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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들은 명예를 얻자 (막 10:35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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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명예를 얻자 (막 10:35 - 45)

(막 10:35 ~ 4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主)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先生) 님이 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求)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願)하 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願)하느냐 여짜오되 주(主)의 영광 (榮光) 중 (中)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主)의 우편(右便)에 하나는 좌편 (左便)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求)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 도다. 너희가 나 의 마시 는 잔(盞)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洗禮)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盞)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 (洗禮)를 받 으려니와 내좌 우편(左右便) 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爲) 하여 예 비(豫備)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 (弟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對) 하여 분히 여기거늘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異邦人)의 소위 (所謂) 집권자 (執權者)들이 저희를 임의(任意)로 주관(主管)하고 그 대인(大人)들이 저희에게 권세 (權 勢) 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 너희 중(中)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中)에 누구 든지 크고자 하는 자 (者) 는 너희를 섬기는 자(者)가 되고 너희 중(中)에 누구든지 으뜸 이 되고자 하는 자(者)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人子)의 온 것은 섬 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自己) 목 숨 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代贖 物)로 주려 함이니라.

들어가는 말

젊은 나이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 곁에는 아주 유능한 철인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가난하여 돈이 궁하게 되자 용기를 내어 대왕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아뢰었다. 그러자 대왕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며 재무성에 가서 필요한 만큼 돈을 꺼내 쓰라고 했다. 입이 한 뼘이나 벌어진 철인은 곧바로 재무 장관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거액의 돈을 요청했다. 그러자 재무장관은 철인의 말만 듣고는 그 큰 돈 을 꺼내 줄 수 없다며 대왕에게 찾아가 물었다. “대왕께서 저 철인에게 거액의 돈을 꺼내 쓰도록 허락하셨습니까?” “그렇다.” “그것은 굉장한 거액인데요?” “거액이든 거금이든 그가 요구하는 돈을 내어 주어라. 그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예와 존귀를 안겨준 당사자가 아닌가. 그러니 나도 그에게 대하여는 너그러워야 하게 않겠는가!” 알렉산더 대왕은 도리어 큰 호통을 치며 재무장관을 나무랐다고 합니다. 돈을 부리는 권력의 명예 얼마나 좋은가요. 그렇습니다.

“이 뜬세상 에서 쌓아 둘 가장 순수한 보물은 깨끗한 명예라고.”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그렇다.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돈이 아니고. 권력이 아니다. 바로 존귀한 명예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명예를 얻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역사는 그를 향해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릇된 인생을 살다 간 또 한사람의 탐욕자로 기억할 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볼 때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명예를 얻고자 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기도 했다. 돈을 물 쓰듯 하기도 했다. 인기 위주의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명예는 자신이 얻고 싶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이의 말처럼 명예는 자기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씌워 주는 월계관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특청을 올리고 있다.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절)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서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 때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말이다. 즉, 우리 형제 하나는 국무총리 로 또 한 사람은  장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들을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앉게 해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마음속에 분이 가득했고 했다. 모두들 야고보와 요한 같은 명예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먼저 요구한 이들에 대해 미움과 분을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이들이 참으로 존경받고 높은 사람 는 비결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아니다. 이들은 진정한 명예를 얻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릇된 명예 관을 갖고 있던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진정한 명예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4,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진정한 명예를 얻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명예를 얻으려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 그릇된 자기 욕심이나 명예욕에 사로 잡혀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명예를 얻는 지혜로운 비결을 배웁시다.

첫째 :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되자.

1)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

선민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크게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 중 다윗 왕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다윗은 사울보다 크게 사랑과 존경을 받은 왕이었다. 사울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위대함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가 남들보다 현저히 뛰어난 재능과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힘이 월등해서 일까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위대한 칭호와 명예를 가져다 준 것일까요? 성경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준다.“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바로 무엇입니까?

2)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사람

우리에게 무슨 일이든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하면 잘 됩니다. 마음이 맞 다는것 대단히 중요 합니다. 손발이 맞고 뜻과 생각이 같고 행동이 일치 한다는 것 얼마나 살판나게 합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 뜻을 이룰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것이다.  매사에 다윗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다윗의 다윗됨! 그것은 개인적인 재능과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자 였 다는 사실 때 문 이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무엘로 하여금 이새의 집에 가서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보았을 때 그의 용모나 신장이 현저하게 두드러진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삼상16:6)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3)하나님의 눈과 사람의 눈이 다른 점

하나님의 눈과 사람의 눈에 들어야 사람은 인정받는 것인데 우린먼저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원래 다윗은 부모로 부터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막둥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부모의 심부름이나 하고 양이나 치던 목동이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영특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중심은 진실 되고, 충성되고, 믿음직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리고 그의 뜻대로 행할 종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되니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일개 목동이 한 나라의 왕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가장 훌륭한 왕이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진정 높아지는 비결 존귀케 되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가장 세심한 주의로 눈동자 가 지켜지듯, 하나님은 그 자녀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시는 것이다.(슥 2:8)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눈동자]로 말해져, 그 얼마나 소중한지 가 표현되어 있다. (신 32:10,시 17:8,잠 7:2,슥 2:8).


둘째 : 섬기고 대접하는 자 가 되어야 합니다.

1)섬김과 희생의 봉사

‘어네스트 골든 이란’ 외국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콰이 계곡을 통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콰이어 강의 다리’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다. 다른 수백 명의 포로와 함께 버마의 콰이란 계곡에서 일본군을 위해 기차철도를 건설하는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 속에서 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모든 사람이 오직 자기 하나만 생각한다. 동물 사회만도 못한 인간 사회가 그 포로수용소 안에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가혹한 현실에서 저자는 부상을 당해 거의 죽음 직전에 처하게 된다.

그의 생전 처음으로 생명의 애착을 느꼈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게 된다. 강제 노동의 고통과 오랜 배고픔, 그리고 부상 받은 상처에서 오는 고통을 이길 힘이 그에게는 더 이상 없었던 겁니다. 결국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그가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이다. 그는 자신을 간호해주는 자가 같은 처지의 포로 동료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기독교 성도였다. 그의 희생적인 봉사와 사랑, 섬기의 도움으로 그는 마침내 용기를 얻고 살아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를 참된 신앙인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와 그의 동료는 힘을 합해 그들의 소용소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상부상조의 새로운 기독교 사회로 만들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2)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서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아야 자신이 높아지는 줄로 알고 있다. 남에게 소리를 치고, 명령을 내려야 그것이 권세 있는 자의 능력인지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섬김의 삶이야말로 생명의 기적을 창출해 내고 사회를 아름답고 밟게 만드는 가치 있는 삶인 것이다. 참으로 자신이 존귀해지고 높아지는 비결이 바로 이 섬김의 삶에 있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어떠한 분 입니까?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다.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권세 중에 절때적 권세를 가지신 분이요, 모든 권위 중에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그런데 그렇게 존귀하신 분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그의 위대함은 이런 위대한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높아지겠다고, 서로 섬김을 받겠다고 자리다툼만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그는 손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십자가 사역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였다. 그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다. 그리고선 그 거룩한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 주기 시작했다. 손수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섬김의 본을 보이심으로써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영원히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이 가르침이 잊혀질 수 없었다. 진실하신 주님,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어찌 사랑하지 않고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섬기고 낮아질 때 높아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이 세상에 주님과 같이 남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섬김으로 높아지고 존귀케 되는 진리를 깨달은 자가 얼마나 될까요? 종교 개혁자 칼빈은 말했다.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참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듯 예수님은 섬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섬김의 모습으로 일평생을 사셨다. 섬김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전 생애를 걸쳐 섬기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열망! 그것이 오늘날 얼마나 위대하고 큰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수없이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 사랑을 받게 된 원동력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역사에 큰 인물들은 많이 있었다. 전 세계를 재패하고 호령했던 영웅호걸 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것뿐이었다. 남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어쩌다 이루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주님과 그의 숭고한 섬김의 정신을 가진 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폭력과 억압, 계급과 차별이 있는 곳에 평화와 사랑, 일치와 화목을 가져다주었다. 이것 이야말로 진실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와 그 의미를 가르쳐 준 영원히 칭송받기에 합당한 사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섬김의 능력, 섬김의 축복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섬김의 횃불을 밝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낮은 곳이 안전하다

비오고 바람이 불고 푹 풍우 가 몰아쳐오면 낙 뇌의 위험성이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이 훨씬 안전 합니다. 운동에서도 모든 폼이 자세를 낮출 때 가장 안전하며 좋은 동작이 연출됩니다. 뻣뻣하게 서 있는 지세는 영 불안하며 다음 동작을 연결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세를 낮추는 삶 동작 행동 등은 인간 삶에서의 가장 기본 단위이며 출세 명에 성공 부 귀 영화를 얻는데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높아지고 존귀케 되는 또 다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의 무릎을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 스스로 ‘나는 잘난 사람이다’라고 높이는 사람은 결코 높아질 수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자기를 낮추고 겸손을 취할 때 비로소 그는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

2) 사람은 본능적으로 교만 합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구는 어떻습니까? 남들보다 좋은 자리,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란다. 남들이 자신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가 잘한 것이 있으면 나타내 보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예수님께서 한 결혼식장에 가셨을 때도 그러한 모습을 보셨다. 사람들이 서로 상전에 앉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눅14:8-10)

3) 겸손한자가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치고 정말 잘난 사람이 있습니까? 설사 그가 정말 학식이 높고 탁월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매력은 절감될 것이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있으나 없는 듯, 알고 있으나 모르는 듯한 사람이 정말 매력 있는 사람 아닙니까? 정말 자신이 있고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꼭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 알려지게 된다. 모두가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참 영광을 얻고 그가 존귀케 되는 과정 인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겸손을 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실진대 내가 나서고 내가 앞설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저 우리는 묵묵히 실력을 쌓으면 됩니다.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더 겸손하고 더 겸비한 사람! 그것을 위해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를 높이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약 4:6-11)“그러나 더욱 큰 은혜(恩惠)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驕慢)한 자(者)를 물리치시고 겸손(謙遜)한 자(者)에게 은혜(恩惠)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順服)할찌어다. 마귀(魔鬼)를 대적(對敵)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避)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罪人)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者)들아 마음을 성결(聖潔)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哀痛)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哀痛)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찌어다. 주(主)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主)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로 주님이 높이는 자 는 사람 앞에서도  겸손하여 명예로운 자가 됨을 믿으시길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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