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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년을 뒤로하고 (수 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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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을 뒤로하고 (수 3:14-17)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입니다.  험난한 인생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하는 것보다 더 멋있고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인생이란 단 한번의 사건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계속하는 작업이고 경험과 과정입니다.  영원한 진리는 인간은 계속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명백한 사실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만을 정직하게 받겠다고 열망하는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만을 받겠다고 사모하는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후로부터 오직 하나님의 인도만을 받겠다는 자기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내 가정은 오직 여호와의 인도만을 받겠다는 거룩한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종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르는 필요한 삶의 원칙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삶의 원칙이 무엇일까?

먼저는,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도를 찾고 기다리는 가장 순수한 생명의 작업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인도만을 기다리며 가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졌는데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 받기를 정직하게 열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민족의 불행도, 한 집안의 불행도, 한 개인의 불행도 결국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에서 실패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탐내고 열망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길에서 결혼에 대한 잘못된 결정이 엄청난 생의 비극을 낳는 것처럼, 인생의 갈림길에서 잘못 인도된 결과만큼 크고 아픈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걸음까지도 정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드는 자를 일평생 인도하십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만 있다고 한다면 어떤 패배도, 어떤 실패도 최종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리하면 그가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필요한 두 번째 삶의 원칙은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끝없이 고백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모든 행복이란 사람과 일의 사이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남긴 자국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속에는 지연은 있어도 패배는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한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붙들고 자기의 나약성을 깨십시오.  겨자씨만한 믿음을 붙들고 자기의 둔화성을 깨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고백하십시오.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 연약한 생명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는 끝없는 고백 행위입니다.  이 고백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고백이 없이는 결코 하늘의 역사를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란 선택입니다.  옳고 그른 것과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사이의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허물 많고 연약한 생명입니다.  저의 힘과 저의 지혜와 저의 안목과 저의 통찰력이 부족할 때마다 저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필요한 세 번째 삶의 원칙은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은 언제나 조건적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결국 인생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냉정하고 조건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무조건 누구나 인도해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할 이유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하시기 때문에 시간마다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따르는 자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을 따라 인도하십니다.  소망의 기도를 따라 인도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재물관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모든 태도에서, 그 생각과 믿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은 구원의 섭리에서 사람이 도저히 추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면에서 경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본이요, 방법이요, 또한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정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가령 요셉을 보십시오.  누가 그의 일생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시기할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놀라운 꿈을 주셨으며, 그 또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난 어린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붙잡아 마른 웅덩이에 집어넣었습니다.  요셉은 웅덩이 속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부모를 떠나 노예의 신세로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지낼 때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어린 소년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경호실장인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종살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있으면서도 그 주인에게 충성했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꼭 들게 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그 집에 온 이래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기고 피하기 어려운 유혹 앞에 완전히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는데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 줄 상상이나 했었겠습니까?  이렇게 무려 13년간이나 고생에 고생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30살 난 청년의 몸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의 총리로 발탁되게 된 것입니다.  이것도 생각이나 했고 기대했었던 일이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부요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은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매우 천천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몹시 보드랍게 갑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안타깝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2-5)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의 골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면하는 형편이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을 인간 사고의 최극단까지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어느 정도까지 밖에는 못하고 그 한계에 이르면 나머지 일은 믿음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이해하고, 믿음으로 용납하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합력하여 아름다운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두 사람은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는데 그 마음이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정신이 온전해진 대신 점을 칠 수 없으니까 여기서 수입을 얻던 주인이 시 당국에 고발을 했습니다.  이 일로 바울과 실라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 바울이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캄캄한 데서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어두울 때 감사했습니다.  이유를 모르고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권능을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바울을 가두고 있던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쇠고랑이 풀렸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찬미하고 기도했지만 이렇게 될 것을 기대하기나 했었습니까?  찬송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옥문을 깨뜨려주시고, 이 쇠고랑을 풀어주신다고 상상이나 했었겠습니까?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와 방법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1997년 9월 9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언양 영신교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날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서는 퇴원할 수 없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의지한 채 억지로 퇴원하여 창립예배를 드렸었습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어느 목사님이 말하기를 제가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니까 오주철 목사가 개척해서 자리를 잡으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들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이 그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러나 그 때 그 말 한마디가 제게는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말은 지극히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교회 성장연구소 명성훈 목사님은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돈이 많아야 한다.  둘째는, 확실하게 후원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함께 개척을 하는 개척 멤버가 확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3가지 중에 어느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개척을 하러 올 때에 무일푼에 집사람이랑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당시에 제가 개척하러 온다고 했더니 선배 목사님들께서 매달 후원해 주겠다고 약속한 선교비가 한 달에 족히 삼,사백만원은 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척을 시작하고 나니까 후원해 주는 선교비는 한푼도 없었습니다.  함께 개척하겠다는 개척 멤버도 없었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 둘이 당시에 전교인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저는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이 요구하는 보편적인 목회자의 외모를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키는 작고,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더구나 다리는 부러져서 지팡이를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어느 것 하나도 현대 개척교회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불안과 염려가 밀려올 때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역사를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하나님의 도우심과 손길을 바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날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지나온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개가 무량합니다.  10년 전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보십시오.  안타깝게도 오늘 이 땅에 새롭게 새워지는 교회보다 문을 닫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회를 든든하게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오늘 이 땅에는 헌신하는 주님의 참된 성도보다 헌신을 외면하는 종교꾼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의 교회를 아름답게 지켜왔습니다.

사실, 오늘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분에게 우리 언양영신교회는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신앙생활을 바로 해 보려고 하시는 분에게는 이처럼 축복된 교회는 없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함께 언양영신교회를 세워가려고 몸부림치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외모도 보잘 것 없는 부족한 종을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로, 여러분의 목사로 인정하고 섬기면서 따라와 준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있기에 우리 교회는 더 아름답게, 더 바르게, 더 건강하게 성장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지나온 십년을 뒤로하고 또 다른 십년을 바라보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듯이 약속의 세계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은 약속의 땅, 복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업의 터전이요, 대대로 살아가는 기업의 땅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영할 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십년에 얽매이지 맙시다.  잘했던지, 못했던지 모두 과거로 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영의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이제 우리 언양영신교횐는 가나안을 향해 발돋움하는 번영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로운 십년을 향해 달려가기를 원하는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새로운 십년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는 앞에서 달려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교회에서는 무슨 일에서나 꼭 앞에서 앞장서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뒤에서 따라와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뒤쳐졌다가 나중에는 행방이 묘연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낙오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라고 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꼭 앞장서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뒤에서 따라와 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뒤쳐져서 낙오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최초로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 유다와 사마리아 지경까지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렇게 전국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예루살렘 교회가 가장 앞장서는 주도적인 교회요, 지도자적인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가 예루살렘 교회에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안디옥으로 피난을 갑니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가 부흥하여 큰 교회가 발전합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의 중심 교회가 되면서 기독교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닌 안디옥 교회 시대가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 시대가 끝날 무렵 에베소 교회 시대가 열립니다.

이처럼 시대마다 앞서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십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십년을 향하여 달려감에 있어서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시대에 앞장서고, 지도자적인 교회가 되는 언양 영신교회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보십시오.  백성들 모두가 장막을 지고 떠날 때에 앞장 선 사람들이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이 그냥 앞장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백성 앞에서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언양 영신교회도 이 시대에 앞장 서 달리는 하나님의 교회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시대에 뒤쳐져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뒤를 따라오는 자는 어떤 일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담대하게 일어나십시오.  누구도 이루지 못했고, 누구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오직 믿음으로 일어나 믿음으로 만들어 가는 비전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새로운 십년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원하는 우리 모두는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보십시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가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단강이 가로막은 것입니다.  지금 요단강은 작은 강이지만 그 시대의 요단강은 달랐습니다.  더구나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는 언덕에까지 넘쳐 범람하는 때였습니다.  배 한 척이 있습니까?  다리 하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우 난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건너라 하시니 법궤를 맨 제사장들은 이 난감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법궤를 메고 문제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피하지 않았습니다.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피할 문제가 있습니다.  피할 문제는 부딪히면 큰 변이 납니다.  그러나 피하지 못하고 부딪혀야 할 문제는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바로 이 때 광야교회는 부딪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문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로 점점 잠깁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고 문제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제서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흐르던 물이 끊어져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앞으로 곧바로 건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사해 바다 입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하여 잘못되면 사해 바다로 떠내려가 죽게 됩니다.  요단강에서는 제일 하류입니다.  물길이 가장 깊어서 위험한 곳입니다.  이런 난감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광야교회가 앞장서서 문제해결에 나섰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언양 영신교회에 나와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문제 속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안고 문제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삼림왕 심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광활한 삼림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고아 출신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삼림의 엄청난 부분을 자기 소유로 만든 재벌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고아원에서 함께 먹고, 함께 뒹굴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알거지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자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무 말도 말게.  난 지금 죽지 못해 살고 있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심슨이 찾아온 친구에게 이야기합니다.
"자네, 내가 부럽지 않은가?"
"당연히 부럽지"
"나처럼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그래.  가르쳐 줘"

그래서 심슨이 이 친구에게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네 가지인데, 꼭 지쳐야 하네.
첫째, 나와 함께 꼭 교회에 나갈 것.
둘째, 절대로 술은 입에도 대지 말 것.
셋째, 많이 벌던지 적게 벌던지 반드시 십일조를 바칠 것.
넷째, 무슨 일이든지 자네게 하는 일은 열심히 할 것.
그리고도 못살게 되면 나에게 다시 찾아오게.  다시 찾아온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삼림을 반으로 나눠 자네에게 주겠네"

이 친구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희망이 중요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바로 친구를 따라 교회에 열심히 나갔습니다.  그리고 철공소 앞을 지나다가 구인 광고를 보고 철공소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주던지, 적게 주던지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받은 주급에서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절대 술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이 감탄하여 뉴욕에 지점을 차리고 그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마침내 철공소 업계의 제일인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친구에게 찾아가 삼림을 좀 떼어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고아원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가 교회를 떠나면서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시 찾아 믿음을 회복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나를 축복하십니다.  교회의 부흥과 함께 내 가정의 부흥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십년을 뒤로하고, 앞에 있는 새로운 십년의 비전을 향하여 담대하게 일어나십시오.  뒤에 쳐지지 말고, 낙심해서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앞장서서 달려가십시오.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그 문제 속으로 교회와 함께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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