 우리집 아이들이 어릴 때 설악산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다가 식구들 모두가 차멀미를 호되게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설악산엘 갔더니 그 무시무시한 꼬부랑길이 없어지고 한방에 굴을 뚫어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미시령을 머리에 이고 단 몇분만에 그곳을 통과했습니다. 바로 이게 다이나마이트의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산도 부수고 바위도 타작하듯이 깨뜨려 버립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수많은 위인과 성인과 철인들이 천성 가는 길을 뚫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수고였습니다. 성인 현인들의 수고는 호미 한 자루, 괭이질, 삽질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의 다이너마이트만이 천국 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분명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대 로마제국이 영원히 나라를 다스리고 세계를 지배할 것 같지만 영원히 이어질 왕국은 따로 있다. 그 왕국이 하나님 나라이다. 로마의 황제가 세계를 정복했다고 외치지 말라. 그들도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시다. 로마의 가치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영원히 이 땅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이 강력한 확신이 넘쳤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하는 능력이 바울에게 있어서 그토록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지옥가지 않아도 된다. 사탄의 올무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만왕의 왕이신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구원받은 백성, 영생 얻은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하는 그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지옥가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지옥 가기 싫어서 예수 믿느냐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비아냥거립니다. 천국 가기 위해 예수 믿는 것을 퍽 자존심 상해합니다. 그래서 고상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진정 고상함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올무에서 해방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고상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옥의 백성이 영원한 천국의 백성 되는 이것보다 더 고상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죄악을 물먹듯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보다도 더 복되고 고상한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확신과 긍지를 가지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래야 이웃을 구원할 열정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이 복음의 확신이 있을 때에 무한한 감격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웃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III. 구원의 의미

본문이 말하는 구원에는 세 가지 정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공로, 내 자격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내 선행을 쌓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어떤 때는 이렇게 믿어 가지고 구원받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좀 열심을 내고 착하게 사는 듯 할 때는 '내가 구원받았구나'하고 안심합니다. 그러나 자주 죄악에 쓰러지고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치 구원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겨집니다. 의외로 이렇게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잘나서 얻는 것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 딸과 내 아들이 내 자녀로 한번 태어나면 그 효과는 영원합니다. 아이들이 내게 효도하고 착하게 굴 때만 내 자녀이고 아이들이 실수하고 내 속을 썩일 때면 내 아이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부모 자녀 관계는 자식의 태도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 삼아 주셨으면 내가 실수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때로 당신이 쓰러져 넘어져 신음하는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실 수 있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셨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속죄함을 얻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선포가 바로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구원 받는 여러 길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몇 가지 진리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생명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입니다.

구원의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신부가 목탁 두드리는데 가서 앉아 있고, 승려가 미사에 참석하면 통 큰 사람처럼 보입니다. 언론은 저들을 폭넓은 종교인이라고 칭찬을 합니다.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웁니다. 그러나 신령한 하나님의 눈, 거룩한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는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천주교를 인정합니다. 우리는 불교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불교를 불교로 인정하는 것이지 거기에 우리가 믿는 구원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가 똑같이 천국에 가는 동일한 길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입니다. 진리도 하나입니다. 구세주도 한분입니다.

셋째, "구원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습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까? 이것이 기쁜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요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너무 쉬우니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내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다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히 사는 천국에 간다는게 뭔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뭔가를 보탭니다. 선행도 조금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뭔가를 보태고 싶은게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50%는 믿지만 50%는 선행이 따라야 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99%는 하나님, 1%는 내 선행이 아닙니다. 100%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9%는 믿어야 되고 1%는 내 선행이 보태지는 것이 아닙니다. 100% 믿음에 구원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는 것은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중심의 자리에서 내가 내려앉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 내려앉는 것입니다. 나를 지배하고 있던 사탄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중심의 자리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그 분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분이 당신을 만나 주셨음을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할 때에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영생을 얻었고 천국의 시민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습니다. 100% 믿음 외에 다른 길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IV. 11시 59분 -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복음은 긴급한 것입니다. 구원의 긴급성을 알려주는 책 「11시 59분」의 저자 라인하르트 본케는 독일 출신 아프리카 선교사입니다. 본케는 단 한번에 160만명이 참석하는 복음집회를 열기도 하고 단 6일간의 집회에서 345만명이 그리스도를 향한 결단을 내리는 등 이시대 가장 강력한 복음전도자 중 한사람입니다.

「11시 59분」 이 책은 서로 사랑 출판사를 통해 계속 발간될 본케의 책 중에 두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1996년 미국 리젠트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비치에 가면 그림같은 대학이 있습니다. 이 학교를 세운 로버트슨 총장은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신 분입니다. 저의 은사 주선애 교수님과 친구이기도 합니다. 9개 대학원 가운데 법정대학원은 한국의 한동대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중 신학대학원은 잠시 한국에서 저희 교단 신학교 그리고 셀교회 사역 단체를 통해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가 이 학교를 통해 논문을 썼습니다. 신학대학원장인 빈슨 사이난 박사는 세계적인 오순절 신학자입니다. 한국을 참 사랑하는 분입니다.

「11시 59분」 이 책에서 본케는 구원 열차를 전복시키려는 사탄의 몸부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오늘 교회와 성도를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는 복음전파보다도 다른 종교적 활동을 더 중시하도록 만드는 우선 순위의 전도입니다. 복음전파 보다도 더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치유와 이적이 나타난다고 본케는 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했으면 절대로 세상에 다시 빼앗기지 말 것을 역설합니다. 물고기를 잡은 제자들은 몇 마리 잡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물이 찢겨지지 않았습니다. 배는 물에 잠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제자들은 영혼을 돌보는 원리를 알았습니다. 한번 얻은 하나님의 가족을 다시는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자!

교회의 주특기는 복음전도입니다.
성도의 장기는 복음전파입니다.
우리의 취미도 복음전도입니다.
교회의 초점은 불신자 전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얻고 교회를 확장하기 위한 열정으로 넘쳐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성이 있다면 바로 복음전도의 영성이요 열정이요 야성입니다. 본케의 책 「11시 59분」 안에는 저자의 이런 마음, 이런 열정, 이런 몸부림, 이런 절규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의인이요 성자입니다.

유사이레 진정으로 예수 앞에 찾아 나온 단 한 사람도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단 한 사람도 버림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구원 열차가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지금 11시 59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당신 곁에 속히 구원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까? 용서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까?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까? 문득 12시 종착점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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