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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리스천의 선교적 사명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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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선교적 사명 (마 28:16-20)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 뿌리를 내린 이후 요즘처럼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이처럼 나빴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도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그것이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마땅히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할 탈레반에 대하여는 거의 아무런 반응이 없고 납포 되고 살해까지 당한 봉사 단원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증오와 비아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한국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중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아프간 피납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철저히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어쩌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습니다. 때문에 탈레반에게 강도를 당하였는데도 시민들은 강도당한 한국 기독교를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강도질을 한 탈레반 편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개신교가 우리 한국의 초대교회가 세상으로 받았던 인정의 십분의 일만 아니 백분의 일만 받고 있었더라도 이번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 한국 국민들은 다 우리 개신교 편이 되어 탈레반 때문에, 탈레반에게 죽음을 당한 두 분의 순교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에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그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오히려 위기가 되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우리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문제는 분당샘물교회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가 저질렀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번 기회에 폭발하여 샘물교회에 쏟아 붓고 있는 것입니다. 샘물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샘물교회가 엉뚱하게 참으로 엉뚱하게 우리 한국교회가 그 동안 잘못한 것에 대한 뭇매를 대신해서, 대표해서 맞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까지 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만 그것을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책임에는 등한하고 자기 자신의 교회만 성장시키는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우리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와 거의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그 뿌리를 내리고 세계 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우리만큼 부흥하고 성장하게 된 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자기 교회의 성장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우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자신의 예배당을 짓기 이전에 먼저 학교와 병원을 지었었고, 나라가 일본에 빚을 지어 정치적인 속국이 되기 이전에 먼저 경제적인 속국이 되어가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켜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으며, 결국 정치적인 속국까지 되게 되자 앞장서서  3. 1운동을 일으키고 참여하여 크리스천 하면 애국자라는 등식이 성립되리만큼 우리 초기의 한국 기독교는 대사회적인 이미지가 좋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이미지가 한국교회 부흥의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하면 애국적이고 사회적인 인식 높은 사회의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착할 것이라는 인식이 백성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은 회개라고 하는 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에 있었던 대부흥운동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부터 불이 붙은 회개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대 회개운동을 통하여 정직한 교회로 거듭났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직과 착함에 관한한 세상보다 비교도 되지 않게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부흥의 불씨가 되고 원동력이 되어 한국의 교회를 오늘날의 교회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역사의식도 없고 사회의식도 없이 그저 자기 교회와 교단의 부흥과 성장에만 관심 있는 교회처럼 세상에 비쳐지게 되었고 자기반성과 회개는 없이 교회의 비리와 문제를 지적하면 벌 떼처럼 일어나 세상을 오히려 공격하는 사이비 광신도 집단처럼 보여 지게 되었으니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쇠퇴와 몰락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잦은 시청 앞 광장에서의 시위성 기도회도 제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학법 개정과 같은 교회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하여 삭발을 하고 낙선운동본부까지 결성하여 세상을 위협한 행동은 우리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작은 것을 얻고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것을 잃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위협을 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통한 시위를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학법 개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번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우리 개신교의 선교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악감정을 가지고 대응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습니다. 선교는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는 세상을 섬기는 선교가 아니라 교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선교처럼 보여 졌기 때문입니다. 선교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선교마저도  교세확장과 교회의 부흥의 도구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샘물교회 단원들은 정말 순수한 의미의 봉사를 통한 선교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선교적인 의도를 가진 봉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뭇매를 맞게 된 것입니다. 선교의 본래적인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이기적이고 의식 없는 교회활동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는 선교의 의미가 부정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공적인 선교를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이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혜롭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선교에 대한 이미지마저 왜곡되고 그 때문에 선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으니 우리 한국교회의 퇴보와 몰락은 논리적인 귀결이 아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목적을 이기적인 교세의 확장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선교의 목적은 철저히 피선교지에 있어야만 합니다. 저들에게 모든 면에서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에만 선교는 진정한 의미의 선교가 될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은 영적인 삶 뿐만 아니라 육적이고 세상적인 삶까지를 포함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손님과 싸우는 장사꾼은 없습니다. 장사를 그만 둘 사람이라면 손님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장사를 잘 하려는 사람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손님과 공개적으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옳고 그름만을 가지고 세상과 싸우는 것은 선교적으로 볼 때 지혜롭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다면 그 전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세상에게 없습니다. 그것도 알지 못하고 옳고 그름만도 아닌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머리를 깍고 시청 앞에 모여서 공개적으로 세상과 싸우는 것은 선교를 포기한 사람들의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하려면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이익과 권리까지도 포기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한 없이 낮아져서 세상과 사람들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것은 선교의 ABC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세상과 싸우는 일이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막강한 교세라고 하는 힘을 있는대로 사용하고 과시하여 세상을 위협하였습니다. 정직하지도 못했습니다. 상식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와 같은 우리들이 선교는 또 열심히 하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교회의 열심 있는 선교는 반선교입니다. 선교하려면 선교의 기본부터 다시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의 잘못과 실수를 철저히 회개하고 세상에 대하여 낮아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의 우월성을 돈으로가 아니라 힘으로가 아니라 입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입증하여야 합니다.

좀더 지혜롭고 겸손한 우리 한국교회가 되어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섬기는 자세를 회복함으로 우리들의 선조들이 이 땅에 심어 놓았던 개신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회복해 나가는 우리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가 어리석고 무례하여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었다고해서, 그 동안 우리의 선교가 정책적으로 잘못되고 무례 했다고 해서 선교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선교에 대하여 돌팔매질을 한다고 선교를 멈추어야 할까요?

우리가 멈추어야 할 것은 잘못되고 지혜롭지 못한 그 동안의 선교이지 순수한 의미의 선교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도 우리들에게 너희들의 선교가 지혜롭지 못하다 라고 경고할 수는 있지만 교회에 대하여 선교 자체를 금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있고 들을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까지도 듣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들어서는 안 되는 말까지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가 선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교회 중에 하나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는 개혁교회를 표방합니다. 개혁교회의 목적은 개혁에 있지 않습니다. 개혁교회의 궁극적인 목적 중에 하나는 선교입니다. 대회개운동이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진 것과 같이 언제나 개혁은 부흥의 불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하는 교회는 곧 선교하는 교회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를 표방합니다. 우리 한국의 초대교회와 같이 자신이 예배당을 짓기 이전에 먼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여 학교와 병원을 지었던 것과 같이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나라를 위하여 훌륭한 지도자를 키워내는 일을 먼저 하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열매나눔재단을 세워 탈북자와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을 자활하게 하려는 것과 탈북자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지원하여 저들을 통일의 역군으로 키워내려고 하는 것과 연구소나 아카데미 그리고 장학재단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와 같은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도 선교입니다.

사람들은, 혹자 중에는 우리 교인들 중에도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는 선교적인 마인드가 약하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일을 궁극적으로 다 선교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이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입니다. 개혁의 목적도 선교이고, 구제의 목적도 선교이고 부흥과 성장의 목적도 선교입니다.

선교가 부흥과 성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교가 부흥과 성장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선교 자체가 반선교가 되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러시아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점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을 축복하여 저들을 잘 살게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선교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저들을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잘 살 수 있게 저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저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우리의 진심에 감동하여 저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높은뜻 숭의교회의 선교사와 선교팀이 가는 곳마다 눈먼 자는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일어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던 초대교회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선교사들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나라까지도 나중에는 높은뜻 숭의교회의 선교사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유치하려고 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힘을 길러서 하나님이 가라하시는 모든 족속에게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선교의 새로운 역사를 차분히 써나가는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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